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 지명이 들어간 곳 2편_단성편 읍성(邑城)



산청군 단성면(丹城面)은 지금은 면사무소이지만 조선시대 규모는 작지만 치소가 있었던 단성현이었습니다. 단성은 강성현(江城縣)과 단계현(丹溪縣 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이 합쳐서 단성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강성현(江城縣)은 1390년(고려 공민왕 2년)에 강성현에 감무가 파견되어 단계현을 겸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되었는데 거제도에 있는 명진현(溟珍縣)에 왜구들의 침략으로 내륙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강성현의 성과 명진현의 진이 합쳐서 1399년(정종 1년)부터는 진성현(珍城縣)으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고 1436년 강성현과 단계현이 합쳐서 지금의 단성현이 되었습니다. 
 
단성의 역사를 보면 하나 같이 성(城)이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강성(江城), 단성(丹城), 진성(珍城)으로 이어지다 다시 단성(丹城)으로 이어지면서도 성(城)이 들어가는 것은 바로 신라 경덕왕때 16년(757년) 궐성군(闕城郡)으로 되면서 최초로 성(城)이라는 지명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글자는 바뀌어도 뒤에 있는 성(城)이 들어간 것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궐성이 있기 전 궐지였다가 궐성이 되는데 왜 성(城)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첫 째 아무래도 단성현 안에 있는 백마산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해발 286.3m인 백마산(白馬山)에 있는 백마산성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하였던 산성입니다. 이 백마산성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경상도 지리지(1425년 편찬)’에 강산성(江山城)으로 기록된 이래 강산석성(江山石城,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 동산성(東山城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성산성(丹城山城, 1609년 선조실록) 등 여러 이름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 봐서는 단성의 성(城)은 백마산성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둘 째 어찌 보면 이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단성현 치소에 성내리(城內里)가 있는데요. 성의 안쪽이라는 이야기인데 성내리가 있다는 것은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당시 고읍성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다만 석성은 아니고 토성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봅니다. 성내리로 놓고 보면 여기가 고읍성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성(城)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이곳에 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백마산성 옆에 있는 것이 적벽(赤壁)이 있습니다. 적벽은 붉은 빛의 바위가 병풍을 쳐 놓은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우암 송시열이 적벽(赤壁)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습니다. 문제는 오래전에는 적벽이라는 글자를 본 것 같은데 요즘은 보신 분들이 없다고 하네요. 진짜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문으로만 전해 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벽이 있어서 산 이름은 적벽산입니다. 

이미지출처 : 엉겅퀴님 
단성에 적벽이 있는 것처럼 적벽은 곤양에도 적벽이 있습니다. 단성과 곤양 이외에도 정선, 파주, 화순, 안동 부안, 금산, 영덕 등에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지도에 적벽이라고 묘사한 곳은 단성뿐이라고 합니다. 단성에 있는 적벽 관련된 그림이 있는데 범주적벽도(泛舟赤壁圖)입니다. 적벽 그림을 그린 시기는 1860년경이며, 그림 속의 시기는 1611년이라고 합니다. 적벽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편은 성(城)이 들어간 지명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성은 고려시대때 강성현이었습니다. 강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문익점(文益漸, 1329~1398)입니다. 강성현(江城縣) 사람으로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학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를 얻어와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심도록 한 것이며 강성에서 최초로 목화가 자라게 된 것입니다.

단성에는 단성초, 중,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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