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소을비포(소비포)진성_03 진성(鎭城)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분 중 소을비포(소비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오는 이영남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율포만호였다가 강등되어 소비포 권관으로 보직을 옮겨서 임진왜란시 전투에 참가하게 되고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전사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권관은 초급장교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종9품이라고 하니...
▼ 1872년 지방도 지도에 나온 소을비포진성의 그림과 같이 현재도 선박들이 그때와 똑같이 포구에 정박하고 있습니다.
▼ 서측성곽에서 남측과 동측성곽을 바라본 모습으로 동측성곽은 산의 형태를 따라 위로 조금 올라가서 성곽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오솔길님이 고성군청에 물어보았을때 옹성부분만 빼고 다 복원이 되었다고 하던데 진짜로 이부분은 복원이 되지 않았더군요.
▼ 옹성의 터는 생각보다 크기가 컸는데 이부분은 저번 고성 소을비포진성 1에서 이야기 하였는데 현재는 아무것도 없어서 썰렁합니다. 옹성과 서문이 복원이 된다면 그래도 좀 자세가 잡히겠는데요.
▼ 발굴 당시의 서측 옹성의 모습으로 옹성과 함께 서문의 위치가 보입니다.(좌측 구멍이 있는 곳)
▼ 서문지를 지나서 남문방향을 내려가면 급경사로 된 체성이 나옵니다.
▼ 남문 체성에서 바다를 바라본 모습으로 임진왜란시(사천해전) 이곳에서 출발하여 이순신함대와 합류를 하더군요.
▼ 남문으로 홍예식의 성문구조로 되어 있더군요. 문의 폭이 너무 좁아서 성인남자 두명도 지나가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았습니다.
▼ 소비포진성 또한 홍예식으로 된 것을 보니 예전에 갔었던 경상우수영성지의 남문이 생각이 납니다. 그곳 남문도 홍예식이고 소비포진성의 남문도 홍예식이네요. 진성의 남문은 홍예식으로 만드는 것 일까요? 아닐까요? 아니면 우연일까요?
▼ 부산 수영 경상우수영성지에서 본 남문으로 홍예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 경상우수영성지의 성문구조도 비슷하게 보입니다.
▼ 성문고리를 찍으려고 했는데 돌로 성문을 막아 놓아서 이렇게만 찍습니다.
▼ 남문의 성문도 철엽을 달아서 화공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 이제 남문 성문을 빠져 나왔습니다.
▼ 남측성곽과 남문 그리고 좌이산의 모습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 남측성곽의 높이는 진성 바깥에서 보면 3미터 정도의 높이가 되어 보입니다.
▼ 남측성곽의 수구의 모습입니다.
▼ 고성소을비포성지의 안내판으로 1872년 지방지에 있는 소을비포성지 지도 그림이 보입니다.
▼ 고성 소을비포 진성에 관련된 안내글
▼ 남문앞에는 이렇게 주차시설이 잘되어 있는데 저는 북문에 대충 주차하고 올라갔습니다.
▼ 다시 소을비포진성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런데 남문의 성곽은 성문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의 높이가 많은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식이라면 적의 입장에서 좌측을 공격하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진성이라서 읍성과 달리 전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대포진성이나 부산진성전투를 보듯이 진성또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성곽의 높이는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체성의 성곽의 구조를 보기위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성돌을 상당히 잘 맞추어서 체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측성곽을 따라서 올라가보았는데 내측에서 본 체성의 높이는 1미터도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시 북문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소을비포진성은 석성으로 내측과 외측이 모두 석성으로 된 협축방식된 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동헌의 초석으로 우리가 많이 본 동헌의 모습과 별로 달리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측성곽에서 남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성곽의 돌은 4단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곳은 내측사진인데 외측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만 내측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동측 체성에서 바라본 북문과 동화포구입니다.
▼ 똑같은 장소에서 남문방향을 바라본 것 입니다. 소을비포진성에는 각종 관아들이 많이 있었는데 발굴 조사하면서 흔적들이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경남 고성군에서는 소을비포진성의 관아들을 차례로 복원한다고 하던데 언제쯤 될까요? 다 복원되는 시기는 2020년 정도 될까요?
▼ 북동측 치성으로 외측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치성의 높이는 대략 1미터도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치성의 다른부분도 마찬가지로 산을 깍아서 만들면서 높이를 높게 하지 않았습니다.
▼ 이제 소을비포진성 북문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만 북문의 성곽에는 누혈이 없는 이유가 뭔지를 아직도 모르겠네요. 보통 누각주위에는 누혈이 있던데....
▼ 북문 근처 주차장에서 바라본 소을비포진성의 모습입니다. 옹성을 복원하고, 서문을 복원하고, 각종 관아들이 복원을 한다면 조선시대 남해안의 수군기지가 부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또 길을 물어서 가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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