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해전 임진왜란



사천 선진리를 들어가기전에 만나는 이순신장군상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나는 이순신장군상 크기 정도 되는 이순신장군상이 학교도 아닌 이곳에서 만날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나?"할 정도이고 도로변에 있지만 크기가 작아서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이곳은 이순신장군의 2차 출전에서 당당히 승리한 사천해전의 입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천해전은 1592년 5월 29일 이순신장군이 제 2차 해상작전에 출전하면서 새로이 창안된 전함인 거북선을 포함한 전라좌수영 조속 정예함선 23척을 동원한 전투이다. 아래 그림에 나타난 파란색선은 왜군의 진출로이고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은 이순신함대의 진출로이다. 5월 29일 본영(여수)을 출발, 노량 앞바다에 이르러 전선 3척을 이끌고 온 원균과 합세하였다.
곤양쪽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왜선 1척을 발견하고 뒤쫓아 격파하였다. 그 때 사천선창에는 왜선 12척이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줄을 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때마침 조수가 나가 전선의 활동이 좋지 못함을 판단하고 유인작전을 세워 퇴각할 기세를 보이게 하자, 적들은 외양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순신장군은 적선을 바다로 유인해 내기 위하여 함대의 선수를 돌려 먼 바다 쪽으로 후퇴하였다. 일본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있던 병력 일부를 승선시켜 이순신 함대를 추격하였다. 대형 전함인 판옥선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해역까지 일본군들을 끌어낸 이순신 함대는 선수를 돌려 돌격을 감행하였다.
이순신 함대가 거북선을 앞세우고 총통 등 각종 화력을 총동원하여 공격을 가하자, 일본 함선들은 사천 포구 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런 사이에 만조가 되자, 이순신장군은 전 함대를 독려하여 사천 선창 안으로 일본군은 함선을 바짝 밀어 붙였다. 일본 수군은 육지에 있던 병력의 지원을 받으며 내륙으로 탈출하려 하였으나, 대부분의 병력이 격침되는 함선과 함께 수장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왜적들이 쏜 총탄에 군관 나대용이 총탄에 맞고 싸움을 지휘하던 이순신장군 또한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다.
사천해전이 벌어졌던 사천선진리성 앞 바다로 지금은 고요한 호수와 같은 바다이다. 위 구글지도에서 보다시피 사천해전이 벌어진 곳은 강과 같이 폭이 좁다 대략 2km도 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이곳에 왜군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은 곤양읍성과 진주성을 격파할 교두보이자 예전 곡물을 날아나니던 선창이었기 때문이다. 고려때 12조창이 있었는데 경상도에는 마산의 석두창과 사천의 통양창이 조창을 책임졌던 곳이다.
▼ 선진리성 앞에 있는 포구로 예전 임진왜란 당시 있었던 사천 선착장으로 생각되는 지역입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예전 고지도를 기준으로 보면 이곳이 맞는 것 같은데 확신이 가지를 않네요.
▼ 사천대교에서 남쪽을 바라본 곳으로 일본왜선과 조선수군들이 저곳에서 들어와서 사천해전이 벌어진 사천선창으로 들어왔습니다. 도시처럼 보이는 곳이 삼천포입니다.
▼ 이곳은 선진리성에 있는 사천해전승첩기념탑으로 사천해전의 승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어떻게 승전을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는 전적문을 보아야 하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인지 잘모르겠다.
▼ 사천해전 승전을 알려주는 전적문이다.
▼ 사천해전의 전투도를 묘사한 부조물이 좌우측에 하나씩 있다.
▼ 아래로는 조선수군의 활약상을 위에는 왜군들의 함선이 격파당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 사천 선진리왜성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선진리성에 와서 사천해전이 선진리성부근에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조형물은 위에서 본 사천해전승첩기념탑과 거북선화장실이 전부이다. 선진리왜성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천해전의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후세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릴 자랑스러운 부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드는것은 기우일까?
▼ 다시 선진리성 입구에 있는 이순신장군상은 남쪽을 향하여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고 초라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크게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알아볼 수 있는 크기와 함께 거북선을 사용한 최초의 해전을 알려주었으면 하고 주차장시설이나 증설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천해전에 대한 의미를 알아 가기를 바랄뿐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때 일본은 조명연합군을 막아낸 선진리성을 자신들의 성지로 받들며 만들어 놓은 곳이 사천선진리성이다. 광복이 되고 나서 사천선진리 벗꽃축제를 벌이고 있지만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사천해전에 관해서는 너무 많이 묻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천해전을 기념하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는 사천해전 기념일날 일반적인 행사도 중요하지만 사천시민들이 사천해전의 장면을 재현하는 리인엑트(역사재현)를 고증에 맞게 하는 것도 하나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부분들도 많이 하는데 우리는 대충 선박들 차출하여 그냥 연기피우고 우 지나가는 것이 전부이던데......



덧글

  • 유진우 2008/08/08 21:14 # 삭제

    사천시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무리인 듯 싶습니다. 차라리 저 성벽이라도 좀더 높여놓던가... 저 구간은 혼마루로 보이는데 말이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너무나도 뛰어난 저격수 "간스케"( 다케다 신겐의 참모 "야마모토 간스케"에서 이름을 따왔나? 참으로 황당했죠 )에게 저격당하는 것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죠. 우리의 KBS는...
  • 팬저 2008/08/09 00:50 #

    저는 선진리왜성을 산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에 관하여는 찬성을 합니다. 다만 우리의 사천해전의 승첩장소인 승첩비만 있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한 바탕위에 어떤 부분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2008/08/15 01: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08/15 1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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