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병영성_01 영성(營城)



전라병영성은 전라도 육군수부였는데요. 위치를 보면 강진현안에 있었습니다. 강진현은 강진만의 길고 긴 만을 통과하면 나오는 강진읍과 강진읍을 가기위해서는 나오는 고금도와 신지도,완도등을 통과해야 하는데 고금도에는 고금도진이 있었고 고금도 앞에 있는 강진군 마량면에는 마도진이 있으며 강진현(지금은 완도군) 신지도에는 신지도진이 있어 적이 해안을 따라 오는 것도 힘든 형편입니다.
▼ 또한 전라병영성이 있는 병영면은 산들이 둘러싸인 분지지형으로 월출산과 수인산,성자산,화방산,오봉산,일봉산들이 가로 막혀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병영성이 있는 곳은 평지이며 병영성이 있는 곳은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위치해 있는데. 동쪽에는 병영면에서 가장 높은 수인산이 위치해 있으며. 수인산에는 백제시대의 성인 수인산성이 있습니다. 저는 산성은 힘이들어서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수인산성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전라병영성은 삼국시대 왜구의 침입으로 강진을 포함한 주변 여러 고을(장흥, 영암, 보성)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으로 활용되었습니다.
▼ 1872년 지방지에 나온 강진현의 지도입니다. 강진읍성과 전라병영성, 수인산성이 잘나타나고 있으며 고금도를 비롯한 진성들의 위치도 잘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만 병영성에까지 나와있는 하천의 크기가 조금 크게 그렸네요.
▼ 위 지도에서 본 전라병영성의 모습과 수인산성의 모습입니다. 아래에는 강진읍성이 잘나타나 있습니다. 1872년 지도에는 전라병영성의 문은 3개로 서문을 제외한 동문,북문,남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답사를 해보니 4대문이 있었습니다. 그럼 서문은 1872년 지도를 그리기전에 있었던 성문으로 추측이 됩니다.
객사의 위치를 가지고 4대문이 있었다는 증거를 알 수 있습니다. 3개의 성문이 있었다면 T자형의 도로로 계획을 했고 그렇게 하면 남문을 중심으로 올라오면 교차로 지점에 객사를 위치하는 것이 정상인데 아래 전라병영성의 지도를 보면 객사의 위치는 남문에서 올라와서 좌측편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편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자형의 도로였기 때문에 객사의 위치가 남문에서 올라와서 좌측에 자리잡고 동헌은 객사위에 자리잡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강진읍성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강진읍성의 경우 3개의 성문으로 이루어 졌기때문에 남문에서 올라오면 북측방향에 동헌과 객사가 있고 남문과 동문사이에 각종 관아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라병영성의 경우 처음에는 4대문이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서 서문의 문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4대문은 1700년대에까지는 있었다는 것은 아래 지도에서 나옵니다.
▼ 강진만입구의 고금도와 조약도의 모습으로 고금도에 있는 고금진과 강진만 입구의 마도진 그리고 신지도의 신도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광여도에서 본 전라병영입니다. 전라병영의 북문은 평거식의 성문이고 나머지 성문은 개거식으로 성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수군의 경우 전라도에 2개의 수영을 두었는데 전라우수영과 전라좌수영입니다. 경상도도 2개의 수영을 두었는데 경상우수영과 경상좌수영입니다. 그런데 경상도에는 병영을 2개를 두었는데 임진왜란이 나기전에는 경상우병영(마산)과 경상좌병영(울산)을 두었고 임진왜란이후 경상우병영(진주)와 경상좌병영(울산)이 있었는것에 반해 전라도의 경우 병영은 하나만 두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진의 전라병영인것입니다.
▼ 해동지도에서 본 전라병영성입니다. 1700년대의 전라병영성으로 4대문이 있으며 중앙에 객사와 객사위에 병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곽은 장방향의 사각형으로 된 병영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여지도에 나온 전라병영성으로 위 해동지도와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 나온 전라병영성으로 해동지도나 여지도와 똑 같으며 여장이 그려지지 않았네요.
▼ 호남읍지에서 나온 전라병영성의 모습으로 3개의 성문이 있으며 중앙좌측에 객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객사는 1417년 신축했으며 동헌과 서헌이 있었다함. 운주헌은 병마절도사의 집무실로 1659년 신축되었다고 합니다. 운주헌 앞에는 제승루가 있었는데 운주헌을 들어가기전에 만나는 외삼문으로 1745년에 신축했다고 합니다. 연희당(글 읽고 쉬며 술 마시던 곳)은 1420년 신축되었으며 응수당(연희당 서쪽 성벽에 위치)은 1732년 신축되었고. 진남루(원래이름 초루)은 1634년 신축되었으며 남문(2층 누각)은 1417년 신축되었습니다. 공무루는 객사의 3문으로 1702년 신축되었으며 독제각(군기 보관하는 곳, 서쪽에 위치), 장대(장수가 지휘하는 곳, 남쪽2리에 위치) ,조량고, 조적창(곡식 보관창고) , 관청고(관청물품창고), 진휼고(재난시 나눠줄 물자 곡식창고), 화약고, 군기고, 병고, 남당창, 동창(군량미보관고), 병영성 내부에는 방어시설 외에 각종 관아와 누각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객사는 동헌과 서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서헌은 청심각 혹은 망미루로 불러졌습니다.
객사는 홍살문을 지나 내외삼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가운데의 하나가 공무루이다. 객사 뒤쪽에 있었던 운주헌은 병사가 집무를 보던 아사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운주헌의 외삼문은 제승루라 하였고, 병사의 휘하인 우후가 집무를 보던 아사인 적만헌이 운주헌과 함께 건립되었습니다.
