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덕에도 읍성이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읍성이지만 읍성이 있었습니다. 영덕읍지를 보면 사직단은 서4리, 성황단은 남2리, 여제단은 북 5리, 향교는 동2리로 적혀져 있습니다.

제가 본 지역중에서 향교, 사직단, 여제단, 성황단이 지적도에 정확하게 남겨진 것은 영덕에서 처음봅니다. 보통 임야(林), 밭(田)으로 표시한 곳이 많습니다. 그 부분을 역추적하여 찾는데 영덕에서는 모두 사(社)로 적혀져 있더군요. 이러면 진짜로 찾기가 쉽거든요. 다만 향교는 사(社)가 아닌 향교(鄕校)로 적혀져 있습니다.
영덕향교의 경우 현재는 영덕읍성 기준 북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6.25전쟁기간 파손이 되고 1967년 다시 중건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을 한 것이며 원래는 동측에 위치하였습니다.
사직단은 서4리로 되어져 있는데 실제 직선거리는 2리 정도 될 것입니다. 오십천 하천을 건너가는 관계로 4리로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제단은 북5리인데 현재 민가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성황단은 남2리로 적혀져 있는데 그 앞에 나온 영덕읍지에 북측에 위치하고 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그위치까지 지적도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어떤 용도일까? 하였는데 구.영덕읍지에 성황단이 북측에 위치한 것을 보고 성황단인줄 알았습니다.
영덕읍성의 내부공간과 영덕읍성 주위의 외부공간. 그리고 3단 1교의 외부공간이 나온 상태이네요. 도시의 변화를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아직 영덕읍성 형옥은 아직 찾지를 못했네요. 아래 이미지에서 노랑색 영덕향교는 현재의 위치이고, 빨강색 영덕향교는 조선시대 당시 위치입니다.

이미지출처 : 가장 위 이미지와 두번째 이미지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가장 아래 이미지는 다음이미지에 위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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