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상우도 곤양현 선소 읍성(邑城)

사천시 곤양면은 현재 면소재지이지만 조선시대 곤양현이었습니다. 현재 사천시가 당시 사천현이었는데 규모면에서 심하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 원균이 자리한 곳도 곤양이었습니다. 원균은 경상우수영(거제 오아포_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에서 도망쳐 온 곳이 바로 곤양군이었습니다. 당시 곤양군이었는데 곤양군은 경상우수영의 11관 10포중 11관에 속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 와서 원균을 꾸짓었던 곳도 곤양이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원균이 경상우수영의 배 한척을 이끌고 곤양으로 왔다가, 이순신함대가 1차 해전을 치루러 갈때 원균도 합류를 하는데 어디서 출발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건 곤양군의 선소를 알아야 하는데 조선초기 곤양의 선소는 서포면 금진리였습니다. 이게 서포면 외구리라면 곤양읍성과 상당히 가까운데 금진리에 선소가 있었습니다. 금진리에 선소가 있었던 것은 곤양현의 지리적인 특징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이곳 금진리에서 원균의 함선을 이끌고 이순신함대로 향해 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곤양현은 서측으로는 현재 하동군 금성면, 동측으로는 사천시 곤양면, 북측으로는 곤명면까지로 제법 큰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곤양이 있는 동측보다는 하동의 금성면, 금남면과 가까운 금진리로 간 것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금진리에 선소가 있었던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지적도입니다. 일제강점기때 나온 지도를 보면 그 흔적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지적도에서는 국유지이며 대지로 나옵니다. 지번은 사천시 서포면 금진리 921번지, 934, 935번지입니다.  

▼ 1930년대인가 나온 일제강점기 당시의 곤양 금진리로 둥근 부분이 선소가 있었던 곳인데 금진리까지 바다가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1914년 나온 지적도를 보면 위에 나온 1930년대 지도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확대해보면 빨강색이 국유지이며, 대지와 밭입니다. 곤양읍성이 있는 곳에서 떨어진 곳에 국유지의 대지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현재 이곳은 임야이며, 밭으로 사용 중에 있습니다. 예전 남해고속도로가 놓여질 때 선소의 흔적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남아있었다면 조선초기 수군진의 역사를 좀 더 알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지도에서 본 조선초기 선소의 위치입니다. 곤양도 있지만 사천의 선소도 표시하였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현재는 매립이 되어서 선소가 있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일부가 파괴가 되었지만 그래도 흔적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금진리에 있던 선소는 조선 후기(정확한 시기는 확인해봐야 되겠네요)에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로 옮겨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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