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읍성의 사미당(사미정) 읍성(邑城)



광여도의 창원도호부지도를 보니까 창원읍성안 정 가운데에 사미정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사미정은 동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 정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미정 좌측 옆으로 수로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고지도 지승에서 본 창원읍성지도로 여기서는 사미당이라고 적혀있고 담이 둘러쳐져 있고 서측방향에 누각으로 된 문이 있는것이 보이며 위치는 광여도에 본 것과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이 사미당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고민하던 중 신문에서 본 사미루가 있다는 것이 있어서 찾아가보았습니다. 사미루는 예전 창원읍성 동측 성곽 바깥에 있었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창원시 소답동 111번지 입니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에 나오는 동요가사를 보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중 꽃대궐 차리인 동네라는 가사에 등장하는 꽃대궐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고가가 꽃대궐인데 예전 김종영조각가의 생가라고 합니다.
▼ 위사진과 아래사진을 보면 상당히 큰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꽃대궐의 대문의 모습으로 도로가 개설되기전에는 여기있는 집보다 더 큰규모였지만 도로가 개설되면서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 꽃대궐의 담을 연결하면 빌라도 포함되었고 빌라 옆에 한옥으로 된 가옥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전 김종영생가와 함께 사용된 집으로 현재는 따로 따로 집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집치고는 특이하게 누각이 달린 가정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대문이 누각으로 되어있고 안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공적비가 있더군요. (왜 이곳에 공적비가 있을까요? 가장 마지막에 추정한 글이 나옵니다.)
▼ 흙담으로 나즈막하게 되어있는 담이 보입니다.
▼ 사미루라고 적혀있는 현판을 보니 여기가 사미루인 것 같습니다.
▼ 고지도에서 본 사미당과 확인한 사미루는 한문으로 사미는 똑같았는데 사미당에서 사미루가 왜 변했을까요? 그리고 위치도 읍성안에 있어야 하는데 읍성 바깥에 위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914년 지적도에는 사미당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나옵니다. 일제 강점기시 읍성이 철거하면서 각종 관아들을 철거할때 사미당도 같이 철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미당의 명칭이 사라지는 것이 안스러워서 그때 사용한 사미당의 명칭을 김종영생가에서 사용하면서 사미루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있는 사미루의 건물은 1918년에 지었다고 합니다. 제가 1914년 지적도가 만들기전에 사미당은 사라지고 사미당이 아닌 즉 누각이 있는 사미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지은 것 같습니다.
▼ 만약 제가 추측한 것이 맞다면 김종영생가를 지은 김종영부친이나 조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없어지는 예전의 누각을 안타까워하면서 새로운 장소로 옮겼는지 아니면 새롭게 지으면서 명칭만 사용했는지는 잘모르지만요.
▼ 사미루라고 적혀있는 현판옆에는 봉황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제비집으로 보이는 것이 둥지를 트고 있네요.
▼ 반대편 빌라에서 사미루가 보이는 곳을 찍어보았습니다. 김종영조각가는 1915년에 생가에서 태어났다고 하던데요. 그전에 여기 있는 사미루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1914년 지적도가 나오기 전에 사미당은 없어졌다고 봐야겠네요.
▼ 안채의 모습으로 단청도 없이 소탈하게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2층 누각은 아주 소탈하게 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원시에서는 김종영생가를 복원하려고 하는데 이왕 복원하려고 하면 사미루에 대한 부분도 철저하게 조사하였으면 합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사미당을 조선시대 형식으로 복원하였으면 좋겠는데 위치가 문제가 됩니다. 현재의 위치는 예전의 사미당의 위치가 아니어서 조금은 문제가 되겠죠. 사미루는 예전 사미당의 명칭만 가져왔는지 아니면 사미당의 부분을 가져왔는지를 먼저 알아야겠죠.
▼ 그러면 사미당의 위치는 어디였을까요? 1914년 지적도를 가지고 추정하여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지적도에 황색으로 된 것이 각종 관아들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위 광여도와 지승 고지도에서 본 사미당은 정가운데였습니다. 동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의 가운데 였다고 그려져 있고 수로가 좌측에 있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답은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우리문화재연구원
