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왜성(선진리성)_02 왜성(倭城)



사천 선진리왜성의 구조도입니다. 1번이 천수각이고, 2번은 사천해전 기념탑, 3번은 성문, 4번은 공연장, 5번은 화장실입니다. 보시다시피 천수각까지 가기위해서는 성문쪽이나 2번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3군데에서 총을쏘기때문에 전진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천수각으로 갈수 있지만 거기는 상당히 가파란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왜성도 해자가 있는 것이 보통이고 해자도 우리나라의 읍성보다 폭이 큰데 선진리성에는 없더군요. 정유재란당시 선진리성은 3명이 바다였기때문에 출입구 방향에만 2중으로 해자를 쳤다고 합니다.
▼ 복원을 하면서 생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진리성은 벗꽃축제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것 때문인지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로 변한 것 같습니다.
▼ 공연장에서 많은 공연들이 펼쳐지고 ....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진리 벗꽃에 관해서는 많이들 아시는 것 같은데 사천해전에 관해서는 잘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 매향비로 매향이란 하늘과 땅의 신을 모시기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거나 향을 피우는 의식을 말하며 이때 의식을 행하는 과정 및 시기와 관련집단 등을 기록한 비를 매향비라고 한다. 그런데 어찌 선진리성에 이 매향비가 있는 것일까요?
▼ 왜성의 성문중 작은문으로 왜성의 경우 이런 작은문을 달아서 출입을 하거나 했고 적의 침입시 몸을 숙이게 만들어서 적을 공격하기 위해 작은 문을 달았던 느낌이 듭니다.
▼ 왜성의 문양인가 싶어서 찍어 보았는데 잘모르겠네요.
▼ 왜성의 정문으로 왜성 또한 적의 화공에 대비하여 철엽을 달았다고 하던데 선진리성에는 없었습니다. 정유재란 당시에 성문에 흙을 뚜껍게 발라 화공에 견디게끔 하였다고 합니다.
정유재란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가 성주였는데 명군이 1598년 10월 1일 공격을 막아내고 명군을 쫓아갔는데 진주까지 쫓아갔다고 합니다. 명군은 패패하고 나중에 선진리성을 함락한 후 명군의 시신들을 모아놓은 것이 조명군총입니다.
▼ 성문을 잠그는 방식(뭐라고 불러야 될지 잘모르겠네요.)이 우리의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틀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걸어서 잠그는 방식인데 비해 왜성은 좌우에서 끼우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네요.
▼ 왜성의 정문을 안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임진왜란 최후 전투도의 그림으로 일본군과 명군의 전투가 보입니다. 일본군은 순천왜성에 총안으로 조총을 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왜성의 전투방식을 잘 알 수 있는 그림인 것 같습니다.
▼ 복원을 한것은 너무 작게 복원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왜군들이 키가 작기는 작겠지만 너무 낮게 복원한 것일까요?
▼ 일본군은 왜성을 바닷가에 축성하고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수 많은 조선인들을 잡아갔다. 일본으로 끌고갈 조선인들이 잠시 머무르는 곳이 왜성이었던 것이다. 왜성을 통해 일본으로 간 조선인들의 수가 15만명 이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 호구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공격하는 공격군에게 일본군의 조총은 불을 품겠죠.
▼ 천수각은 복원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석대만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 천수각은 일본 왜성의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로써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전망대, 사령탑 등으로 사용되었고 에도시대 이후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수각은 우리가 상상하는 높이보다도 더 높게 만들어 놓아서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방어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 천수각터는 2005년 발굴조사시 다량의 기와가 발굴되기도 하였고 성내에서 가장높은 지역이기도 하여 천수각터로 추정하고 복원을 하였습니다.
▼ 천수각을 가기위한 계단으로 천수각터에는 공군 위령탑이 있었습니다. 충령탑이라고 적혀있네요.
▼ 천수각을 가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다가 만난 특이한 돌입니다. 마치 벌집의 모양같이 보였습니다.
▼ 천수각에서 내려다 보았는데요. 높이는 4미터 정도 되어보였습니다. 완벽하게 복원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높이는 높지 않았습니다.
▼ 천수각에서 사천해전승전탑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성곽의 높이는 2~2.2미터 정도 되어보였습니다.
▼ 천수각의 성곽의 모습으로 90도 꺽여있는 왜성의 구조가 잘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에 있는 왜성과 달리 잔돌끼움방식의 성곽으로 만들어진 것은 성곽을 쌓는 분들이 노하우가 더해진 것 같은데 일본에 있는 왜성은 이런 방식이 아닌것 같은데....
▼ 사천해전승전탑이 있는 곳에서 선진리성의 정문을 바라본 모습으로 정문을 방어하기위한 성곽의 모습이 잘보입니다.
▼ 선진리성 아래 나즈막한 산이 있는데 가파른 모습을 찍기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여기서는 가파른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네요.
▼ 성곽 아래로 내려와서 천수각 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성곽의 높이와 함께 천수각의 성곽 높이까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천수각의 성곽 높이만 찍은 사진입니다.
▼ 천수각의 성곽의 돌들을 축성한 방법을 알기위해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바깥돌을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지만 돌의 규모가 조금 작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잔돌끼움 방식의 축성으로 히메지성의 경우도 잔돌끼움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런식의 잔돌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 선진리성의 치성(일본의 성곽도 치성으로 부르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으로 이곳에 일본 왜성의 방식을 만들지 않은 것은 성곽주의로 벗꽃을 많이 심어놓아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성곽의 축성방식으로 천수각에 축성한 방법과 똑같이 축성하였습니다. 다만 높이가 작다는 것이 보이죠.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왜성은 2중으로 해자가 둘러쳐져 있고 목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 방어에 유리하기 위해 왜성은 ㄱㄷ 방식으로 되어있어서 적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유리한 방식으로 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때 조성한 선진리성은 사천신성(泗川新城)으로 불리었는데 사천구성(泗川舊城)은 현재의 사천읍성이었다.
▼ 선진리성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왜군들이 정유재란 당시 급하게 석성으로 축성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일제 강점기때 이곳이 자신들의 승전(조명 연합군전투에서 승리)을 기념하기 위해 벗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는데 그후 해방이 되고 나서 6.25 전쟁때 희생당한 공군위령탑이, 사천해전승전탑, 각종 공적비를 들어서고 최근 사천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공연장을 만들고 왜성을 복원하다보니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이상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 여기도 출입문인지는 몰라도 차량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군요.
▼ 수령이 200여년 이상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높이도 30여미터 정도 되어보이더군요.
▼ 어느분의 무덤인지 선진리성 성곽앞에 있더군요.
▼ 성곽의 축성방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상부와 하부의 성돌의 크기와 함께 잔돌을 끼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선진리성을 오르기 위해 올라오는 주출입구로 벗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선진리성 주차장근처에서 본 현감공적비로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선진리성을 가려면 상점들 사이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은데 난 이상한 곳으로 올라갔으니...
▼ 선진리성에는 상당히 넓은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내가 갔을때에는 보는 것과 같이 거의 차가 없었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조선시대때 사용한 조창과 선진리성(토성)으로 복원하던지, 사천해전 기념공원을 조성하던지, 벗꽃 축제를 위한 공연장을 조성하던지, 아니면 왜성을 복원하려면 제대로 복원하던지 해야 하는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지 이것 저것을 만들어 놓아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내 생각에는 사천해전을 위한 기념공원과 함께 임진왜란을 알리는 공원이 되었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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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경남 백의종군로 사업1 2009-08-08 10:58:41 #

