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현 읍성 읍성(邑城)



진해현성은 현재 경상남도 마산시 진동면사무소 일대로 현재 진해시와는 다르다. 현재의 진해시는 일제시대에 군사기지로 개발된 곳으로서 조선시대의 진해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1601년(선조 34)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고을이 너무 피폐하여 함안에 합속되었다가 광해군 때 다시 복구되었고, 1627년(인조 5)에 창원에 편입되었다가 1629년에 다시 함안에 이전되었는데 1639년 고을 사람들의 소청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던 것이다. 둥근 성곽이 있는 읍치는 문루와 더불어 내부의 관아 건물과 민가도 그려 넣었다. 성곽은 둘레가 446척으로 읍성으로서는 매우 작은 규모이다.

▼ 여지도에 나타난 진해읍성으로 성곽이 그려져 있으나 성문은 1개만 표시되어 있다. 성곽주의로 하천이 흐르고 있는 것을 표시하였으며 우측하천은 태봉천이다. 그리고 우측에 봉수대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성안에는 객사와 관아 창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측에 있는 봉수대는 가을포봉수대로 고성 곡산 봉수대에서 이어받아 함안 파산 봉수대를 거쳐 고령 망산 봉수대와 통하여 한양까지 연결된다. 빠르면 두시간만에 늦어도 24시간안에 한양까지 봉수가 전달된다고 하니 조선시대 통신수단을 대표하는 것이 봉수대이다.
▼ 해동지도에 나타난 진해읍성으로 성곽이 둥근형태이고 성곽에 여장이 표시되어 있으며 성문은 3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북문은 표시가 되어있지 않는 걸로 봐서 북문은 존재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안에는 객사와 아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곽 바로위에 동면이라고 표시되어있다.
▼ 1872년 지방지도에 나타난 진해읍성으로 위에서 본 고지도보다 더 자세하게 나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이 둥글게 되어있으며 성곽에는 여장이 설치되어있고 성문위에 문루가 설치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종 부속건물들이 그려져 있으나 무엇인지를 표시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위에 있는 고지도를 참고로 하면 동헌과 객사, 아사, 창이 있을 것으로 추측을 한다. 진해읍성위에는 성산리가 표시되어있고 동쪽은 동면 남쪽에는 동촌과 서촌이 표시되어있다. 우측 태봉촌이 잘 표시되어있고 태봉천옆으로 숲이 잘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태봉천 옆에 요장마을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진해읍성 좌측으로는 하천이 두갈래로 갈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좌측하천 옆에 고현리가 표시되어 있으나 현재 진동면사무소와 고현리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여기에서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있다.
▼ 위의 고지도를 가지고 현재 진동면사무소 주위를 구글어스로 비교하여 보았다. 현재식으로 표시하면 성곽의 길이는 1,347미터이다. 지금의 진동면사무소를 기준으로 대략적으로 성곽을 표시하여 보았다. 위 고지도에 나타난 지명을 참고하여 제작한것이다. 진해읍성우측에 태봉천이 흐르고 진해읍성 좌측옆으로 하천이 있음을 알 수 있어 위 고지도와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확대를 하였는데 보이는 것이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또한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있어서 성곽이 이런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해서 그려보았는데 구글어스에서 거리를 측정해보니 750미터 내외이다. 성곽의 길이가 1,347미터라고 적혀있으니 내가 생각했던 성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추어의 생각으로 하니 역시 안되는 것 같다.) 그러면 성곽은 어떤식으로 조성이 되었을까? 서촌과 동촌 위로 지나가야하고 성산아래로 가야 하니 전체적으로 둥근성곽에서 타원형 성곽으로 조성되어야 길이가 나오리라 생각이 든다. 자세한 것은 전문가들이 측정한 자료를 가지고 풀어가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일단 시장에서 나오는 골목이 있는 곳이 남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부분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골목길 부분이 직선이 아니고 둥근 형태로 되어있으며 동문부근에는 조금 튀어나오는 구조의 골목길로 되어있어 동문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남문인 시장터도 마찬가지로 돌출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확실하다는 추측을 했었는데 길이에서 막혀버려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성의둘레는 1.325척 4촌이며, 시설물로는 높이 3척의 여장과 적대 6개소, 문이 3개소, 옹성이 2개소, 여장382개소, 우물이 2개 있었다고 한다. 성의 둘레를 1,325척 4촌을 계산하면 4,016미터 정도 나온다. 그러면 위 지도에서 추측한 성곽은 맞지가 않다. 적어도 위 성곽 기준으로 5배 이상의 읍성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시 측정하여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현재 남아있는 진해현 관아 건물들을 소개합니다. 현재 진동면사무소 우측에 있는 사령청으로 군령을 출납하는 일을 한 곳입니다.
▼ 진해현동헌과 진동면사무소로 고종23년(1886년)에 진해현 현감으로 부임한 사람이 우리가 잘아는 태양인 이제마이다. 이제마가 부임할때 돌림병이 돌았는데 이제마가 처방해준 약으로 돌림병을 막았다고 한다. KBS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에서도 드라마 끝무렵 진해현감으로 부임하여 역병을 치료하는 이제마에 관해서 나온다.
▼ 동헌입구에 있는 사주문으로 동헌에서 객사로 가는데 있습니다.
▼ 동헌앞에 있는 공적비로 역대 현감들의 공적비입니다.
▼ 진해현 동헌
▼ 진해현 부속건물로 마방으로 말을 사육하는 것을 담담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 진해현 동헌과 돌담
▼ 진해현 동헌으로 동헌앞에 마방과 함께 형방소가 있었는데 해체되어 지금은 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 진해현 객사터로 198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83년이면 지금으로 부터 30년이 되지 않았네요.
다음에 연구조사서가 나오면 자세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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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정우철 2008/11/21 07:18 # 삭제

    죄송한데요~ 대학교 ppt발표때문에 진해현 관아 사진들을 사용해도 될까요?
  • 팬저 2008/11/21 10:06 #

    예... 사용하셔도 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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