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장군의 망우정 임진왜란



▼ 망우정의 위치는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있다. 곽재우 생가와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다. 그가 왜 이곳까지 와서 여생을 보냈을까? 의령 유곡면에서 가까운 박진은 박진지구전투를 참조하시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곽재우는 1602년부터 망우정에 머무른 것으로 돼 있다. 1599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제 마음대로’ 그만두고 울산 병영을 비웠다는 이유로 사헌부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갔다가 돌아온 다음이었다. 아래 사진은 망우정이 있는곳의 전체모습입니다.
▼ 망우정 들어가는 입구 돌계단에 국화인 무궁화로 터널로 이루어져 있으나 내가 가볼때에는 무궁화가 피워있지 않았다.
사후에 ‘곽재우전’이라는 영웅소설이 나온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곽재우는 의병장으로서 상당한 민심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민심은 자칫 ‘역모’라는 모함에 걸리면 바로 목숨을 빼앗는 극약이 될 수도 있었다.

곽재우는 전쟁 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번 했다. 왜군을 피해 도망만 다니던 경상감사 김수 등이 낙동강으로 올라가던 세미(稅米)와 신반·초계 관아의 관곡을 훔친 도둑이라고 곽재우를 모는 바람에 하옥됐다가 초유사 김성일이 올린 장계 덕분에 풀려났었다.

곽재우가 숨어살기로 한 가장 큰 계기는 이순신 장군의 투옥과 전라도 의병장 김덕령(1567~1596년)의 옥사로 알려져 있다.