    ... 있는데 이런 부분은 놓아두고 많은 돈을 들여서 임진왜란 수난사를 짓는 것도 조금은 아쉽고 선진리성 바로 옆에 있는 조명연합군의 귀무덤이 있는데(조명군총) ....사천 선진리성1사천 선진리성2사천 조명군총또 하나는 합천의 초계지역의 권율도원수를 만났던 곳을 기념하여 초계 관아를 복원한다고 합니다. 아직 뉴스에는 안나왔는데요. 합천군의회에서 다루었습니다. 여기 ... more

덧글

  • 유진우 2008/07/25 15:22 # 삭제

    울산왜성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울산왜성은 행정 착오로 택지개발을 공원으로 변경하는 통에 원형이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고 충의사는 격전의 장소에 세워지지도 않았으니까요( 서생포 왜성 내에 창표당을 세웠던 전례가 있는데 말이죠 )
    그래도 저렇게 기초라도 복원했으니 다행입니다. 흙담은 고증 오류일 가능성이 높죠. 전에도 적었지만 성벽은 저것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벼락치기로 성을 쌓았다고 하지만 최전선의 성인데 저런 날림식으로 축성이 되었을리는 없다는 것이죠
    호( 壕 )가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성이 야마조( 山城 )이기 때문입니다. 평지에 축성한 평성( 平城 )이나 평산성이라면 몰라도 애시당초 규모가 작아 집단전에 유리한 야마조로 축성한 이상 굳이 해자를 파지 않더라도 순천왜성처럼 해수를 끌어들인다든지, 목책을 겹겹이 세워둔다든지 하는 식으로 방어할 수 있으니까요
  • 팬저 2008/07/25 23:17 #

    울산왜성도 그렇겠지만 김해에도 왜성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곳은 어떠할지 모르겠네요. 시간나면 가보려고 하는데 가보고 흔적이 있으면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곽의 높이를 작게한 것은 재정일 수도 있고 벗나무때문인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해수보다는 목책이 아무래도 사용하기 편했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 유진우 2008/07/25 15:26 # 삭제

    덴슈카쿠 축대가 저렇게 낮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최소 10m는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작은 규모라면 아마 3~4층 정도로 낮았겠네요
    일본 측에 고증 자문을 의뢰했다면 서생포 왜성과 같이 간단하게 복원도가 나오는데 사천시가 규슈와 협력을 안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시마즈 요시히로군이 주둔했으니 자연히 시마즈 가문의 영지인 규슈 가고시마 쓰루마루성을 참고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구조도를 보니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의 구획이 잘 구분되어 있습니다. 혼마루가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네요. 아마 집단전에 유리하도록 배치를 넓게 잡고 내부에는 고톈이나 각종 시설들이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치성은 대체적으로 우리식 표현이고 일본식으로는 저 위에 야구라( 성루, 평시엔 창고로 이용하다가 전시에는 벙커로 운용 )를 세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문 옆이니( 일본군은 대체적으로 충차를 돌격시키는 것보다는 맨몸 돌격해서 부수는 것이 일상인지라 ) 필수적으로 세웠을 듯
  • 팬저 2008/07/25 23:18 #

    유진우님의 해박한 지식때문에 많이 배웁니다. 종종 방문해주시고 좋은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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