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 북문_01 읍성(邑城)



아래에 있는 사진은 지난 7월말에 찍었던 사진인데 동래읍성 전투장면재현 행사에 관련된 뉴스가 나와서 창고에 있는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날씨가 더워서 동래읍성을 다 돌아보지 못해서 올리기는 뭐합니다만 일단 북문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일단 북문의 위치를 알기위해서 동래읍성 조감도를 봅니다. 현재 복천박물관 위에 있는 곳으로
▼ 북문의 뒷편에서 본 것으로 누혈과 여장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 동래읍성의 북문은 특이하게 앞은 홍예식이고 뒷면은 사각형인 평거식으로 되어있었습니다.
▼ 성곽의 성돌의 모습으로 조선시대때 쌓은 돌과 이후 쌓은 돌이 놓여져 있는데 시기에 따라 따로 만들다보니 색상의 차이가 납니다.
▼ 반대편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가장 하단에만 조선시대때 쌓은 돌이 보입니다. 동래읍성의 북문의 성돌은 그동안 보았던 자연스러운 성돌이 아니고 사각형으로 만든 돌들로 쌓은 것이 제가 보았던 성돌과 틀림을 알 수 있습니다.
▼ 동래읍성 북문의 외탁의 모습으로 여기 또한 가장 하단에 조선시대때의 성돌이 있고 위로는 최근에 복원하면서 쌓은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동래읍성 북문의 외탁의 성곽모습으로 산세를 이용하여 성곽이 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북문의 문루와 여장 그리고 성문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 북문의 누혈로 제가 찍었던 누혈 하나만 예전의 누혈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복원을 한 누혈이었습니다.
▼ 북문의 홍예의 모습으로 육축이 무지개모양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성문은 없었습니다. 복원을 하면서 왜 성문을 만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여장의 모습으로 총안의 모습이 보이고 근총안을 기준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을 찍었던 제가 왜군이었다면 이정도면 살아남기 힘들겠는데요.
▼ 북문과 옹성의 모습으로 동래읍성의 경우 옹성이 특이했습니다. 보통 옹성의 경우 문루를 중심으로 대략 150~160도 정도 연결이 되는데 동래읍성의 경우는 이상하게 100~110도 정도 되게 옹성이 조성이 되어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옹성이 작게 만들었을까요? 아군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 여기까지 살아서 오는 적이 있다면 옹성의 입구가 넓어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여장을 보면 벽돌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저도 처음에는 벽돌로 왜 했을까? 벽돌로 만든 것은 수원화성은 이해하는데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1900년대 찍었던 동래읍성의 경우를 보니 거기서도 벽돌로 여장을 만들었더군요. 그래서 추측을 하기로는 수원화성을 만들기 전에는 예전의 여장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수원화성을 완공하고 나서 그 영향을 받아서 벽돌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고창읍성의 옹성의 모습으로 동래읍성의 옹성과 차이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북문에서 북측방향을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여기로 왜군이 임진왜란때 침공하여 동래읍성을 무너터립니다. 동래읍성 전투장면을 재현하는 곳도 이곳 북문터에서 합니다.
▼ 옹성옆의 성곽으로 예전의 축성된 돌과 최근에 복원하면서 만든 돌들이 정방향으로 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공사를 담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서 성돌에 세겨다고 하는데 동래읍성의 돌에는 이름은 보이지 않고 글이 적혀있었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네요.
▼ 북문에서 서장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서측으로 산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넓은 공간에서 동래읍성전투장면을 재현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 동래읍성 북문의 옹성으로 높이는 4미터 정도 될것 같고 여장까지 합치면 5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북문옹성의 여장의 모습으로 총안의 모습이 보이고 있고 성곽의 돌들은 기계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정방향 돌들로 축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초기때 축성한 방식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읍성의 경우 자연스러운 돌로 축성을 하다보니 틈이 많이 생겨 그틈을 작은 잡석으로 채워 축성하였는데 동래읍성의 북문의 경우 정방향의 돌들로 차례로 축성하다보니 틈이 많이 없게끔 되어있습니다. 이는 조선후기에 축성한 성곽에서 볼 수 있는데 동래읍성의 경우 조선초기에 지었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1731년(영조7) 동래부사 정언섭이 훨씬 크게 쌓으면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편에서는 성곽을 따라서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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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진우 2008/08/21 15:49 # 삭제

