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성_04_허술함을 느끼며_03 읍성(邑城)



사천읍성의 경우 워낙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내탁이 돌로 조성이 되어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최근에 복원하고 있는 성곽으로 성내에서 바라본 것으로 축대로 사용되는 돌보다 하단부가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뒤에 있는 예전 성곽의 돌보다는 더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보면 예전 성곽과 지금 조성되고 있는 성곽을 비교할 수가 있는데요. 축성방법은 지금 조성되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성곽의 성돌로 봐서는 예전 축성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결국 다 틀리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 예전의 성곽의 축성방식은 쌀가마니를 쌓는 방식처럼 된 것 같습니다.
▼ 2006년 11월에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발굴하는 모습으로 동문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여 발굴하였으나 동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찍은 사진인데 사천읍성의 성곽의 축성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지금의 성곽과 현재 새롭게 조성중인 성곽과 많이 틀림을 알 수 있고 조선시대 초기 형식의 축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있습니다.)
▼ 요즘 조성되고 있는 성곽은 그래도 모양이나 돌의 재질로 봐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워낙 성돌이 작아서 조금은 실망스럽습니다.
▼ 2005년 사업비 2억원을 들여 동문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2007년부터 2010년 완공 목표로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읍성 복원사업은 2007년 1억원. 2008년 2억원. 2009년 2억원. 2010년 3억원 등 앞으로 8억원의 사업비가 매년 찔끔 지원될 것으로 알려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하지만 그전에 성곽에 관하여 좀 더 깊게 연구한 후 복원을 하였으면 합니다.
▼ 내탁이라고 불러야 될지도 모르겠지만 돌들을 축성한 방식은 조경용으로 사용하는 방식 같아 보입니다.
▼ 읍성안에 있는 수양루로 객사지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동헌보다 전망이 좋은 곳에 객사를 만들기는 하나 동헌과 가까이 있는데 사천초등학교와 조금 거리가 되는데 객사지로 추정을 하니 조금은 이상하게 보입니다.
▼ 기단석과 함께 계단은 콘크리트로 발라져 있더군요.
▼ 사천읍성을 거쳐간 많은 현감과 군수들의 선정비가 좌우로 정렬하여 있습니다.
▼ 그런데 이 선정비도 다른 곳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동을 한 것 같아 보였는데
▼ 보시는 것 처럼 선정비의 하단의 거북이 얼굴이 땅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겠죠.
▼ 수양루도 이곳에 예전부터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가 없었습니다. 다만 수양이라는 이름은 사천의 옛 지명 사수(泗水)의 水자와 곤양의 陽자를 따서 수양이라 했다고 합니다.
▼ 수양루의 마루바닥의 모습으로 여기 앉아서 사천읍내를 바라보면서 시 한수를 지어냈겠죠.
▼ 많은 편액들이 가득차 있었는데 몇십년전에 만들어 부착한 것도 있더군요.
▼ 선정비와 함께 바라본 수양루
▼ 사천읍성 사적탑으로 사천읍성의 허술함과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 뒷면으로 사천읍성에 관련되어서 적혀 있는데 사천읍성 안내판과 아 사적비가 사천읍성을 안내하는 전부입니다.
▼ 요즘 읍성을 가면 꼭 찍는 화장실로 그냥 평범한 화장실이었습니다.
▼ 이곳은 충혼탑 뒤로 성곽과는 무관한 곳인데 차라리 여기에 축성한 축대가 더 성곽 같아 보였습니다.
▼ 조금은 정렬되어 있으면서 성곽처럼 규칙적으로 놓여져 있죠.
▼ 암문처럼 만든 통로로 나가는 곳에 만들어 놓은 돌담입니다.
▼ 사천명월에 놓여져 있는 동물 조각상입니다.
▼ 성곽의 회각로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보시다시피 넓이가 20여미터 되어 보입니다.
▼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 출발점에서 서측방향을 바라본 곳으로 성곽이 쭉이어져 있었는데 가지를 않았습니다. 이유는 저기에 예전에 성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곽의 축성은 1,2편에서 보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 이제 나머지 성곽의 흔적이 있나 싶어서 사천시장 방면으로 가다가 본 성외길 안내판입니다.
▼ 1편에 올린 성내길 다음 블럭으로 사천읍에서 번화한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동아문화연구원에서 사천시의뢰를 받아 사천읍성을 조사하면서 남측성곽의 지표발굴조사를 한 사진으로 2005년 1월에 조사보고한 내용중 일부를 올립니다. 따라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동아문화연구원에 있습니다.

▼ 남측성곽이 지나가는 곳으로 좁은 도로를 경계로 사천읍성의 기단부가 발굴되는 것으로 위 사진에서 본 북측성곽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단부의 성돌은 50~60센치 정도 되어 보이는군요. 장방향으로 된 성돌은 80센치 정도 되어 보입니다.
▼ 확대를 해본 모습으로 잔돌끼움도 작은 잔돌로 막는것이 아니라 규모가 비슷한 잔돌로 마무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다른 곳인데요. 여기는 중간정도의 성돌이 자리잡고 있네요. 하단을 발굴하면 위 사진과 비슷한 크기의 돌들이 나오겠죠.
▼ 여기는 제법 큰 성돌이 자리잡고 있네요.
▼ 우물을 4개 정도 추정 발굴하였는데 이곳이 예전 우물이 아닐까 합니다.
▼ 또 다른 남측성곽으로 상단은 담을 사용하는 것 처럼 작은돌이 올려져 있습니다.
▼ 기단부와 하단을 보면 70센치 이상되어 보이는 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위에서 발견된 곳은 모두 남문지 근처입니다.
▼ 사천초등학교에 있었던 큰 나무로 사천초등학교 중에서 이곳이 동헌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천읍성의 복원은 2010년까지 복원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조성되고 있는 성곽부터 관덕정까지 복원을 한다고 하던데 경상남도에서 지원을 하는 돈을 가지고 복원을 하지만 이왕 복원하려고 사용되는 돈들이 제대로 복원하였으면 합니다. 사천읍성의 경우 공원을 만든다고 하면서 성내에는 충혼탑과 명월등이 들어서 있는 바람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없던 암문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보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천읍성을 복원하여 후세에게 물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덧글

