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향교 향교



곤양읍성을 찾아가다가 만난 곤양향교입니다. 곤양향교에 관련되어서 백과사전에서 본 내용입니다.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21호로 지정되었다.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중등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46년(조선 명종 1)에 군수 노진이 부임하여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고 한다. 1663년(현종 4)에는 군수 박영계(朴永繼)가 범동(凡洞)으로 옮겼고 1807년(순조 7)에는 군수 신오(申晤)가 부임해와 위치가 좁고 나쁘다 하여 향유(鄕儒)들과 함께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1822(순조 22)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47년에는 소실되었던 풍화루(風化樓)를 재건하였으며 1975년에는 내삼문(內三門)과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전직사(殿直舍)·동재(東齋)·서재(西齋)·풍화루·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공자·증자·자사·맹자·안자)과 공문십철(孔門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한국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소장 서적 가운데 《조선청금록(朝鮮靑衿錄)》 《동성승람(東城勝覽)》 《향교급각단응행절목(鄕校及各壇應行節目)》 등은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 초하루·보름에 삭망제(朔望祭)를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18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곤양읍성에서 걸어서 가면 20분정도 걸리는 곳에 곤양향교가 있는데 곤양향교를 들어가기전에 본 풍화루입니다.
향교앞에 공적비가 있었습니다.
공적비에 있는 거북이


뒤에서 본 공적비로 보이는 아파트 옆산이 곤양읍성이 있는 곳입니다.
원래는 서정리에 있었는데 1808년(순조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풍화루의 현판으로 향교의 누각들은 풍화루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향교누각의 기단석으로
향교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3문이 있는데 그중 오른쪽으로 문이 열려 있었는데 문의 크기가 작더군요.
곤양향교의 배수로
대성전의 모습입니다. 제가 들어가자 마자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바로 대성전까지 안내를 하더군요.
석등의 모습

공자의 위패

우리나라 선인들을 모시는 위패의 모습

출입하는 협문입니다.


명륜당의 현판과 전체적인 모습으로 에어콘도 보입니다.

명륜당의 초석의 모습

해태상이 있어서 물어보니 예전부터 있었다고만 하였습니다.
동재의 모습입니다. 동재에는 여자분들이 서재에는 남자분들이 있더군요.
명륜당의 모습으로 크기도 크지않고 소탈한 느낌을 줍니다.
서재의 모습입니다. 서재나 동재는 지금으로 치면 기숙사라고 봐야겠죠.
해태상이 있었는데 좌우를 바로보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2층 누각의 모습중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곳으로 덮개처럼 되어 있습니다.

풍화루의 누각의 모습으로 여름철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풍화루에는 용이 한마리 살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선저들은 누각을 지으면서 이런 모습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느낌을 받습니다.
풍화루 누각을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풍화루의 초석들의 모습으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멋이 풍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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