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와 해군기지_01 진성(鎭城)

진해를 보면 대발령을 기준으로 서측은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동쪽은 이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 측에 있는 곳을 보면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해군기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이후에 많이 들어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진해라는 지명조차 일제가 가져오고, 현 진해 해군기지사령부에 해군부대가 들어섰으니 더욱더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현재 진해 해군기지사령부의 건물은 1914년 지은 옛 진해요항부사령부(등록문화재 제194호)건물로 빨강색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건물이 있던 곳은 고려 시대 완포현 치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완포 현에 관하여 세종실록지리지 김해도호부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데, 선군(船軍) 840명, 영진군(營鎭軍) 120명, 군정(軍丁)ㆍ시위군(侍衛軍) 47명, 주민 1,079명이 있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병사가 1,007명이고 주민이 1,079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민의 숫자와 비슷한 병사가 많이 있을 정도로 군사기지였음을 보여줍니다.

대발령 넘어있는 웅신(이후 웅천)에는 주민 인구 3백 18명이라고 적혀져 있고, 병사는 기록이 없습니다. 웅신에 비해 완포가 주민의 수와 병사수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완포의 중심지가 바로 진해요항부 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이번에 이순신방위산업전을 한 해군사관학교의 경우 그냥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 수군기지는 바로 풍덕보입니다. 풍덕보는 1610년(광해군 2년)에 문헌으로 등장하는 것 봐서는 그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해동지도 웅천편을 보면 풍덕보가 그려져 있는데 풍덕보가 그려진 곳이 현재의 해군사관학교 자리라는 것입니다. 해동지도에 풍덕보가 그려져 있는데 그곳이 현재의 해군사관학교 자리입니다. 
1872년 지방지에 그려진 웅천 지도를 보면 풍덕보는 보이지 않고, 풍덕리장시(豊德里場市)만 보입니다. 해군사관학교 자리에 있던 풍덕보가 현재의 풍덕리로 옮겨간 것인지 처음부터 풍덕리에 자리한 것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1669년(현종10)에 사포로 옮겨간 것을 보면 처음에 풍덕리에 풍덕보가 들어선 것 같습니다. 현재 풍호동 해군 62전대 앞 삼거리가 <풍덕포 삼거리>로 사용 중에 있습니다. 풍덕보 자리가 대한민국 해병이 창설한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해군사관학교에 이러한 안내판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안내판으로 제작된 것은 없더군요. 제가 올린 내용들은 좀 더 조사를 하고 확인을 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이미지출처 :
1. 1904년 일본수로국 발행 지도 / 도호쿠대학교 TOHOKU UNIVERSITY
2. 비변사인방안지도중 웅천편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3. 해동지도 웅천편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4. 1904년 일본수로국 발행 지도 / 도호쿠대학교 TOHOKU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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