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성_02_허술함을 느끼며_01 읍성(邑城)



1872년 지방지에 나타난 사천읍성과 사천현으로 왼쪽 하단에 선진(船鎭)이 그려져 있으며 그곳에는 건물과 함께 전선도 그려져 있다. 선진은 선진리왜성을 참고하시고 이번에는 사천읍성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천읍성의 지도를 보면 남문에서 직선으로 객사가 보이고 우측에 동헌이 보입니다. 그리고 남문 바로위에 옥이 보입니다. 동문,서문,남문 모두 옹예식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아세아문화원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여기서 동문이 2개인데 이는 동문을 추정하는 곳이 2개라서 그렇습니다. 위 고지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북측에 있는 동문은 아닐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고지도에도 북측에는 성문이 없으니까요. 성문으로 영화루(남문), 제경루(동문), 침오정(북문)이 있었습니다. 성내에는 동헌인 부경헌이 있었고 객사인 동대청 등 13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 먼저 사천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곳이 객사와 동헌자리였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사천초등학교 앞에 있는 사천읍사무소입니다. 사천읍사무소 옆에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 사천여중방향으로 동문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이 마트가 있는 삼거리입니다.
▼ 삼거리에서 서측방향을 접어들면 남측성곽이 있었던 곳으로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재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복원을 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남측성곽의 민가에서 예전 사천읍성의 성곽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사천읍사무소 사거리와 인접한 사거리로 이거리가 예전 사천읍성의 남문이었다고 합니다.
▼ 남문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흔적을 찾을 수 가 없는데 이곳에 남문지가 있었다는 표지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성곽추정 조감도를 보면 남문에서 사천초등학교까지 직선으로 연결이 되었는데 지금은 골목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천읍성 또한 조선시대때의 읍성과 같은 구조인데 일단 남문이 주출입문이고 남문에서 직선으로 쭉 걸어가면 객사와 동헌이 나오고 객사와 동헌에서 T자 방향으로 각종 관아들이 들어서 있는 구조입니다.
▼ 이곳은 서남치가 있었던 곳으로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고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 가 없었습니다.
▼ 이곳 고샅(골목의 옛말)은 서문이 있었던 곳으로 옹성의 흔적은 없지만 민가들이 옹성과 같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 남문지에서 성곽안쪽으로 바라본 모습인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가정집이 들어서 있어서 골목만 보입니다.
▼ 서문지에서 사천읍사무소쪽으로 나와서 사천읍성 북측성곽이 있는 산성공원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나즈막한 산에 사천읍성 북측성곽이 지나갑니다.
▼ 평상이 있는 골목으로 가면 서문지가 있었던 곳이 나오고 커피자판기가 있는 곳은 소방도로입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진입니다. 예전에는 골목이 있는 서문이 더 붐볐을 것이지만 지금은 차량들이 다니는 소방도로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합니다.
▼ 조금 더 내려와서 서남치가 있는 방향에서 바라본 새로운 주소 성내길 안내판입니다.
▼ 2차선 소방도로가 성내길인데 우측 차들이 서있는 곳의 가정집으로 성곽이 지나갔습니다.
▼ 다시 길을 옮깁니다. 전봇대와 정차하고 있는 차량이 있는 곳으로 성곽이 지나갔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천읍성로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로
▼ 농협과 시장이 나오는 곳이지만 예전 기준으로 보자면 성곽은 도로로 지나가지 않고 이곳은 성곽 바깥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천읍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죠. 물론 성곽 밖이긴 하지만요.
▼ 큰 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이곳이 현재 남아있는 사천읍성의 성곽입니다.
▼ 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갑니다. 사천읍성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말고 다른 곳으로 올라가도 됩니다.