운주헌의 서쪽에는 병사의 휴식과 연회장을 겸한 연희당이 있었고 그 서쪽 성위에는 누각 형태의 응수당이, 성 남쪽에는 제각이었던 독제각이 건립되어 있었습니다. 전라병영성 동쪽에는 아전들의 이청과 무기를 보관하는 군기고가 있었으며 군기고 안에는 간겸당이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문헌상의 기록 외에도 현존하는 관덕정을 비롯해 수많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일일이 다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 아래 조감도는 다음 블로거의 오솔길님(http://blog.daum.net/bae6607)의 조감도 사진으로 위에서 본 고지도와 비교해보면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던 것처럼 전라병영성은 4대문으로 복원할 예정이며 이는 1700년대의 전라병영성의 기준입니다. 또한 4대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십자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주 출입문인 남문을 지나 가장 중심적인 곳에 객사를 배치하고 객사위에 동헌을 배치하였습니다.
▼ 전라병영성은 평지에 축성한 평지성으로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4대문이 있습니다. 평지성의 경우 보통 4개의 성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장안성의 영향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라병영성은 2011년까지 목표로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데 투입비용은 490억원이라고 합니다.
▼ 동문의 체성으로 현재 공사중이라서 그런지 높이가 낮습니다.
▼ 동문옹성의 모습으로 지난 2008년 9월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다만 옹성의 하단부에 사용된 성돌들은 이제까지 보왔던 성곽의 돌보다 상당히 크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동문옹성의 내부에 채워지는 모습을 알 수 있으며 작은 돌들로 내부를 채우고 있습니다.
▼ 동문옹성의 모습과 동측 체성의 모습으로
▼ 전라병영성의 둘레는 2,820자이며 높이는 18자이고 옹성은 4개이며 포루는 2개소로 있었다고 하는데 복원 조감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더군요. 전라병영성안에는 연못이 5개소가 있었는데 이는 식수의 공급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화재발생시 방화수의 개념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물은 9개소였다고 하니 식수에 대한 걱정은 없을 것으로 보이고 이는 평지성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장은 320자라고 하는데 복원공사중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장은 설치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 우측 내탁의 경우 돌로 마무리 하고 있지만 일부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흙으로 축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아무래도 기존의 담을 이용하여 성곽을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 동문옹성안의 모습으로 아직 옹성이 다 완료되지 못하니까 웅장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전라병영성은 내외곽을 돌로 채우는 협축방식인데 기존의 흙담을 그대로 두고 협축방식으로 성곽을 쌓고 있었습니다.
▼ 동측 옹성안에는 잡돌로 채우고 있으며 마주보이는 건물은 하멜기념관의 모습입니다.
▼ 동측성곽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곽공사중인데 아직 체성을 다하지 못하다 보니까 낮게 성곽이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이 완료된다면 웅장한 성곽의 체성의 모습이 보일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동측성곽은 아직 복원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복원을 하려고 해도 고목들이 많아서 쉽게 복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 전라병영성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총 길이는 1,060m에 달한다. 하지만 전라병영성지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에 함락된 뒤 막대한 피해를 입고 이듬해 폐영됐다고 합니다. 이후 방치돼 오던 전라병영성지는 1992년에 와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에는 국가사적 제 39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은 복원작업이 한창으로 2011년 복원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 전라병영성의 역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는 고목으로 족히 300년은 더 되어보입니다.
▼ 전라병영성의 복원은 새롭게 성곽을 복원하는데 기존에 있었던 체성과 함께 성곽을 조성하는데 사진에 보면 예전의 성곽과 새롭게 축성하는 성곽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우측에 보이는 것은 동북치성입니다. 아직 치성도 다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 치성공사중인 것을 지나 북측방향을 가면서 만난 성곽으로 이곳은 성곽이 거의 완료가 되었습니다. 높이 또한 대단하여 5미터 정도의 높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또한 미석을 설치하여 성곽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 성곽에 사용된 면석들을 보면 어떤 것은 1미터에 근접하는 돌들을 아래에 사용하여 기초가 튼튼할 수 있도록 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북각루의 모습으로 원래 누각이 있어야 각루라고 부르는데 그냥 동북치성이라고 이야기 해야겠네요.
