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읍성3 읍성(邑城)



2편 까지는 현재 남아 있는 창원읍성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3편에서는 http://www.wooricp.or.kr/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 발굴한 창원읍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은 우리문화재연구원에 있습니다.
▼ 아래사진은 여지도서에 나타난 창원읍성에 관한 지도입니다. 정가운데 창원읍성이 있고 읍성좌측옆에 보면 구병영(합포성지)가 있고 지도 맨 좌측 하단에 보면 진해계가 보이고 지금의 창원시 두산중공업근처는 웅천계가 보인다. 그리고 창원읍성 바로옆에 향교가 보인는 것을 알 수 있고 창원읍성 바로 뒤산이 천주산이 보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창원읍지에 나타난 창원읍성의 구역 및 경계부분입니다. 여지도보다는 건물의 위치가 많이 보이고 있으나 지도가 작아서 정확하게는 알 수 가 없습니다.
▼ 해동지도와 여지도를 확대해본 모습으로 창원읍성의 출입문이 4개 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문근처에 조그마한 개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원읍성에 관한 옛문헌을 보면 세조2년(1456년)에 창원과 울산에 성쌓는 일을 살펴보도록 임한이야기가 있다. 다음해인 1457년 읍성축조는 필요없고 박강과 구치관은 하삼도의 진과 보를 순심하여 축성대신 군사조직으로 방어대책을 수립함.
그후 성종7년(1476년) 병조판서 이극배의 건의를 받아서 울산과 창원에 축성을 명함. 다음해 1477년 창원읍성의 축조공사가 완공됨. 읍성의 높이가 12척 7촌이고 둘레가 4천4백10척(1,336.36 m)이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때 왜적이 창원읍성을 공격하니 병사 유숭인이 두번싸웠으나 패하여 도망가였다라고 합니다.(조선왕조실록 선조26권 9월1일자) 이때 창원의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싸우고 한사람도 항복한 사람이 없어 선조34년(1601년)에 창원도호부로 승격이 됩니다.
▼ 읍성의 규모와 성내시설을 보면 석성으로 되어 있고 동국여지도(1660~1674년)에 보면 둘레가 4,920척이었으나 1863년 대동지지에 보면 2,004척이 된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그 사이에 창원읍성의 규모가 축소가 된것을 알 수 있다.(임진란이 있은 후 대폭 축소된것임을 알 수 있다.) 창원읍성의 성문은 4개이고, 옹성이 4개, 치성이 18개, 여장이 600개, 우물이 1~2개, 연못이 1개로 기록되어 있다. 읍성 4대문의 이름을 보면 남문은 진남루, 동문은 향양루, 서문은 망미루, 북문은 공북루로 되어있다. 남문에 진남루로 된것으로 봐서 남문에 병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옹성은 4대문 앞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므며 치는 곡성으로 표기되어있다. 치성이 18개로 기록되어 있는걸로 봐서는 방어에 많은 부분을 할당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지도는 1914년 지적원도를 작성한 것이다.
아래 지도에 보면 생각보다 많은 암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갈색으로 된 성곽에서 돌출된 치성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적원도를 가지고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추정한 창원읍성지도입니다.
▼ 위 지도를 가지고 알기쉽게 제구성한 것입니다. 노란색으로 표현된 원은 제가 직접 가보고 사진을 찍었던 곳이고 북문 근처에서 찍었던 돌무더기는 성곽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녹색으로 된것이 창원읍성 추정되는 곳이고 빨간색선은 발견된 성곽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된것이 발견된 도랑입니다.
▼ 아래 사진은 제가 창원읍성을 추정 했던 것인데 위 추정 사진과는 차이가 많네요. 제 같은 아마추어가 접근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깊지 못하네요.
▼ 성내에 흐리고 있었던 도랑부분은 현재도 흐르고 있습니다. 1990년 이전에는 도랑이 있었으나 지금은 매립을 하여 볼 수 가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중동식당근처로 기억이 됩니다.
▼ 발굴 당시의 사진들입니다. 빌라 앞마당 부분인데 제가 찍었던 사진과 같은 위치네요.

▼ 그리고 동문지를 발굴 복원하는 것은 제가 사진 찍었던 이 곳입니다. 제가 이곳은 창원시가 매입하여 동문지로 복원한다고 예측하였는데 확실하더군요. 앞으로 2009년에 창원읍성 동문지는 복원이 된다고 합니다. 예산은 70억원들여서 한다고 합니다. 2008년에는 발굴조사 및 실시설계를 하여 2009년 착공하여 2009년 복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북 및 북쪽 성곽은 밭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예정에 없는 모양인데 이 부분도 발굴조사하여 복원하였으면 합니다.
복원내용을 보면 동문루인 향양루와 성곽과 해자를 복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에서는 해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옛문헌에도 해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제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읍성인 경우 보통 해자가 있었기 때문에 해자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복원할 경우 치성과 함께 옹성그리고 여장도 복원하였으면 합니다. 이왕 복원할거라면 창원도호부에 걸맞는 성곽이 복원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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