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함대의 세계일주 해군



얼마전 국제관함식을 보고나서 많은 밀리터리매니아들은 "아 감격적인 모습이다.","그래도 아직까지 대양해군을 가기에는 부족하다."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10년전 제1회 관함식때 외국함정을 보러가 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그때와 비교하여 상당히 발전한 한국해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고 또 아직도 장비면에서 주변국에 비해 부족한 해군들이 더 분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국제관함식 해상사열이 끝난 10월 8일 문무대왕함을 방문하였습니다. 문무대왕함의 3대 함장인 박동우 대령(해사 38)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사관실로 자리를 옮겨 10월 7일 있었던 해상화력시범에 관하여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날 해상화력시범을 임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라 목표물에 맞추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을 했지만 초탄에 명중을 하여 안심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문무대왕함과 이순신함 울산급2척이 함께 시범을 보였는데 그중 문무대왕함의 MK45 함포가 초탄을 쏘고 다른 함정이 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고 하더군요. 문무대왕함의 MK45함포는 2007년 6월에 포신이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초탄명중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표적함이 퇴역을 준비중인 참수리급함으로 크기도 작고 여러 환경적 요소(각 함의 롤링과 피칭, 바람의 영향, 사격 타이밍)도 있지만 초탄에 명중함으로 한국해군의 대단한 실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갑자기 나와서 이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드실줄 모르겠네요. 문무대왕함 함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한권 보여주시더군요. 영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직접 번역을 하여 한국판으로 만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난 외국어 알레르기가 있어서 ㅋㅋㅋ) 백색함대의 세계일주를 다룬 책이었는데 백색함대에 관해서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과 함께 정보를 나누고자 글을 올립니다.

백색함대(Great White Fleet)의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루즈벨트 대통령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고 뉴딜정책을 선언한 인물인데요. 그보다 먼저 대통령을 수행한 인물이 백색함대와 연관이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백색함대. 공상과학 소설의 제목 같지만 실존했던 함대의 이름이다. 1907년 말부터 1909년 초까지 배를 흰색으로 칠하고 세계를 일주한 미국 함대의 명칭이 백색함대다. 흰색이 주는 낭만과 달리 백색함대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1만1,520톤에서 1만6,000톤급까지 대형 전함 16척의 총톤수만 22만4,705톤. 보급함과 병원선ㆍ구축함까지 합쳐 모두 28척으로 구성돼 단일 함대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것도 21C 현재가 아닌 1907년이었다. 그 당시 22만 4,000톤이라는 함대를 구성하고 세계를 일주하였다니(현 우리나라 함정 총 톤수가 130,000톤 규모이하라고 하는데...)
미국이 해군력의 70%를 동원한 목적은 무력시위. 고립주의 외교기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꾀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백색함대를 내보냈다.
기대대로 백색함대는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일본의 대미(對美) 개전론이 자취를 감췄다. 일본인 이민을 제한하고 백인과 일본인이 한학교에 다니는 공학까지 금지한 캘리포니아주의 인종차별정책에 분개해 미국과 전쟁을 벌이자고 주장했던 강경파 일본 정치인과 군부가 요코하마 항구를 ‘친선 방문’한 거대한 전함 대열에서 미국의 힘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대서양으로 출항해 남미대륙 남단을 돌아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수에즈 운하, 지브롤터 해협 등 6만9만200㎞를 달려 1909년 2월22일 버지니아주 동남부 햄턴로드항으로 귀항한 백색함대의 흔적은 진주만에 남아 있다. 진주만이 군항으로 개발된 이유가 백색함대를 위한 석탄 보급기지 확보 차원이었으니까. 백색함대는 과학기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반경 120㎞ 이내의 함정 간 무선전화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백색함대의 세계일주를 통해 미국은 몇까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의 백색으로 도색된 함정은 발견이 잘된다는 사실과 함께 장거리 항해를 위해서는 냉장고의 발달이 있어야 된다. 또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가기위해 남미를 거쳐서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후 백색함대의 도색은 지금의 그레이계열의 도색으로 냉장고의 발전, 그리고 파나마운하를 만들게 됩니다.
백색함대의 세계일주 이후 미국은 더 이상 고립주의 국가로 남지 않았다. 태평양의 주도권도 영국과 일본의 동맹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백색함대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향한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백색함대가 세계일주를 가기까지 많은 난관에 부딪혔는데 바로 의회였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정부나 해군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백색함대가 세계일주를 마치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해군에게 더욱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였으며 거대 해군론”(The Big Navy)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1890년 당시에만 해도 “연방총지출”의 6.9%에 불과하던 해군예산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던 1914년에는 19%로 증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의 교훈으로서 “강한 육군의 필요성”이 요구되어지면서, “남북전쟁”이후 줄어들었던 육군을 다시 3배 정도로 증대시켰었다고 합니다. 그후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세계1,2차 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세계의 경찰국가로서의 역활을 다하고 있습니다. 벌써 100여년전에 백색함대를 만들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군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금도 미국에서 국부로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제2회 2008 국제관함식이 끝이 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배가 고픈 해군이지만 만은 애정과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에 맞는 해군력 투자에도 힘을 실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처 및 참고
문무대왕함 함장 박동우 대령
서울경제 컬럼 2008,2,21일자
시파워의 세계사2(해사문제연구소 발행)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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