창녕객사 안내판에 관하여 읍치



경남읍성지 답사를 할때 함께한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사라졌거나 없어진 것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넣으면 다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만능키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때 소실이 만능키라 봐야할 것 같습니다.

창녕읍 만옥정공원에 가면 창녕객사의 정청만 남겨져 있으며,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 1924년 시장용 세운다는 구실로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졌으며, 이후 1988년 이전하여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있는 창녕객사에 대한 내용을 보면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고 1924년 군수 이장희가 시장용 건물로 쓰기 위해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 이곳 만옥정에 옮기고 보수했다."로 적혀져 있습니다.
이 두 내용을 보면 1924년 객사는 시장용 건물로 사용하면서 옮겼고, 1988년에 만옥정으로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내용이 맞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문화재관련 글이지만 이런 엉터리가 제법 많습니다.

왜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913년 발행한 지적도를 보면 객사지는 현재 송현리 179번지입니다. 이 당시 지적도를 보면 국가부지이며 학교부지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창녕초등학교의 전신인 창녕보통학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출처: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찍은 창녕읍 전경에 창녕객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촬영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20~1930년대로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도 창녕객사는 남겨져 있으며 객사의 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연못이 보입니다. 아래 이미지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또 결정적인 사진은 1954년 찍은 항공사진입니다. 이 항공사진에 창녕객사의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청과 익헌 모두 잘 남겨져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만 객사 후원지인 연못은 보이지가 않고 매립되어져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 객사의 모습이 또렷이 보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창녕객사지는 현재 경창철강백화점자리이며 후원지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창녕군에서 좀 더 조사를 할 필요성이 있어보입니다. 주차장만들면서 일부 흔적들이 사라질 수도 있었겠네요. 아래 이미지 출처 : 다음지도
지적도와 사진, 그리고 항공사진으로 보니 창녕객사는 적어도 1950년대까지는 존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좌우 익헌은 과연 언제 없어졌을까요? 이것이 숙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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