▼ 지적도를 기준으로 현재의 도로를 가지고 추정하도록 하려다가 위 지적원도와 아래지도를 포토샵에서 합쳐보았습니다. 이미지출처 : 우리문화재연구원
▼ 자주색으로 된 것이 창원읍성의 성곽입니다. 우측 편의 도로와 택지는 네모 반듯하게 정리되어있지만 창원읍성안은 예전도로 그 모양 그대로 되어있고 도로만 새롭게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토샵에서 지적도와 요즘의 지도를 대비시켜 보니 예전에 제가 성곽을 따라서 가본 것 중 남서측과 서남측이 틀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부분은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정확하게 조사하려고 합니다. 지적원도와 요즘의 지도를 합쳐보니 지금의 중동노인회와 우체국건물 근처가 사미당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위 고지도에서 본 사각형 반듯한 건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914년 이전에 사미당은 사라지고 없다고 봐야겠죠. 사라지기전 사미당을 본다면 추정 사미당 대지와 현재의 중동우체국부지를 합치면 사각형에 가까운 대지가 됩니다. 그러면 고지도에서 본 사미당건물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위 지도에 나오는 의창동주민센터로 이곳도 예전에 관아건물이었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잘모르겠네요. 다음에 한번 알아봐야 겠습니다.
▼ 의창동주민센터 앞의 각종 빌딩건물로 베이지색 빌딩건물 뒤편이 사미당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 위 빌딩건물 중 갈색빌딩 옆이 우체국건물인데 위 지적도에는 사미당이 헐리고 나서 조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미당의 건물부분도 우체국건물과 연결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우체국에서 조금 내려오면 소방도로가 보입니다. 우측의 빌라는 위 지도에도 표시한 정동아트빌라인데요. 소방도로는 예전에 수로였습니다. 그러면 수로옆에 사미당이 있었으니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의창동 주민센터에서 바라본 베이지색 빌딩건물의 뒷편입니다. 지적도 기준과 고지도 기준으로 본다면 여기가 사미당이 있었던 곳으로 생각이 됩니다.
▼ 위 베이색빌딩과 골목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중국요리점으로 사미당의 담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다만 사미당의 건물과 사미루의 건물은 틀리다고 생각이 듭니다. 루와 당은 틀리는 건물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김종영 부와 조부중 한명이 사미루라는 건물을 짓고 사미당이 없어지는 것을 위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 중동노인회 건물로 이곳은 사미당옆에 있었거나 사미당 건물였을 수 도 있습니다. 사진상의 우측편 공터가 사미당의 건물 추정지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은 사미당의 건물은 없었졌지만 창원시에서 여기에 예전에 이런 건물이 있었다는 안내판 정도는 부착을 하여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하지를 않고 있네요. 창원명칭 사용 600주년이라면 많은 행사를 추진하면서 명칭을 사용한 읍성안에는 아무런 조치를 치하지 않는 것은 단체장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공무원들의 의지부족일까요? 잘모르겠네요.
사미루의 건물은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던것 처럼 창원읍성의 사미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미루 옆에서 본 공적비가 이곳 사미당 앞에 있었던 것이라면 이야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사미당이 없어지거나 사미루로 옮기면서 이곳에 있던 공적비도 함께 현재의 사미루로 옮겨갔던 것은 아닐까요?

지적도 이미지 출처 : 우리문화재연구원
고지도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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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theseus 2008/08/28 12:24 #

    일부 자료가 잘못된 부분도 있으나...잘 정리하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저 건물들을 지은 사람은 김종영의 증조부입니다. 후손들이 조상을 잘 모시고 공부 열심히 하길 바라고 지은거죠~ㅎㅎㅎ
  • 팬저 2008/08/28 15:03 #

    잘못된 부분은 정리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더욱 더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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