전남 담양 출신 의병장 김덕령은 94년 거제 장문포에서 이순신·곽재우와 합동작전을 펼쳤다. 또 95년에는 곽재우와 김덕령이 의령 정암진에서 함께 왜군을 치기도 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절친하게 지냈다. 그런 김덕령이 1596년 난을 일으킨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종사관 신경행의 무고로 옥사하고 말았다. 오히려 난을 토벌하러 가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백의종군을 했던 이순신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벼슬을 해봐야 결국 명줄만 줄일 뿐이라고 판단했겠다. 그렇지 않다면 선조와 광해군이 대를 이어 청하는 데도 그렇게 마다했을 리 없다. 곽재우는 곡기를 끊고 신선처럼 살았다는데 어찌 보면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겠다 싶다. 의병을 일으키느라 재산은 모두 써버리고 패랭이를 만들어 팔아 살 정도였다니까 말이다.
(내용 출처 : http://blog.naver.com/raychell/30015054141 포산곽씨)
▼ 망우정은 강가 언덕바지에 숨은 듯 앉아 있다. 활처럼 휘어진 강폭을 따라 굽이치는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뒤에는 1789년과 1991년에 세운 유허비가 둘 나란히 서 있다.
▼ 망우정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황사가 많아서 낙동강이 잘보이지 않는다. 이런 모습처럼 곽재우장군의 마음도 어둡고 답답하였을 것이다.
▼ 입구 무궁화 터널을 지나 올라가니 바로 중앙에 느티나무가 서 있고 조금 앞에 비석이 좌우로 보이고 그 아래 망우정이 있다. 그중 가장 큰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 망우정의 기와 지붕과 돌담이 자연스럽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이런 돌담은 참으로 정겨운 모습을 준다.
▼ 망우정안에 있는 돌담과 대나무의 모습. 대나무가 오래전 부터 심어져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곧은 곽재우장군의 모습을 표현하기위하여 사후에 심은 것은 아닐까?
▼ 망우정의 모습. 살아생전에 지냈다는 망우정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느낌을 준다. 검소한 장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망우정의 현판. 망우정은 곽재우 장군이 임종시 외손인 벽진 이씨(慕齊 李道純)에게 물려 주었으며 그 후 여현정으로 개칭되기도 하였다. 한 때 6.25 전쟁으로 망우정이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1972년 벽진 이씨 문중에서 이를 중수하였고 1979년 창녕군에서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네에서도 망우정 주변 200여 평을 잘 가꾸어 창암공원이라 부르며 보존에 힘을 쏟고 있다. 망우정 주변에는 곽재우 장군이 수축했다는 성담산의 우강산성이 있다.
곽재우 장군은 48세 되던 선조 32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10월 19일 울산본영에 부임했다. 군사가 4천여 명이 있었으나 대다수가 수군이나 순찰사에 소속되어 있었고자신의 지휘하에 움직일 수 있는 군사는 겨우 4백여 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는 왜적의 재침을 막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해서 그는 왜군의 가등청정이 쌓아 놓은 조산성(鳥山城) 수축을 조정에 건의했다. 왜적이 침입하여도 군사 2천명 정도면 조산성에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군도 중요하지만 수군일변도의 군사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육군의 확중도 필요하다는 건의도 조정에 올렸다. 그러나 곽재우 장군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낙담했다. 이런 상황속에서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이 재주도 갖추지 못하고 병사라는 중요한 자리에 올랐으니... 죽음을 아끼지 않고 성을 지키려 하였사오나... 형세가 손을 묶인 것과 같아서... 신은 나이도 이미 늙고 병도 있어 기력이 쇠퇴하고... 속히 신의 직책을 갈고 무용이 뛰어난 장수를 택하여 보내시어..." 라는 사직서를 올리고 조정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군영을 떠났다. 이게 시비가 되었다.
사헌부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탄핵을 했다. 대사헌 홍여정(洪汝諪)이 곽재우를 독만(瀆慢)이란 죄명으로 탄핵하여 결국 곽재우는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가게 되었다.영암에서 2년간 귀양살이를 마치자 경북 현풍의 비슬산에 들어가 잠시 은둔하며 지내다 영산현 남쪽의 창암진(지금의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강사(江舍)를 짓고 망우정(忘憂亭)이란 편액을 걸고 유유자적하며 세월을 보냈게 되었다.이때가 1602년으로 곽재우 장군이 51세 되던 해다. 망우당이란 자호도 이때부터 불려진 것이다.
곽재우 장군은 망우정에 거하면서 중간에 벼슬을 제수받아 임지로 오고 감은 있었으나말년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지내다 1617년 4월 10일 66세의 나이로 망우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품은 큰 뜻을 역사속에 펼쳐보지 못한 채 속세를 떠난것이못내 가슴에 한이 되었을까... 일설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 뇌성벽력이 크게 치고 비가 많이 쏟아지고 붉은 기운이 하늘을 덮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이광정의 창암유허비문에는곽재우 장군을 '文.武.儒.仙'으로 칭하고 있다. 처음에는 남명 조식선생의 제자로 학문을 닦아 과거를 보았으니 문인이며 유생이고 국난을 당하여 붓을 버리고 칼을 잡아 나라를 구하였으니 무인이며 말년에는 벼슬을 사양하고 솔잎을 먹으며 양생에 힘썼으니 신선이요 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곽재우 장군은 진정 문무를 겸전하고 신선의 도 마저 깨친 영웅이었다.
▼ 망우정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근심이 너무 깊어 잊을 수 없으나 그래도 잊고자 마음 돌려 망우라 건물에 편액하고... 곽재우 장군은 말년에 망우정에서 은둔하면서도 나라를 위한 계책을 많이 건의했다. 몸은 한가로웠지만 마음은 늘 나라위한 근심으로 가득 찼던가 보다. 비록 호는 근심 걱정을 잊는 망우당이었지만마음속은 나라와 백성을 잊지 못하는 불망우였던가 보다.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신(史臣)도 "곽재우는 나라가 위급에 처하매 의병을 일으켜 ... 국사가 날로 잘못되고 어진 정승이 버림을 받는 것을 보고 진심에서 소를 올려 꺼리낌 없이 할 말을 다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곽재우 장군은 1592년 41세의 나이로 관직에 나아가 1616년 65세에 이르기까지 24년간 총 29회에 걸쳐 관직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15회는 관직에 나갔고 14회는 나가지 않았다. 또 임지에 나가기 전에 사직하거나 나갔다 하더라도 바로 사직하고 돌아온 것을 제외하면 실제 관직에 나아가 있었던 기간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는 타의에 의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관직을 버리고 돌아오기 일수였다. 보기드문 풍운아 쾌남아였다. 그는 사후 1709년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증직되고 충익공(忠翼公)으로 증익되었다.
곽재우장군은 어지러운 그 시대를 살면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위인이다. 요즘 처럼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만 찾는 잡배가 아니라 진정한 나라를 위하는 위인이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의병을 일으키고 나라를 구한 실천하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이다.




덧글

  • iposan 2008/04/03 13:51 #

    허락없이 충익공 곽재우장군 관련글 4편을 저희문중홈페이지에 일차 링크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글의 출처를 밝히며 퍼가고 싶습니다.
    너무나 좋은 글과 사진에 감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www.posan.kr
    현풍곽씨 홈페이지 운영자 곽동환 posan@korea.com
  • 팬저 2008/04/03 14:05 #

    감사합니다. ^^ 이렇게 문중에 소개된다고 하니 마음이 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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