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장군과 정암진전투 임진왜란



▼ 정암진 전투를 이해하려면 의령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의령은 일본 왜군이 부산에서 출발하여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가기위해서 지나가는 진주의 길목에 있습니다.
▼ 의령은 진주로 가는 길목에 있고 북로는 합천 동으로는 함안, 남쪽으로는 고성,함안이 있는 곳이다.
▼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9일째 되던 4월 22일 현고수에 북을 매달고 북을 치면서 의병을 모았다. 하지만 그를 따라 나섰던 사람은 자신의 노비 10명이었다고 한다. 4월 22일은 모리 테리모토가 이끄는 왜군 3만명이 김해,창원을 점령하고 현풍으로 들어오던 날이다. 아래 그림은 의령군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 현고수 곽재우장군이 북을 매달면서 북을 치어 의병을 불러 모았던 곳입니다. 그후 이불을 찢어서 깃발을 만들고 붉은 관복을 입은 다음 가산을 정리하여 곳간을 열고 사람들에게 곡식을 마음대로 퍼가게 하는가 하였다. 곽재우는 평소 눈여겨본 지략과 담력을 가진 젊은이 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한 결과 가까스로 수십명을 모았다고 합니다.
▼ 5월 4일 곽재우는 왜군의 척후선 3척이 남강을 거슬러 온다는 보고를 받고 선봉장 심대승을 비롯한 날래고 힘좀 쓰는 부하 10명을 인솔하여 거름강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강가 갈대밭에 궁수를 매복시키고 강속에는 통나무와 밧줄 등의 장애물을 설치하고 기다리다가 왜병들의 선박이 걸려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틈을 타 공격명령을 내렸다. 의병들의 공격에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모두 죽고 군선도 침몰해버렸다. 왜군의 보금 루터인 거름강 어귀를 지키며 왜군들을 기습 공격하여 승리했던 것이다. 이 전법은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사용한 전법인데 곽재우장군이 사용하였다고 하니 새삼 놀랍네요. 아래 그림은 의령군 홈페이지에 있는 거름강 전투도입니다. 이 전투의 여파로 곽재우 장군은 자신감을 얻었고 많은 의병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 그럼 거름강은 어디 일까요? 거름강은 현재 창녕군 남지읍과 함안군 칠서면, 의령군 지정면이 위치하는 곳이다. 이곳은 6.25전쟁때 낙동강 돌출부 전투로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되풀이 되는 군요.
▼ 1592년 6월 함안을 점령한 왜군 2만 명은 의령을 공격하기 위해 정암진에 도착해서 강을 건너기 위한 작전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이순신이 바다를 가로막는 바람에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육로를 통해 전라도를 침범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접전을 벌인 끝에 이 싸움에서 2만에 가까운 왜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참패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정암진전투가 벌어졌던 정암진근처에서 바라본 남강입니다. 우측에 새로난 정암다리고 보이고 앞에 있는 곳이 함안군 대산면입니다.
▼ 구 정암다리 청암철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차량은 다니지 못하게 되었있고 사람만 통행이 가능합니다. 당시 경상도를 맡은 적장은 모리구로모토이고 전라도를 맡은 자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인데 이들이 남강을 건너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암진이 있는 남강은 물이 깊은데다 그나마 얕은 곳은 진창이라 강을 건널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로 잡은 조선백성들을 이용해 마른곳만 골라서 깃발을 꽂아 표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곽재우는 의병들을 시켜 깃발을 모두 뽑아서 진창쪽에 다시 꽂아버렸습니다. 또 수심이 깊은 곳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강변 갈대밭에는 궁수들을 매복시켰습니다.
▼ 아래 사진은 정암이 잘보이는 곳에 설치된 정암루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남강과 정암다리 및 정암이 잘보입니다. 이틑날 날이 밝자 왜군들은 자신들이 표시한 깃발을 믿고 자신있게 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진창으로 된곳에 들어갔으니 허우적 거릴수 있었겠죠.
▼ 이때를 기다렸던 곽재우 장군은 명령을 내려서 궁수들은 쉴 틈 없이 활을 쏘아 왜군들은 많이 쓰러지게 되었죠. 하지만 왜군들은 자신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밀고 나오자 곽재우장군은 의병들을 후퇴시키면서 적을 유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키와 체격이 비슷한 의병 10명을 모아서 똑같은 홍의를 입혀 왜군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배치시켰다.
▼ 정암루 밑에 있는 곳인데 설명이 없어서 정확히는 알 수 가 없네요. 의령군에 물어보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배치된 홍의를 입은 곽재우장군은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 적들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후퇴하자, 적병들은 홍의를 입은 곽재우를 쫓아갔지만 여기서도 홍의장군이 나타나고 저기도 나타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등을 보이며 다시 강변으로 도망치니 이번에는 사방에서 의병들이 나타나 공격을 하자 싸워보다 못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이 전투로 왜군 2만명중 8천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그뒤부터 홍의장군만 나타나면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조선인은 이순신장군과 곽재우장군만 있다고 한다. 정암진 전투는 의병이 승리한 최초의 전투라고 한다. 하지만 소규모의 전투는 위에서 이야기한 거름강전투가 최초일 것이다.
▼ 정암루에서 본 정암철교. 그후 곽재우장군은 진주성전투에도 참여를 했고 정유재란때에는 화왕산성전투에도 참여를 하였습니다. 의병들은 잘 훈련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지방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지형지리가 밝았고 기습전략을 사용하였고 위장전술을 사용하여 승리를 이끌게 됩니다.
▼ 정암에서 바라본 남강의 모습. 지금은 다리가 있어서 통행을 자유롭게 하지만 옛날에는 정암진이 있어서 나룻배가 다녔습니다.
▼ 아래 그림은 의령군 홈페이지에 있는 정암진전투입니다.
▼ 일명 솥바위라고 부르는 정암입니다. 여기를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보기에도 강의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강에 핀 갈대. 여기에 곽재우 장군이 궁수들을 배치하여 왜군을 물리쳤죠.
연전연승의 곽재우장군은 이순신장군처럼 승리를 보장하는 장수입니다. 아래 마스코트는 경남 의령군에서 사용하는 곽재우장군의 마스코트입니다. 요즘 영국의 헤리왕자가 이라크파병을 나간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옛날 자신의 식량과 재산을 털어서 국가를 구하는 곽재우장군이야 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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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1/14 14:23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09/11/15 00:50 #

    감사합니다. 미천한 아마추어의 글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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