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2 읍성(邑城)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습니다.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습니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이설이 있습니다. 조선세종때 읍성을 증축하거나 새롭게 많이 쌓았는데 이때 토성을 석성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낙풍루에서 북측방향으로 회각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담쟁이 나무가 치성에 달라붙어 있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주고 있습니다. 치성은 성곽의 요소에 성벽으로 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로 凸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 치성의 회각로는 그냥 간단하게 되어있습니다. 적들도 성을 공격하기 힘들지만 치성을 사수하는 아군 또한 여장이 없어서 피해를 입기가 쉽습니다. 또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곳이기도 합니다.
▼ 성벽의 높이는 대략 4미터 이상되어 보입니다. 외탁으로 성곽 하단의 민석들이 성문근처에 있는 민석보다는 작지만 조금은 크게 보입니다.
▼ 체성의 내탁으로 위 외탁에 보이는 민석보다는 작은 느낌을 받습니다.
▼ 체성 또한 민석을 두고 축성한 것이 보입니다. 다만 회각로 또한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낙안읍성의 운치스러운 느낌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 동측과 북측 성곽의 각이진 곳에 보통 설치하는 것이 각루인데 낙안읍성에는 각루보다는 치성을 설치를 하였더군요. 보통 치성은 150미터 사이에 하나씩 두게 됩니다만 딱 150미터 거리만큼 설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 치성에서 본 북측 해자입니다. 풀들에 의해 잘보이지 않지만 해자의 흔적이 보입니다.
▼ 북측성곽으로 일직선으로 쭉 연결되어 있으며 활을 쏘는 곳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체성의 한부분으로 미석위에 설치된 것으로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 낙안읍성 객사뒤에 심어진 나무로 수령이 대략 400~500년 되어 보입니다.
▼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쯤 오니까 시멘트로된 회각로가 끝이 나네요.
▼ 북측성곽을 오르기 위한 계단으로 사용된 돌로 봐서는 최근에 보수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예전에 이곳에 낙안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낙안읍성중 가장 많이 허물어진 것이 북측성곽입니다. 지금은 낙안초등학교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 내축의 성돌도 마찬가지로 최근에 축성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낙안읍성의 동헌으로 동헌의 담을 보면 하단부에 성곽에 사용한 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추측할때에는 복원공사를 하면서 성곽에 사용한 돌들을 담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국궁의 과녁판까지 걸어서 왔네요. 푸른잔디와 함께 멋스러워 보입니다. 낙안읍성의 활터를 북측에 세운 것은 풍수지리적으로 낙안동쪽의 백호가 너무 강해서 오공치의 지네가 빈계재의 닭을 해치려고 하므로 오공치의 허리를 끊어 길을 내고, 동헌 동쪽에 사정을 지어 오공치 쪽으로 활을 쏘도록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의 읍성 글 허경진)
▼ 다시 본 회각로의 모습으로 시멘트로 공사를 마무리해 버렸네요. 시멘트로 한 이유는 황토로 했을 경우 토사가 흘려내려 성곽이 허물어지기 쉬어서 시멘트로 마무리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 북측성곽의 끝부분으로 서측성곽이 시작되는 성곽의 내축입니다. 사용한 성돌은 정방향으로 된 돌들로 내축을 한 느낌을 받습니다.
▼ 서문지 근처로 오니까 기와로 된 민가들이 보여서 그런지 조선시대의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 서문인 낙추문의 누각은 아직 복원을 하지 않았는지 없더군요. 낙안읍성 소개 페이지에는 복원했다고 하던데 화재로 인한 유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복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 서문의 옹성의 모습으로 동문의 민석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것이 최근에 복원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 하지만 서문에 사용한 민석들이 좀 더 예전에 사용한 성돌같은 기분을 줍니다. 그리고 하단에 있는 초석들은 서문인 낙추문의 초석들로 동문에 있는 낙풍루의 누각의 초석들과 비교하면 조선시대때 사용한 초석의 느낌을 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초석들은 발굴한 초석이더군요.
▼ 서쪽 체성에 펄럭이는 사령기들(사령기들을 메워두는 명칭이 있던데 잘모르겠네요.)
▼ 이제 서문을 향해 내려와봤습니다. 우측에 있는 성곽은 동측 성곽과 별차이가 없이 보입니다.
▼ 위사진의 반대편에 있는 성곽으로 위와 비교해도 확실히 성곽의 돌들이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성돌들은 둥글 둥글한 모습이고 아래에 있는 성돌들은 각이있는 모습입니다. 낙추문은 가을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낙추에 추가 가을 秋자입니다.
▼ 낙추문의 초석들은 작은 모습입니다. 여기서 1편에서 제가 의문점을 가졌던 의문인 평거식 성문에 관해서 입니다. 제가 1편에서 낙안읍성을 복원하면서 1872년 지방지도에 나온 평거식성문을 모를리 없을 것인데 왜 개거식문을 지었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곳 서문에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만약 평거식 성문이었다면 이런 초석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거식은 직각으로 된 성돌위에 누각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초석들이 있을리 만무하죠. 서문지에서 바라본 옹성의 모습과 서측방향입니다.
▼ 낙안읍성내에 있는 화장실로 초가집으로 아담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창읍성이나 무장읍성에서 본 화장실과 차이가 나네요. 뭐랄까 읍성에 어울리는 화장실이라고 해야 할까? 초가와 함께있어서 그런지 더욱 더 멋지게 보입니다. 다만 화장지가 없고 짚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 이제 다시 서측성곽을 올라 왔습니다. 사령기와 함께 옹성의 회각로의 모습이 보입니다.
▼ 서문옹성의 외탁의 모습으로 내탁과 비슷한 크기의 돌들로 축성하였는데 정방향크기의 돌이 아닌 장방향 돌들로 성돌로 채워놓았습니다.
▼ 이제 낙안읍성중 가장 높은 곳인 서측성곽에서 남측성곽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3편에서는 남측성곽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핑백

  • 팬저의 국방여행 : 낙안읍성 옹성이 왜 이렇게 작지? 2012-11-09 18:07:30 #

    ... 리가 먼것 같습니다. ㅠㅠ 그나마 있는 낙안읍성을 제대로 복원을 하면 좋을 것을 이런식이면 곤란한데 말이죠.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1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2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3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4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5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 _06 ... more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