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읍성3 성곽을 찾아서_01 읍성(邑城)



저번에 한번 웅천읍성복원 및 발굴조사에 관하여 글을 올렸는데 그때는 경남발전연구원에서 발췌한 사진이어서 시간을 내어서 직접 가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찍었던 사진과 비교하면서 발굴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와 함께 복원될 웅천읍성에 관하여 몇편에 걸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진을 찍기로는 동측성곽과 남측성곽에서 사진을 찍고 동북측 성곽방향으로 걸어오면서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동북측에서 동남측으로 가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똑같은 위치에서 2006년도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발굴하기전이라 그런지 높이도 위의 사진보다 낮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성곽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 곳인데요. 가장 아래 기단석들이 보이고 기초면석들이 자리잡고 위로 작은 성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곽은 웅천초등학교 동측담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높이는 4미터정도 되어보였고 성돌과 성돌사이에는 잡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 북측에서 남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소방도로가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가면 복원하고 있는 동측성곽에 관하여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첫번째 만나는 치성옆의 모습으로 기단석위에 수구처럼 보이는 곳이 있더군요. 면석의 크기가 큰 곳은 1미터가 넘는 곳이 보입니다.
▼ 동측성곽의 일부로 낮은 곳은 2미터 50센치에서 높은 곳은 4미터 정도 되어 보이더군요.
▼ 뒤로 웅천초등학교가 보이고 복원하고 있는 성곽의 모습이 예전에 방치한 성곽과 달리 보입니다.
▼ 동측성곽에 있는 치성의 모습으로 성곽보다 낮게 조성이 된 것에 관하여는 알 수 가 없네요. 아직 발굴중인지... 아니면 발굴이 저 만큼만 되었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 2006년도때 찍었던 치성의 모습입니다. 이때에는 돌무더기처럼 보여서 치성인지 확실히 알 수 가 없었는데 지금은 발굴해서 보니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 흙탕물이 있는 곳은 해자의 모습으로 읍성중 해자안에 물이 채워진 것은 처음 봅니다.(사실은 전날 기습폭우가 쏟아져서 물이 채워진 것이고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치성이 성곽보다 ㄷ자로 돌출되다 보니까 해자 또한 돌출되어 있더군요.
▼ 해자부분도 아래 사진과 같이 돌들로 만들어 놓아서 인공적으로 꾸며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부분에 가장 큰 돌들로 채우고 위로 작은 돌들로 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 해자의 폭은 3미터 이상 되어보이던데 실지로는 4미터 이상이라고 하던데 제눈이 이상한가 잘 모르겠네요. 위로는 4미터가 맞는것 같은데 옹성부분만 3미터 정도로 되어있었습니다.
▼ 동측성곽의 내탁부분으로 내탁은 작은돌들로 채워져 있는데 발굴이 완료된 상태인지 아닌지는 잘모르겠습니다.
▼ 옹성안의 모습과 동문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성문이 생각했던 것 보다 작은 것 같네요.
▼ 기존 성곽의 내탁부근으로 아래부분은 발굴조사 후 복원하려는 것 같습니다.
▼ 성곽의 폭은 4미터 정도 되어 보이고요, 성문을 달았던 흔적을 볼 수 있는 기초석이 보입니다.
▼ 성문을 달았던 기초석은 대략 2미터정도 되는 넓직한 성돌에 구멍을 내었더군요.
▼ 성문입구의 협축의 모습으로 가장 넓고 큰 돌을 협축으로 되어있습니다.
▼ 웅천읍성 동문입구로 기단석위에 협축이 놓여져 있고 내부에는 잡석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옹성안의 성돌로 김해읍성의 옹성의 모습과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사진상 우측에 있는 산이 웅천왜성이 있는 곳으로 웅천읍성이 규모가 작은 이유도 있지만 일본군이 수성하기에는 웅천읍성이 불편하니까 웅천왜성을 따로 지었던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지만 웅천읍성을 기준으로 반경 10km 내외에 왜성만 웅천왜성,안골포왜성,명동왜성,자마왜성 4개가 있고 우리나라의 성곽만 해도 진성인 제포진성,안골포진성이 2개 읍성인 웅천읍성 1개가 있습니다.
▼ 동문에서 북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성곽과 해자 그리고 성곽과 해자와의 거리등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니까 해자의 길이가 4미터 이상되어 보입니다.
▼ 동측성곽의 모습으로 읍성들이 일제강점기때 대부분 무너졌는데 다행하게도 웅천읍성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북측 성곽만 무너졌지만요. 그이유로는 조선시대때 작은 현재의 진해시가 발전하면서 웅천읍성을 굳이 건들지 않아도 된 것이 이유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 예전에 찍었던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쓰레기가 엄청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복원하면서 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
▼ 2006년도 웅천읍성을 방문했을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위 사진과 장소도 똑같은 곳입니다. 지금과 달리 쓰레기 더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측 성문입구 아래부분에 기단석위에 성곽의 명석이 있는데 면석과 협축사이의 모습은 저도 처음 봅니다.
▼ 옹성안의 모습으로 옹성안의 길이는 대략 15여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옹성의 회각로부분으로 회각로는 4미터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옹성부분을 복원 다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잘모르겠습니다만 웅천읍성의 경우 2009년까지 복원한다고 하니 얼마남지 않았네요.
▼ 동측 성문옆의 옹성부근으로 기단석과 하부 성돌만 있습니다. 이곳을 성곽의 옹성을 복원하려고 합니다.
▼ 동측 성곽의 모습으로 가장 높은 곳은 5미터 되어 보이는데 저젓이 예전에 있었던 곳인데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 성곽의 돌들로 아래부분에 성곽의 돌들의 규모는 대략80센치 이상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고 위로 갈수록 50~60센치 최상단에는 20~30센치 정도되어 보이는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해자와 성곽으로 적들이 해자를 건너고 나서 10여미터를 지나야 성곽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해자의 폭과 성곽의 높이와 길이를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 옹성앞에 있는 해자는 옹성의 모양처럼 둥글게 해자가 흐르고 있었고 옹성부근에는 수로가 있어서 성곽내에 있는 물들이 해자로 흐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저번에 소개한 낙안읍성의 경우 해자가 이런식의 모양이 아니고 그냥 일직선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볼때는 웅천읍성의 모양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웅천읍성이 복원이 된다면 아래와 같이 복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진해문화원 웅천읍성 모형의 사진입니다. 동문의 누각은 개거식방식으로 된 것이 보이네요.
▼ 옹성 기단석 밑에는 잡석들이 30여센치 이상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 앉아있는 분들의 기준으로 보면 성곽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 아래쪽 3단으로 구성된 곳에는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2편에는 동측성곽과 남측성곽을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조감도는 웅천읍성 복원 조감도로 현재 북측성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곽이 남아있기때문에 진행하기는 수월한 것 같은데 예산이 부족하여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비 등 총 사업비 140억원을 들여 성곽 518m와 동문루, 해자 등을 복원하고 주차장과 안내센터 등 관광객들의 편의시설을 갖추게 된다라고 하는데 . 시에서 사업비 73억원을 확보해 성곽 주변의 토지를 매입대상 사유지 29필지 중 보상협의가 마무리되면 발굴조사 및 웅천읍성 성곽 복원사업을 본격 추진해 나갈 예정입니다. 사업비때문에 고생한다고 하더니 이 부분은 해결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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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진우 2008/08/18 17:34 # 삭제

