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면 옥녀봉은 언제부터 불러졌을까? 조선시대



합포만에 위치한 돝섬을 마산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섬이지요. 이 돝섬은 돼지와 연관이 많은데요. 돼지에 관련된 전설도 전해지고 있으며 돝섬 안에 황금돼지 동상도 있습니다. 돝섬을 황금돼지섬이라고 하고 있지요. 이 돝섬을 한문으로 저도라고 하는데요.

저도는 마산 이외에 여러곳에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별장이 있었다고 하는 거제 저도입니다. 거가대교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제 개방을 하고 있다고 하죠. 거제의 저도 이외에 가까이 있는 곳이 구산면에 있는 저도(猪島)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 이 저도입니다.

이게 안타깝게도 이 저도(猪島)는 더 이상 보이지가 않습니다. 현재는 안목섬, 자라섬, 쇠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돼지섬이라고 하고 있지 않네요.

이 저도(猪島)앞에 있는 마을이 구복마을입니다. 구복마을 뒷편에 있는 산이 옥녀봉이라고 하는데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해발 176m입니다. 옥녀봉보다 높은 곳은 창원봉수가 있었던 옥계리야산입니다. 여기에 카톨릭교육관이 자리하고 있지요.

아무튼 옥녀봉이라는 지명이 언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옥녀봉과 저도가 있는 광여도를 보면 옥녀봉은 보이지 않고 대치산이 나옵니다.

대치산(大峙山)에 나오는 치(峙)는 고개,언덕이나 높게 솟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즉 당시 기준으로 주변에서 높게 솟은 산을 이야기하는데 옥녀봉 주변에 있는 산중에 가장 높은 곳이 옥녀봉이라고 하였으니 옥녀봉일 가망성이 많습니다. 제가 추정하는 것이 맞다면 옛날부터 대치산이었는데 언제 옥녀봉으로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광여도에 대치산에 봉산(封山)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봉산(封山)이란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봉산은 특수한 목적으로 정해진 곳인데 봉산에는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고 포의(胞衣 :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胎封封山), 황장목만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 밤나무재목을 생산하기 위한 율목봉산(栗木封山)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봉산지역의 산허리 위로는 화전개간을 못하도록 강조하고 있으며, 벌채금지·화기금지 등이 이루어졌으며 ≪속대전≫에 따르면 1746년 당시 황장봉산이 경상도에 7개 소, 전라도에 3개 소, 강원도에 2개 소이며, ≪만기요람≫에는 경상도 14개 소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봉산의 수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봉산지역이 늘어나는 것은 나무로 불을 하거나 집을 짓거나 하는 것인데 이것을 금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봉산지역은 금산제도의 일종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산림보호라고 봐야하겠지요.

대치산봉산(大峙山封山) 아래에 또 다른 글이 적혀져 있는데 임해군방세소(臨海君房稅所)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임해군은 선소의 맏아들로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하였으며 왕은 되지 못하죠. 동생인 광해군이 왕이 되고, 역모를 꾀하다가 진도로 유배를 가는 인물입니다.

이 임해군과 거리가 먼 구산면에 이 이야기가 나올까요? 여기에 나오는 세소(稅所)인데요. 조세징수를 한다는 곳이지요. 즉 여기서 나는 바다의 자원과 땅의 자원들은 임해군에 간다는 의미라는 것이지요.

옆에는 또 다른 세소가 있는데 숙원방세소(淑媛房稅所)가 있습니다. 숙원은 왕의 후궁에게 내리는 벼슬입니다. 즉 후궁을 위해 자원들이 궁중으로 납품되는 것이지요.

궁중 내명부에 소속되었던 숙원방(淑媛房) 궁방 소유의 어전(漁箭)을 관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산면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창원소속이 아니라 칠원현소속이었습니다. 그중 숙원방세소는 현재 구산면 난포리일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산면중에서 난포와 구복에서 나는 물고기들은 궁중내명부로 납품되었다고 봐야하며 나머지는 칠원현으로 넘어갑니다. 현재의 옥녀봉의 나무는 건들면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붕산
서울대학교 규장각 광여도/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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