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통영상륙작전2 6.25전쟁



북한군의 공격을 8월에 접어 들면서 약간 저하되고 대략 낙동강을 중심으로 적군과 아군이 대치하는 상태에서 동부전선은 포항을 중심으로 하여 중부에서는 왜관 등지에 혈전이 여전히 반복되었고 서부 전선에서는 마산과 진해, 부산을 위협하게되었습니다. 진동리 지구의 적은 매일 증강되는 유엔군의 철통같은 방어작전으로 인해 그들의 의도대로,마산, 진해, 부산등을 손아귀에 넣을수 없음을 알고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통영으로 돌려 견내량 해협을 건너 거제도를 점령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마산과 진해는 해상으로부터 봉쇄되며 양지역은 적의 사정거리에있게 되는 것이었다. 8월 15일미명을 기하여 북한군 7사단 소속의 증강된 1개대대 약 650명이 고성으로부터 통영으로 향하였고 이날 17:00시 경에는 그 선두가 통영읍 북방 3킬로미터 지점인 통영반도로 통하는 가장 좁은 지대인 원문고개에 침투하였다. 이때 경찰관 약 100명이 원문고개를 방어하고 있었으나 적의 공격을 감당치 못하고 야음을 이용 통영을 포기하고 한산도로 철수하여 버렸다.

▼ 인민군의 1950년 8월 계획도입니다.
▼ 지도상을 보시면 통영읍내에서 고성방향에서 통영읍내를 진입하기위해서는 좁은 원문고개를 꼭 거쳐야 하고 통영읍내에서 가장 높은 곳은 망일봉입니다. 이곳을 점령해야만이 인민군들의 후속지원을 차단할 수 있으며 상륙작전이 성공리에 마칠수 가 있습니다. 원문고개 우측방향은 지금은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로 조성이 되어있지만 1950년대를 생각해서 바다로 매워보았습니다.
▼ 1950년 8월 17일 18시에 진해에서 출발한 전투함과 LST는 기만전술로 P.C-703호등 수척의 배는 통영읍에 포격을 가하고 장평리에 기습적인 상륙전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군 최초의 단독상륙작전이고 귀신잡는 해병의 닉네임을 얻게됨은 물론 마산방어선을 지키기위한 중요한 상륙작전이다. 아래 사진은 신거제대교를 바라보는 장평리입니다.
▼ 구 거제대교에서 바라본 신 거제대교입니다. 때는 킨 부대의 반격작전이 방어작전으로 전환된 지 3일 후인 1950년 8월 16일이었다. 8월 16일은 마산방어선에서 중 진동리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에게는 자신감이 충만할때였다.
그 동안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던 통영읍에 약 1개 대대의 적 병력이 침입하자 해군본부에서는 바로 그 무렵 킨 부대 작전에 참가한 후 진해에 집결해있던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장에게 거제도에 상륙하여 통영에서 거제도를 노릴 것으로 판단되는 적을 격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거제가 뺏긴다면 너무도 어려운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통영이 인민군수중에 들어갔고 인민군들이 거제를 점령하면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이게되는 미군과 국군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당시 이순신장군이 거제를 배경으로 부산을 공략하듯이 거제가 점령되면 마산,진해,부산은 상당한 압박과 함께 병력들을 해안에 배치해야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장평리포구의 모습입니다. 낮은 산과 조그마한 집들이 한폭의 그림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통영을 침공했던 그 적은 킨 부대의 반격작전 때 미 해병5연대에 의해 점령당하고있던 고성 지구로부터 내도한 북한군 7사단의 일부 병력이었다. 그런데 명령에 따라 2척의 LST에 병력을 분승시켜 그날 밤 10시경 진해 군항을 출항했던 김성은 부대장은 그 이튼날 새벽 통영반도 동북방에 있는 지도 동쪽 기슭에 이르자,
신거제대교를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으로 거제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거제와 통영사이에 놓인 신,구 거제대교사이에 흐르고 있는 바다가 견내량이다. 견내량은 임진왜란때 한산대첩으로 잘알려져 있다. 내가 직접가보았지만 물살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진도의 울돌목보다는 물살이 빠르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자신이 새워놓은 복안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먼저 2개조의 정찰대를 운용하여 통영시가지쪽과 거제도 서해안쪽의 적정을 살펴본 그는 해군본부에 타전하여 작전명령의 변경을 요청했다. 그가 작명의 변경을 요청했던 까닭은 불과 기백명의 적은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서해안을 수비하는 소극적이고 불안한 대책보다는 차라리 당시 통영 해상을 초계중에 있던 P.C-703호 (함장 이성호중령)를 비롯한 수 척의 우리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통영읍 동북단의 장평리에 기습적인 상륙전을 감행하려는 것이었다. 신거제대교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까지 왔지만 길이 없어서 가도 못하고 있다가 돌아와버렸는데 상륙지점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분명히 이 근처는 근처인데 찾지를 못했습니다.
김성은 부대는 그 이튼날 새벽 통영 시가지를 감제하는 시가지도쪽의 망일봉(망일봉-148)을 선제점령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통영읍의 진입 길목인 원문고개로 진출시켜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는 가운데 총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통영의 적을 독안에 든 쥐처럼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은 거제도를 향해 줌인해본 모습입니다. 상당히 가까운 것을 느낄 수 있죠.
판단은 정확하게 내렸던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통영에서 망리봉을 점령하면 통영읍내가 내려다 보이고 수비를 하기도 좋고, 원문고개를 점령하면 적은 원문고개를 거쳐야 통영 및 거제를 갈 수 있으니까요? 리더의 정확한 판단은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김성은 부대의 정확한 판단은 통영상륙작전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통영상륙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사진입니다.