▼ 사천읍의 풍경으로 사천읍성을 백과사전에 검색하면 "조선시대에 축성된 사천의 읍성으로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주거지 주위나 산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 유사시에 적을 방어하기 위한 평산성이다. 둘레 약 1.5km로 현재 약 300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442년(세종 24) 병조참판 신인손(辛引孫)이 왕명을 받아 쌓았다고 하며, 그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치를 옮겼다고 한다. 사천읍성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먼저 《문종실록》에 삼도도체찰사 정본이 상계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의하면 “사천읍성의 둘레는 3,015척(약 900m), 성벽의 높이는 평지가 11척 5촌이고 험한 곳이 10척 5촌이며, 적대가 15개, 여장이 580개, 성문은 셋이며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옹성이 있다.”고 하여 그 규모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사천현조에는 “현성은 을축년에 쌓았고 석축의 둘레는 3,015척이며 높이는 15척이다. 성 안에 국창이 있고 샘과 우물 세 곳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성벽의 높이가 약간 높은 것은 증축이 가해졌으리라 생각되며 ‘을축’은 축성 연대로서 세종 27년(1445)에 해당된다. 한편 이 성은 임진왜란 때인 1598년(선조 31) 왜군에게 일시 점령당하였다가 같은 해 9월 경상도병사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의 연합군에 의하여 탈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 이곳은 북측성곽과 서측성곽이 만나는 곳으로 위로 조금 올라가면 치성이 나타납니다.
▼ 나중에 설명을 하겠지만 기존 성곽들과 비교하면 어딘가 이상합니다.
▼ 치성이 있었던 곳인데 차량출입을 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곽이 짤려져 나가져 있더군요. 사진에 보시다시피 비둘기 아파트가 있습니다.
▼ 치성의 경우 하단 성돌을 보면 큰돌도 있지만 상단에도 그돌보다 더 큰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치성과 북측성곽의 모습으로 저도 이곳을 방문하기전에는 나름 괜찮게 꾸며 놓았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벽과 복원된 성벽은 둥글게 400m가량 순환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한쪽 구석에 불망비가 있던데 내용은 잘모르겠습니다.
▼ 치성의 축성방법을 알 수 있는데요. 군데 군데 시멘트로 발라놓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 치성 바깥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많이 보았던 성곽의 축성방법과 거리가 먼 방식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조물주가 공기놀이 하다가 그냥 던져 버린듯한 성곽의 구조를 보면서 이런 성곽을 사천읍성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해진 규격도 없고 그냥 있던 돌들을 올려 놓았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 조금 카메라를 확대를 해보았는데요. 시멘트 범벅에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곽이라기 보다는 암벽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래 사진은 암벽등반용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높이가 낮아서 암벽등반하기도 안되겠지만요.
▼ 치성의 뒷모습으로 요즘 쌓는 축대보다도 정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축성되어 있습니다.
▼ 북측성곽과 치성이 잘려져 나간 부분으로 편의를 위해 성곽을 쌓고 편의를 위해 도로를 개설하면서 사천읍성이라고 적어 놓는 것은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안드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 보통 읍성을 돌아보면 성곽의 모습과 함께 회각로, 누각등을 찍게 되는데 사천읍성을 방문하면서는 이런 엉터리 축성방법때문인지는 몰라도 성돌만 찍다가 온 느낌이 듭니다.
▼ 그나마 조성되어 있는 읍성의 성곽은 높이가 3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좋게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존 허무하게 무너지는 읍성도 있고 발굴도 안된 읍성도 있는데 이정도 복원된 것이 어디냐? 라는 위안도 가져 보려고 했지만 이런식의 복원은 차라리 안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과연 나만 그런 것일까요?
▼ 뜻하지 않게 암문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암문치고는 조금은 이상합니다.
▼ 암문보다는 출입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통로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 위를 바라본 모습으로 그냥 넓직한 큰 돌을 올려 놓았다고 봐야겠습니다.
▼ 조금 더 뒤로 가서 바라보았는데요. 보시다시피 예전의 조경용으로 조성하던 돌쌓기 방식으로 성곽의 내탁이 조성된 것이 보입니다.
▼ 이런식의 사진으로 보면 사천읍성의 성곽도 잘 조성되어져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가까이 가본다면 모두들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하지만 가까이가서 쳐다보면 이런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런식으로 읍성이 조성되었을까요? 그것도 딱 20여년전인 1987년에 복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복원된 것일까요?
▼ 조선시대때 읍성을 축성한 방식들이 지금의 방식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을까요? 성곽인지 조경인지 알 수 없는 축성때문에 헷갈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낍니다. 드릴로 돌에 구멍을 낸 것도 보입니다.
▼ 다른 곳의 성곽 또한 별다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덧글

  • 유진우 2008/07/26 16:37 # 삭제

    그냥 무너져 있음 보기 흉하고 통행하기도 안좋으니 대충 쌓아놓은 것 같습니다. ^^
  • 팬저 2008/07/26 22:48 #

    이런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문화재해설사분도 이부분은 빼놓고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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