▼ 동북치성은 전형적인 조선초기 성곽축성 방법으로 하단에 큰 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로 쌓은 방식인데 전라병영성은 이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 다만 전라병영성의 경우 하부와 상부의 돌의 크기차이가 너무 큰것이 조금은 의아합니다. 하부는 거의 1미터에 가까운 돌로 되어있지만 상부는 10센치도 안되는 돌이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가 않지만 치성의 높이나 형태 등을 보았을때 상당히 축성이 잘되었다고 봐야겠습니다.
▼ 이제까지 왔던 곳을 되돌아 본 모습으로 동북측의 성곽의 모습입니다.
▼ 간혹 예전에 사용된 성곽의 돌들이 보였는데 지역을 나타낸 것인지는 잘모르겠지만 글씨가 적혀있었습니다. 보통 성곽을 조성할때 인근의 마을에서 주민들이 나와서 노역을 하였는데 성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위해 공사구간에 관하여 지역을 표시하는 실명제를 사용하였는데 전라병영성도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치성의 각이 진 부분에 성돌을 쌓는 방법을 찍은 것으로 크기와 함께 왜성과 비교하면 좋은 축성방법입니다.
▼ 돌과 돌사이가 제대로 맞추어지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잔돌끼움방식으로 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전라병영성 축성에 사용된 돌들은 색상들이 여러가지로 되어있는데 요즘에 성곽 축성을 하였지만 예전에 사용된 성곽과 비슷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 북문근처에서 본 수구의 모습으로 군데 군데 수구가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는 전라병영성의 배수로의 역활을 하기위해서 입니다.
▼ 북측성곽의 모습으로 여기도 고목들이 자라고 있어서 아직 완료되지 않는 성곽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조금은 넉넉하게 보입니다.
전라병영의 최고 지휘자인 병마절도사는 종 2품직으로 임기는 2년이 원칙이었으며 보좌관이었던 병마우후는 종 3품직으로 임기는 2년이었습니다. 전라병사의 임명기록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대략의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다.
이 가운데는 병영성 건설을 주도하고 태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마천목과 같은 병사가 있었는가 하면 개인 비리로 탄핵되는 병사들도 다수 존재했다고 합니다. 전라병영에는 병사와 우후 외에도 9명의 예하군관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화사와 상납 약재를 점검하는 심약도 1명씩 배치되어 있었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화사와 약재를 담당하는 심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의외이네요.
전라병영의 군병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칠백여명의 정군, 수성군, 조역군이 기록되어 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로 대략 한번에 350여명이 입번하다가 대폭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병영영지>에는 일만여 명의 납포군과 오백여명의 직할 군병이 존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갈수록 실제의 군병보다 재정확보를 위한 납포군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납포군이란 군역의 부담자인 정남(丁男)은 입역 대신 1년에 2필의 포를 내는 것을 납포군이라고 부르는데. 군역이 국가재정을 위한 납세로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렇게 됨으로 군역의 의무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납포군이 아무리 많아도 장부상의 군인이라는 거죠. 또 수성군은 조선시대 지방군대의 조직으로 비상시에 동원되는 군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예비군정도 되겠네요. 그 지역의 진이나 성곽을 보호하는 의무를 두며 보통 보병이었습니다. 또 조역군은 숙달된 장인의 일을 보조하는 병력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공익요원(?)정도 될 것 같네요.
▼ 다 축성된 성곽을 보면 촘촘하게 돌로 쌓았으며 높이는 5~6미터 정도 되어보입니다. 또한 각 단에 사용된 돌들은 같은 규모의 돌들로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라병영의 재정은 중앙관청 상납분과 본영 운영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비변사를 비롯해 중앙의 5개 관서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세액과 국가의 경사시 따로 올려 보내는 진상물, 그리고 전라병영 자체 경비는 전라도의 각 군현에서 올라오는 전곡이나 현물로 충당되었습니다. 그 중 나주, 영암, 강진 등이 병영에 큰 부담을 지고 있었는데 특히 전라병영이 위치한 강진은 5개 면이 병영관할로 따로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강진현 전체 호구의 20%가 넘는 이들 주민은 전라병영의 각종 부세 부담을 안고 있었고 병영 수축과 같은 노역에도 동원 되었습니다. 전라병영의 군량은 조양창 등 창고 운영을 통해 조달되었고 수인산성 별비미 등도 각 읍에 분급되어 그 이자를 재정에 충당시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덧글

