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5 읍성(邑城)



낙안읍성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임경업장군입니다.
▼ 임경업장군의 비각으로 인조6년(1628년) 4월 1일 건립한 임경업장군 선정비는 인조4년(1626년)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직하면서 군수로서의 역활도 훌륭하였지만 정묘호란 당시 큰공을 세운것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민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 인조실록 6년(1628) 2월 8일조에 김류가 "신의 종사관 김반이 충청우도와 전라도를 순검하여 수령들이 어진지 아닌지를 사목에 따라 염탐해서 신에게 첩보했는데... 낙안군수 임경업이 벼슬살이를 청렴히 삼가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고 아뢰자 임금이 임경업에게 표리 한벌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해에 임경업이 체찰부 별장으로 전임되면서 낙안군을 떠나게 되자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고마워하며 4월 1일 선정비를 세워 주었고, 그뒤 1748년 군수 김우가 비각을 세우고 1887년 중수하였다. 1997년에 담장까지 복원했는데 선정비와 비각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47호이다.
▼ 낙안읍성 객사를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홍살문
▼ 객사를 들어가는 내삼문. 낙안객사는 예전에 정문 역활을 했던 쌍청루(남문)로 들어서면 큰길을 거쳐 바로 앞에 보였다. 동헌과 함께 중심부에 있던 건물로 다른 읍성의 경우에는 흔히 왼쪽에 객사가 있는데 낙안읍성의 경우에는 오른쪽에 있다.
▼ 주관은 궐패()를 모셔두고 있으며 좌우익헌은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로 주관보다 지붕을 낮게 하여 격식을 갖추었습니다.
▼ 최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기록에 따르면 세종32년(1450년) 낙안군수로 재임한 이임이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철종8년(1857년) 군수 이명칠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낙안지관의 명패가 보입니다. 익헌의 동쪽은 문인이 사용하고 서쪽은 무인이 사용한다고 하네요.
▼ 궐패의 모습이 보입니다.
▼ 낙안객사는 1900년 초까지는 모두 보존되었으나 1909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변조된 부분이 많았지만 1982년에 낙안초등학교를 옮기고 다시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낙안초등학교때 객사를 교무실로 사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 낙안객사의 건물은 정면 7칸, 측면3칸으로 완벽한 좌우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낙안객사의 주관은 맞배지붕이고 좌우익헌은 팔자지붕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동헌과 객사사이에 널뛰기를 두어서 관광객이 체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 또한 씨름장을 조성하여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끔 되어있습니다.
▼ 낙안읍성의 동헌 모습입니다.
▼ 동헌앞에 있는 낙민루로 백성을 즐겁게 하는 곳이란 뜻의 낙민루이다.
▼ 낙안읍성 동헌은 발굴조사하여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서 1990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고종때 군수 민영은이 지은 시를 보면 사무당(使無堂)이라고 불렀던 듯하다고 합니다.
▼ 그래서일까 현재의 낙안읍성 동헌에는 사무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동헌은 중앙집권국가였던 조선의 경우 중앙에서 파견된 각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으로 불리우며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지방관들이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외아라고 불리우며 동쪽에 있는 방은 수령이 서쪽에 있는 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진성의 경우 가족들과 같이 갈 수 가 없었는데 읍성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내려가서 생활하였습니다.
▼ 사무당이라고 적혀있는 동헌에서 죄인을 심문하고 있네요.
▼ 낙안군수와 6방들이 서있고 죄인은 무릅을 꿇고 앉아 있는데 어떤 중죄를 지었을까요?
▼ 내아 즉 서헌을 들어가기 위한 협문이 보입니다.
▼ 동헌의 굴뚝입니다. 뒷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헌과 조금 멀리 굴뚝이 나와있네요. 그런데 예전의 굴뚝은 지붕과 같이 붙어 있던데 이는 집의 크기가 작아서 그런것 같네요.
▼ 내아 즉 서헌의 모습으로 조선시대 사대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 아래채에는 머슴들이 앉아있는데 보시다시피 둘이 누으면 꽉찰 것 같은 좁은 방입니다.
▼ 이 곳은 지방에 파견된 수령이 가족들이 생활을 하던 공간으로 내아 또는 내동헌이라고 불리우며 구조는 일반 가정의 살림집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 사대부가의 안채와 비슷한 구조로 안방과 마루, 건너방 그리고 안방과 연결된 부엌의 구조이다.
▼ 장독대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있더군요.
▼ 내아의 부엌의 모습으로 4명이서 분주하게 식사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 내아에서 동헌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 내아에는 동헌과 연결된 협문 말고도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이 있어 이곳을 통해 바깥으로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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