    외부는 홍예, 내부는 평거식으로 하는 구조는 해미읍성 남문인 진남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성문을 안달아놓은 것은 아마 복원 당시 예산 부족일 가능성이 크죠
    김포 문수산성의 남문과 북문도 사정이 비슷비슷합니다. 동문인 인생문은 참으로 안습이라 해야할 듯.... 철근/콘크리트 기초 위에 복원할 뿐더러 문 양쪽 성벽은 놀이동산 입구를 방불케하니 아주 어처구니 없는 복원이었습니다.
  • 팬저 2008/08/21 16:34 #

    아직 해미읍성을 방문하지 못해서 몰랐는데요. 가르쳐 주어서 감사합니다. 인생문은 한마디로 안습이죠.
  • 부산촌놈 2010/05/23 21:15 #

    그나저나 저 양성바름이 상당히 보기 안 좋더군요.

    색도 거무칙칙하고 여러군데 금이 가 있었습니다.

    혹여나 콘크리트 복원은 아닐지 염려되는군요.
  • 부산촌놈 2010/05/23 21:16 #

    그런데 동래읍성 북문은 원래 문루 이름이 북문인가요?

    아니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있던 현판이 유실된 건가요?

    그래서 임시로 걸어놓은 걸까요?
  • 팬저 2010/05/24 13:43 #

    북문만 나와있더군요. 다른 문의 경우 당호가 있는 것에 비해 북문에 관련된 당호는 찾을 수가 없네요. 동래부읍지를 보면 나올 것 같은데 입수를 못해서 찾을 수가 없네요. 당호를 걸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부산촌놈 2010/05/23 21:49 #

    인생문 말입니다, 지하차도를 건설하면 또 좋은 점이 뭐냐하면 지하 차도 입구를 인생문과 성곽과 멀리 떨어져 있도록 뚫으면 주변에 많은 공터가 생기어 그곳에 공원이나 역사 테마 파크같은 문화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한편 제가 이런 공법을 네이버의 지인께 설명드렸더니 이를 숭례문에도 활용한다면 숭례문의 화기를 잠재우기 위해 풍수지리학에 의거하여 판 남지를 복원하는 것을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도 실린 수원화성의 전구간 복원에도 꽤 유용한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 팬저 2010/05/24 13:44 #

    지하차로로 하는 방식은 여러군데에서 사용중입니다. 울산의 병영성의 경우와 기장읍성의 경우도 지하차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 부산촌놈 2010/05/24 17:12 #

    아, 그랬군요.

    벌써 그런 공법이 적용된 사례가 있다고 하니 안도됩니다^^
  • 부산촌놈 2010/07/17 21:33 #

    그러고보니 북문 옹성에 대해서는 팬저 님의 글을 읽고 저도 상당히 의아하게 보고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북문이 언덕배기에 위치해서 접근해오는 적들에겐 불리한 것은 사실이나 솔직히 그렇게 치자면 고창읍성의 옹성도 저렇게 길게 쌓았을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잠깐, 개거식 성문이라 방비를 더욱 철저히 하기 위해 옹성을 저렇게 쌓은 것이라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아무튼 동래읍성 북문 옹성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네요.
  • 팬저 2010/07/17 23:15 #

    임진란이전의 동래읍성과 임진왜란 이후의 동래읍성의 차이가 있고 현재 있는 북문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의 북문인데 일단 복원을 했으니까 그 이전의 자료가 없으니 알 수가 없네요. 다만 체성의 일부가 예전의 방식으로 축성된 것을 봐서 부측체성의 경우 현재의 체성의 위치는 같다고 봐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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