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오리정(오리 음식점 아님 五里亭 5리에 놓아두는 정자)을 찾아보려고 지적도를 찾다가 감짝 놀랐습니다. 어 이건 이때까지 문화재연구원 등에서 나오던 자료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창원의 지도로 검산(의창동 뒷산 조선시대 창원의 주산(主山)이었습니다. 보통 천주산으로 알고 있는데 천주산이 아니고 검산입니다)에서 이어져 우백호는 천주산으로 이어집니다. 좌청룡은 자연스럽게 정병산으로 이어지는데 비해 우백호는 천주산에서 팔용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다음지도

1914년 지적도를 유심히 보던중 현재 창원역 주변에 임야가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지적도는 소계동, 반계동, 구암동 가운데 있는 곳이라 지적도를 4개를 모아야 볼 수 있어서 4개를 모으고 포토샵에서 정리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남해, 진해현의 경우 고지도에 숲들을 그려 놓았으며 동림, 서림,유림이라고 말이죠. 또 안의의 경우 지금도 비보림이 남겨져 있습니다.
웅천의 경우 워낙 기본적인 풍수가 잘 적용이 됩니다. 진해현은 그것이 부족하여 동림과 서림을 심었고요. 그런데 창원은 풍수적으로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창원의 고지도를 보아도 풍수적인 그림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또 그것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창원의 읍치가 있었던 의창동을 잘 보면 주산인 검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세가 펼쳐지는 형상입니다. 특히 백호에 해당하는 천주산은 잘 펴쳐지지만 이게 남측으로 향하지 않고 서측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리고 남측에는 팔용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산인 남산이 자리하고 있는 명당이지만 백호의 어깨가 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창원역 옆에 있는 창원대로, 의창대로, 충렬대로로 이어지는 교차로부근과, 창원역 옆에 있는 마산톨게이트 부근은 산세가 아닌 평지입니다. 이게 교통으로는 좋은데 풍수적으로는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백호의 어깨가 비워져 있으니 이 부분을 풍수적으로 메꾸어야 겠지요.
그래서 다른 곳과 비슷하게 비로림으로 채웠던 모양입니다. 이게 지적도에 나오는데 지적도 한개를 넘어서버립니다. 대충 길이를 재워보니 길이는 대략 370미터이더군요. 폭은 넓은 곳은 최대 140m이상이고 좁은 곳은 30m가 넘는 비보림이더군요.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저는 풍수적으로 비보림을 조성한 곳중 이렇게 넓고 길게 조성한 곳은 못 본 것 같습니다. 읍치가 아닌 곳에는 이런 비보림이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밀양 산외면 남기리에 있는 기회송림입니다. 이 송림유원지의 80% 정도 규모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풍수적이 아니고 읍치에 비보림한 곳은 함양 상림이 되겠지요.
뭐 백호의 어깨정도 되려면 이정도 되어야 하겠지요. 우와 진짜 이정도인가 싶어서 1954년 항공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보이지가 않더군요. 그래도 조금의 흔적은 보이기는 하더군요. 이미지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이 비보림이 있었던 곳은 팔용산 끝자락이 있는 구암동이고, 구체적으로는 구암동 한전 부근입니다. 이정도 비보림이 아직도 남아있었다고 하면 창원시민에게 각광받는 유원지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밀양의 기회송림이나 함양의 상림과 같은 대표적인 유원지를 떠오르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비보림은 팔용산기슭에서 출발하여 현 남해고속도로까지 이어져내려갔다. 이렇게 함으로 천주산의 자락이 팔용산까지 이어지게 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명당을 갖추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에 채색

그런데 그 명당은 지금 과연 명당일까? 믿거나 말거나 아~ 우리 선조들은 그 비보림을 양림숲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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