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와 방어전략과 성곽의 방어전략 육군



아래 사진4개의 이미지출처 네이버 밀리터리카페(http://cafe.naver.com/military)의 korea213 님
월남전 당시 한국군 중대전술기지의 모습으로 미군의 대대나 연대전술기지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월남전에 관련되어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 이해바랍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중대전술기지는 원형철조망과 철조망으로 기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철조망 사이에는 대인지뢰나 조명지뢰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2개 소대가 외부를 막고 1개 소대나 화기소대들은 중앙을 책임졌다고 합니다. 외부의 2개 소대는 교통호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이런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큰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 아래 사진은 중대전술기지의 모습으로 중대본부의 모습과 교통호 그리고 공용화기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중대전술기지 덕분에 유명한 짜빈둥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 중대전술기지의 산병호와 교통호로 윤형철조망이 이중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이고 중대전술기지의 관망대가 보입니다.
▼ 중대전술기지의 관망대 그리고 각종 중대 건물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렇치는 않겠죠 그 이전에 많은 고민과 전술기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겠죠. 가만히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제부터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알려드립니다.
▼ 아래 사진은 웅천읍성의 모형으로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웅천읍성의 북문의 모습으로 문루앞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앞에는 해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측성곽에는 2개의 치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은 성벽에 돌출된 구조로 만들어지며 성벽주위에 접근하는 적을 물리치는데 사용합니다.
▼ 웅천읍성 북문의 모습으로 여장과 해자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 해자는 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인공구조물로 물을 채워 접근이 용이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폭이 4미터 이상되고 높이 또한 3미터 정도 됩니다. 적이 달려들면서 점프를 한다고 해도 쉽지가 않으며 심리적으로 뛰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성벽과 해자까지의거리는 보통 20~30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또 해자안에는 70~80센치 정도의 목익을 뽀족하게 설치하는데 해자를 건너거나 뛰어내릴때 신체부위를 타격하게 됩니다. 해자를 건너면 성문주위나 성벽에 마름쇠를 뿌려 적의 접근을 차단하게 됩니다. 또한 진주성전투에서 본 것처럼 그 이전에 비격진천뢰와 같은 공용화기의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백과사전에서 본 마름쇠>
마름쇠까지 통과했다고 해도 적은 옹성이나 치성, 여장에서 적에게 활을 쏘거나 돌,뜨거운 물의 공격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에 사용된 철조망은 성곽에 사용된 해자와 같은 의미로 봐야겠고 철조망 사이에 있는 대인지뢰는 마름쇠나 목익과 같은 역활일 것 같고 중대에서 사용된 M2기관총이나 M60기관총은 비격진천뢰와 같은 공용화기일 것 같습니다. 산병호는 여장이나 치성과 같은 역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통호는 회각로와 같은 역활이었으며 중대전술기지의 관망대는 성곽에 있었던 누각과 같은 역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군 전술기지의 1차 방어선이 뚤리면 또 산병호가 있는데 이는 왜성에서 보는 외성,중성,내성과 같은 역활로 만든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국군의 전술기지에 사용된 방어적인 전술개념은 한국의 성곽에서 사용된 방어개념에 왜성에 일부 사용된 부분을 도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군의 전술기지개념이 한국의 성곽에서 사용된 방법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방어적인 방법을 비교하다 보니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 개인적인으로 올리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무기체계가 달라졌지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겠다는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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