    일본군 입장에서도 평성인데다 내성이 없는 조선 읍성에서 굳이 농성전을 전개할 필요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겠죠
    평양성이야 외성, 중성, 내성, 북성으로 구성되었기에 그나마 버티었고 가토 기요마사의 제2군이야 농성할 왜성을 쌓을 여유가 없었기에 길주성에서 버텼지만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우리 성을 이용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기사 자기들의 방싣에 익숙한 성이 가장 적합하겠죠
  • 팬저 2008/08/18 17:43 #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순신함대에 의해 수군이 길이 막히자 이순신함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왜성을 지은 이유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웅포해전에 이순신함대에 총격을 벌인 곳도 웅천왜성입니다.
  • 역사관심 2011/11/20 06:12 #

    웅천읍성의 저 4미터짜리 해자도 복원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좀 흥미가 가는 부분이 조선시대의 저런 '읍성'들도 해자가 저정도인데, 다른 '성'들 즉 부산진성이라든가, 그전대 고려의 성곽들에 해자가 어떤 규모였는지 밝혀지고 있는지 사뭇 궁금합니다. 하다못해 신라 반월성에서도 해자가 발굴되고 있는데 말이죠..)
  • 팬저 2011/11/20 12:18 #

    진성의 해자의 경우도 비슷할 것입니다. 제포진성의 발굴조사에서 나온 부분이 있는데 읍성의 해자와 비슷하게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것이 해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치적으로는 분명히 해자위치입니다만.....
  • 역사관심 2011/11/20 13:32 #

    그렇군요. 진성해자라...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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