  • 유진우 2008/12/07 19:24 # 삭제

    대략적으로 해미읍성을 떠올리면 될 듯 합니다.
    성곽의 형태( 여장은 좀 안습입니다만... 몸을 드러내기만 해도 뎃포에 맞아 즉사 -_-;; )나 치성의 형태를 보니 해미읍성의 그것과 흡사하네요
    남문만 홍예로 하는 것이 좀 의아지만 고증을 맞추려면 뭐 하는 수 없을 듯 합니다.
    병영성 복원이 그나마 의욕적으로 추진되어 다행이고요, 순천의 신성리성도 일부 구간을 복원한 것이 있더군요.
    이것도 선진리성처럼 말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 팬저 2008/12/07 23:03 #

    아무래도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문화재연구원에서 내려오는 돈으로 하다보니 천천히 성곽을 쌓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직까지 다 완료가 되지 않았기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조금 그렇고요. 2010년정도 되어야 문루와 성문 그리고 관아등이 복원을 하면 그래도 볼만 할 것 같습니다.
  • 참한 2011/03/04 10:09 # 삭제

    좋은 자료 잘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알고져하여 덧글 올립니다.
    본문 중에 연희당이 1420년 신축되었다 하였는데 출전(出典)이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 팬저 2011/03/05 00:02 #

    연희당에 관한 글은 있지만 출전이 어디에 적혀있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그와 별도로 출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 참한 2011/03/05 08:50 # 삭제

    지금은 흔적도 없는 연희당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종직과 남곤의 시가 전해지며 1540년도에 전라병사로 있던 임붕(백호 임제의 할아버지)의 시를 차음한 송강 조사수의 시가 전해지므로 강진병영성에 연희당이 있었음은 분명하나 언제 건립되고 소실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이 카페의 글에 1420년 건립되었다 하셨으니 구체적인 건립년도까지 기록하였으니 어디에 그런 구체적 사항이 나오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사 유물의 근거는 분명해야지 않을까요.
    신문이든 책이든 인터넷이든지 간에 공공연히 게재한 기록물에는 반드시 사실만을 기록해야 하는게 사회적 책임이니까요.
  • 팬저 2011/05/28 09:49 #

    알겠습니다. 자료 찾아보고 다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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