▼ 구, 거제대교에서 바라본 장평리부근으로 낮은 야산을 넘어야 해병상륙지가 보일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전계획을 끈질기게 요청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작명의 변경을 승인받게 된 김성은 부대장은 P.C-703호와 소해정 504,901,320,307호 등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적으로 하여금 시가지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그 일대에 포화를 집중시키는 가운데 기습적인 상륙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계획대로 그 이튼날 새벽 1개 중대를 원문고개로 진출시키는 한편 망일봉을 선제 점령하여 한발 뒤늣게 그 봉우리로 올라오는 100여명의 적을 요격하여 승기를 잡게 되었고, 그날 오후 해군통제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증원병력을 지원받고, 그 다음날 (19일) 미명을 기해 총공격을 감행한 끝에 그날 오전 10시경 드디어 적 수중에 들어가 있던 그 통영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 해병대가 통영시 장평리에서 처음 상륙한곳으로 직접 가보았지만 찾지를 못해습니다.(이후에 찾아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었다. "당신들은 정말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해내었소" 이 말은 전광석화와도 같은 그 작전의 묘수에 경탄을 금치 못한 외신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 장평리부근에서 구, 거제대교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습니다.
▼ 구, 거제대교를 확대해본 모습으로 바다라는 느낌보다는 강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다는 잔잔합니다.
▼ 구, 거제대교의 모습으로 신거제대교가 생기는 바람에 통행량이 아주 적습니다.
▼ 구 ,거제대교를 오른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사실은 해병대 상륙지를 찾으러 가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 여기는 원평초등학교 근처입니다. 위에 사진에 장평리에서 1km가 떨어지지 않는곳입니다. 상륙을 했다면 이곳인데 여기도 상륙지 비석이 없더군요.
▼ 또 길을 따라서 한참을 갔습니다. 앞에 있는 섬이 고래모양의 지도입니다. 몇군데를 가보았으나 상륙지 비석을 찾지 못해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상륙지와 관계가 없어서 올리지 못합니다.
▼ 통영상륙작전에서 위에서 설명한 글을 정리한 그림지도입니다. 글보다는 그림설명이 한눈에 들어오겠죠.
▼ 해병대가 장평리에서 상륙을 하고 통영읍쪽으로 갔다면 이길이외는 없을 것입니다. 사진은 통영 방향을 바라본 14번 국도입니다.
▼ 통영읍내입구(지금은 통영시 입구)입니다. 사진상에 우측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 망일봉입니다. 이곳을 거쳐서 망일봉으로 해병대는 진입합니다.
▼ 망일봉중 한산대첩기념공원에서 바라본 통영시내모습입니다. 바로 보이는 저 바다에서 P.C-703들이 통영읍내를 향하여 함포를 쏘아 마치 통영읍내로 상륙하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 확대해본 모습으로 통영경찰서방향입니다.
▼ 여기는 한산대첩이 있었던 곳입니다. 해군 함정들은 이곳에서도 망일봉과 난망산을 향하여 함포를 쏘았습니다.
▼ 망일봉에서 바라본 통영시내로 망일봉을 점령해야만이 적의 동태를 살필 수 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병대가 망일봉을 점령했고 해병대보다도 늦게 올라오는 인민군을 향해 사격을 하여 적 병력 100여명을 사살할 수 있게되어 승기를 잡게 됩니다.
▼ 망일봉은 그다지 높지 않는 산이지만 통영시내의 외각중심으로서 반드시 적이던 아군이던 꼭 필요한 요충지였던 것입니다.
▼ 통영상륙작전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현장인 원문고개이다. 원문고개는 고성에서 통영,거제를 가기위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곳이다. 지금은 우측이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가 형성되었지만 1990년 이전에는 바다였습니다.
▼ 망일봉을 향하지 않은 다른 1개조는 원문고개를 점령합니다. 원문고개를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이유는 위치상 아주 중요한 이유도 있지만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 원문고개는 전체적인 형상의 닭의 목처럼 가늘고 좌,우로 바다가 형성이 되어있어서 공격자보다는 수비가 유리한 지형이다.
▼ 원문고개와 통영읍내를 빼앗긴 인민군들은 1950년 8월 19일 15시 30분부터 대대적인 반격을 해왔습니다. 인민군들은 고성을 거쳐서 1,000여명이 공격을 해왔지만 통영읍내 함포사격을 한 함정들이 광도면 앞바다로 와서 함포사격을 지원해주고 원문고개에서 목숨을 건 방어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바다에서 해군함정이 지원이 있었습니다.
▼ 그다음날 1950년 8월 20일 14시 40분에 인민군들은 재차 공격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방어에 유리한 고지와 목숨을 내건 해병대의 투지때문에 적은 후퇴를 하기 시작하므로서 통영상륙작전은 성공리에 마치게됩니다. 위에 있는 곳 사진에서 확대해본 모습입니다.
▼ 아래 사진은 원문고개에서 통영시내쪽으 바라본 모습으로 원문고개는 좌,우측이 바다로 되어있는 곳입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외신기자들은 이 작전의 성공을 보도하는 기사에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찬사를 썼다. In commending of the brilliant victory in the operation, foreign reporters gave us a praise, saying "The might capture even the Devil" 무적해병대의 이름을 온세계에 널리 전파한 "통영상륙작전"이다. 한편 통영시가지를 탈환한 김성은 부대는 9월 10일경까지 적 후속 부대와 원문고개 공방전을 치르는 동안 일부 병력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떠나고 본대는 해군방위부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9월 22일 김성은 부대장의 지휘하에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으로 출항했다.
이상으로 한국 해병대의 단독상륙을 감행한 통영상륙작전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다음편에는 원문고개에 있는 기념탑과 고종석해병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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