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안의 허삼둘가옥 도시공학으로 보면 읍치



작년에 처음 허삼둘가옥을 가보았습니다. 고건축을 하시는 분들이나 역사탐방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 중 하나가 함양 안의에 있는 허삼둘가옥입니다. 아내의 이름으로 지어진 집이고, 부엌도 아내에 맞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많이들 찾아갑니다.

도시건축이나 도시설계(?)도시공학 하시는 분들은 이곳 허삼둘가옥을 찾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야기만 들었지 허삼둘가옥에 관하여 가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간다 간다해도 거리도 멀고해서 가보지를 못하였다가 작년에 가보았습니다. 

제가 이 허삼둘 고택을 가보면서 느낀 것은 이 건물이 왜? 여기에 들어섰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허삼둘가옥은 1918년 만들어집니다.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허삼둘가옥이 들어선 곳이 보통 위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크기도 크기이지만 골목에서 올라오는 T자형 도로 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T자라..

 T자 도로는 삼거리인데 그 “삼거리 도로 한가운데 위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 이곳이 적어도 동헌이나 객사 자리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삼둘가옥이 있었던 곳에 “각종 관아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나옵니다)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던 안주인의 의견이 존중되어 안채가 비중 있게 지어졌다는 점 말고도, 조선 후기 신분제도 철폐와 신흥부농층의 출현으로 변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집으로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이죠.

저 내용은 건축학적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건축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도시공학적으로 본다면 조선이 철저히 망한 곳 지어졌으며, 조선의 힘인 동헌의 부자재를 팔고 그 자리에 들어선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함부로 접근을 못하였던 그곳에 갑부가 만들 정도로 당시 얼마나 내리막길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허삼둘가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삼문은 T자형 도로에 있는 것이 아니고 T자 도로 옆 골목에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조금 눈치를 본 것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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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적고 지적도를 찾아보니 위에 적은 글 내용중 일부가 잘못 적은 것이 있네요.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지적도를 찾아보니 허삼둘가옥의 경우 동헌과 같은 관아건물지가 아니고 그냥 밭이네요. 개인 땅은 아니고 국가 땅은 맞는데 밭으로 나와 있네요. 다만 저게 처음부터 밭이었는지? 아니면 건물이 허물고 나서 밭으로 되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요.

지적도가 나온 시기가 1916년이고 허삼둘가옥은 1918년이니 밭위에 만든 것은 맞는데 그곳에 관아 건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위치상으로 봐서는 관아 건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합니다. 아래에 나오는 이미지는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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