  • 유진우 2008/07/27 09:09 # 삭제

    일단 사천시에 건의를 해야한다면 다음과 같이 해야겠죠
    1. 일단 사천읍성의 경우 해미읍성이나 고창읍성과 달리 시가지가 들어서 있으니, 일단 시가지로 복원이 불가능한 평지의 성벽과 문지는 일단 지표조사라도 간단히 실시해서 차후 축차적으로 서문, 남문 순으로 복원하고 점차 예산을 증여받아( 저 모양으로 봐서는 사천시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 성벽을 부분적으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화강암을 써도 좋으니 제발 성돌은 좀 큼지막한 것으로 하면 안되나? 싶습니다. 원래의 성돌보다도 작으면 도대체가 )
    2. 우선 복원이 용이한 선진리 왜성이라도 집중적으로 복원한다. 이게 가장 시급이죠. 사천읍성은 일단 남은 성벽이라도 제대로 복원하면 되지만 선진리 왜성은 사실상 전체구간의 복원이 가능하니 말입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전체를 복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안 그래도 일본의 성들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일국일성령과 메이지 유신 이후 대대적인 성곽 철거로 산노마루나 니노마루까지 철거된 성들이 대부분입니다( 히메지성은 그런 점에서 운이 좋죠 )
    성벽도 더 높이고( 일본인들이 꼴랑 벗꽃만 구경하려고 거기 오는 이들이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벗꽃이 중요하다면 차라리 나무들을 성벽 위로 옮겨심는 것이 더 나을 듯, 일본 성의 정원들을 참고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 우선 일본 가고시마와 협의해서 덴슈카쿠를 비롯한 혼마루 일대를 발굴해 고톈과 야구라, 흙담 등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 팬저 2008/07/27 11:28 #

    사천시로서는 예산이 없어서 힘들것 같고요. 선진리성인 경우 문화재청에서 지원을 받아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것 처럼 선진리성은 복원하려면 확실하게 복원하는 것이 맞고요. 선진리성 아래에 사천해전 관련 전시관이라도 조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천시에는 선진리성이나 사천읍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답사한 곤양읍성도 있습니다. 곤양읍성의 경우 겨우 몇군데 성곽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아무래도 사천시의 시세 규모로 봐서 이것 저것을 다 복원하려면 많이 힘들것 같습니다. 곤양읍성의 경우는 며칠 있다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baeysoon 2008/07/28 16:44 #

    선진리성과 비슷한 일본성이 어디겠습니까? 기타큐우슈우의 고쿠라 성 정도일까요?

    사천시 담당자말로는 복원 엄두도 못합답니다. 우선 국내유적도 복원이 안된것이 많은데, 일본것 한다면 반대가 많고(문 만들때 말 많았답니다) 고증을 뒷바침해줄만한게 없답니다. 기와 몇조각으로 전체규모를 알수도 없다네요.
    선진리성 쌓을때 일본인이 쌓은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사람들이 쌓은것이라, 일본의 성과는 차이가 많을것이란 담당자의 말도 일리 있습니다.
  • 팬저 2008/07/28 23:09 #

    그부분도 동의합니다. 다만 왜성인데도 순천왜성은 복구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처음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남들이 하면 그런 사례가 있으면 따라합니다. 왜성을 쌓은 부분에 반발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나라 읍성 쌓는 것도 반대가 있는데 제 글에도 적었지만 어떤 쪽을 바라보고 복원하는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달리하는데요. 선진리왜성을 복원하는 것에 관해서는 저는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천해전 관련 기념탑만 있고 선진리 왜성을 복원하는데는 반대를 합니다. 사천해전 관련 기념공원등을 선진리왜성 근처에 먼저 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먼저알고 적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의 성과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복원이나 발굴은 문화재연구원에서 하고 복원은 건설회사에서 하는데 이것이 입찰일 가망성이 많습니다. 그래도 문화재에 아는 건설회사가 하면 되지만 보통 그렇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유진우 2008/07/27 16:14 # 삭제

    일단 예산과 자원,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가능성이 높은 쪽에 집중해야겠죠
    사천시에서 사천읍성과 선진리 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쪽박을 찼으니 이 점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사천 주민들은 의견도 없나?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영산성에서는 하도 성벽이 붕괴되는 통에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었는데 말이죠. -_-;;
  • 팬저 2008/07/27 21:55 #

    영산성의 경우는 주민들이 제발 조사 그만하고 발굴하던지 아니면 놓아두던지 하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단 적은 예산으로 두군데를 하는 것 보다 한군데를 집중복원하는 것이 좋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