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 모형1 읍성(邑城)



동래읍성역사관에서 본 동래읍성 모형입니다.
동래성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것은 고려사에 현종 12년(1021)에 동래 군성을 수리한 것이 처음이고, 우왕 13년(1387) 박위가 왜구를 막기위해 동래성 을 크게 고쳐 쌓아 석성의 둘레가 1,090자, 높이 13자 이었다. 왜적 방어의 제1 관문이었던 이 성은 임진왜란 때 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모든 군관민이 전사하는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된 이 성의 규모는 성곽의 둘레가 1,729자였고, 4 곳에 문이 있어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 (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고 하였고, 남문에는 익성을 두고 나머지 3문 에도 옹성을 부설하여 적이 성문을 쉽게 공격할 수 없게 하였다.
▼ 임진왜란때의 동래읍성보다 더 크게 증축하였던 조선후기때 동래읍성의 모형입니다. 둘레는 약3.8km 성곽의 높이는 5.1m라고 합니다.
▼ 서문의 모습으로 동헌과 객사등을 모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 동래성은 평지와 산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만든 평산성으로 북,동,서장대를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 놓아다고 합니다.
▼ 동래읍성의 해자는 자연적인 하천인 동래천을 해자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 서측에서 바라본 동래읍성의 전경으로 동래읍성 또한 남문이 가장 중심문이고 동헌과 객사를 중심으로 T자형의 읍성으로 되어있습니다.
▼ 북문과 서장대부근의 성곽입니다.
▼ 북문의 모습으로 임진왜란때 일본군들이 북문으로 공격을 하여 동래읍성을 점령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역사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곳이 동래읍성입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이런 행사를 하고 있는데 장소가 북문입니다.


▼ 동래읍성중 가장 높게 조성되어 있는 곳이 동장대입니다.
▼ 평산성인 동래읍성이지만 산쪽에 쌓은 성곽만 보면 포곡식산성 형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남측은 평지이고 북측은 산을 이용하여 만든 동래성은 동래부의 행정중심의 성곽이며 가장 최일선의 군사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 남서방향에서 바라본 동래읍성의 모습으로 위 북측에서 본 것과 달리 각종 관아건물과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동래읍성 남문에서 본 옹성으로 기존 봐왔던 옹성과 달리 직사각형으로 된 옹성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옹성의 개구부가 중앙에 위치한 중앙식임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의 경우 반원형의 옹성으로 되어있고 개구부도 중앙에 나와있는 것은 똑같지만 옹성이 사각형으로 된것과 반원형으로 된 것이 틀리다.
▼ 사각형으로 된 옹성에 누각을 세워 전투를 지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사각형으로 된 옹성은 조선시대보다는 이전 삼국시대때 많이 나타난 형식이라고 하던데 왜 동래읍성에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옹성이 2중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을 익성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익성앞에 있었던 성문의 명칭은 세병문이었고 익성뒤에 있었던 성문은 주조문이었습니다.
▼ 각루로 성곽이 마주치는 부근에 누각을 세우고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 동래읍성의 옹성은 반원형으로 된 것도 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옹성은 둥글게 돌아가는 각도가 작더군요.

▼ 동래읍성의 서장대와 성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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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진우 2008/08/16 21:31 # 삭제

    역시 내성이 없군요. 일본의 성처럼 성곽이 돌파되더라도 니노마루, 혼마루, 덴슈카쿠로 이어지는 다단계 방어형이 아니다보니 성벽이나 성문 한 곳만 돌파되어도 순식간에 성이 무너지는 경우가 파다했죠( 부산진성 전투, 동래성 전투, 김해성 전투, 회양성 전투, 영원산성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 황석산성 전투, 남원성 전투 등등 )
    그 때문에 진주성은 원래 4km의 성곽 내에 1,760m의 내성을 축성하기도 했죠. 우리 성은 평시 백성들을 수용할 수 있고 부분적으로 논밭을 개간해 어느 정도 농성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그 대가로 성이 고을을 둘러싼 담장 형태에 불과하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성벽을 5~6m 이상으로 높게 쌓고 화포와 비격 진천뢰 등 중화기를 다수 배치하는 수 밖에는 없었지만 문제는 그 정도로 많은 병기를 생산해 배치할 능력이 당시 조선에게 없었다는 점이죠
    진주성 전투나 연안성 전투, 행주산성 전투 때는 어느 정도 준비를 잘해서 호소카와 다다오키군을 주축으로한 3만의 일본군과 구로다 나가마사군 5천여명을 막아냈지만 나머지 경우는...
  • 팬저 2008/08/16 22:49 #

    진주성의 경우 내성이 있었죠. 일본의 성곽과 조금 틀리지만요. 하지만 그 내성 덕분에 일본군은 1차 전에서 패하고 말죠.
  • 유진우 2008/08/17 19:18 # 삭제

    http://hakane.com/hwayang/eupseong/eupseong.htm
    반가운 소식 중 하나입니다. 경북 청도군의 청도성 북문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네요. 서상리에 위치한 북문과 주변 성곽이 복원된다면 지금껏 기단부만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던 청도성이 어느 정도 그 위용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다만 북문 복원하는 것을 보니 문루 형태라 좀 그렇네요. 화공에 의외로 취약한 구조인데 말이죠. 김해성 북문이야 석축 위에 문루를 얹었다지만 이 청도성 북문은 낙안읍성이나 고창읍성과 같은 관아의 외삼문 형태니 말이죠. 옹성을 두른 것이 다행이라 해야겠습니다.
  • 팬저 2008/08/17 20:55 #

    청도읍성이 드디어 복원을 하는군요. 유진우님에게 더 좋은 이야기는 며칠있다가 글 올려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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