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진성(옥포성) 진성(鎭城)



1872년 지방지에 나온 옥포진성에 관한 그림지도이다. 그림지도는 2편이 있었는데 성곽도 조금씩 차이가 났습니다. 또 현재의 옥포와 비교하면 가구수가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옥포성 좌측에 있는 곳중 가구 수가 많은 곳이 아주현성이 있는 자리로 현재는 아주동입니다. 옥포만입구의 그림은 조금 과장해서 그렸지만 그래도 현재의 옥포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 옥포진성의 모습을 확대해 본 모습입니다. 옥포진성안에는 객사가 가장 중심에 있으며 객사옆에 동헌이 있고 전선 한척이 있습니다. 전선을 가기위해서는 남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남문을 지나면 두개의 누각이 있는데 망루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중 한개의 누각은 지나가는 배를 점검하는 검문소의 역활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글씨가 작아서 명칭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옥포진성 안에는 사청,사식(?)인 창고2개가 있으며 4개의 성문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곽에는 여장이 옥포진성을 두르고 있습니다.
▼ 또 다른 옥포진성 그림지도입니다. 위 지도와 달리 산세를 자세히 그렸으나 옥포진성에 관하여는 자세히 그리지 않았네요.
옥포진성은 1488년(성종 19)에 축성했다. 진성의 둘레는 1,074척이며 높이는 13척정도였다고 합니다. 1592년 4월 경상 우수사 원균이 왜군에 패하자 전라 좌수사 이순신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1592년 5월 이순신은 옥포진성에서 왜적에 끝까지 항거하던 만호 이운용과 더불어 옥포 앞바다에서 왜군을 포위, 공격하여 적선 30여척 가운데 26척을 격파하였던 것이 옥포해전이며 이순신장군의 첫번째 승리입니다.
▼ 위 지도와 마찬가지로 전선이 한척있으며 각종관아 건물의 모습도 보이는데 글씨가 작아서 알 수 가 없네요. 당시 옥포진성의 모습은 바닷가와 바로 접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으며 선박의 출입을 위해 바닷가의 일부를 진성방향으로 파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위의 옥포진성의 그림지도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 1872년 지방지에 나온 거제부중 옥포진성과 지세포진성 그리고 조라진의 지도입니다. 수군만호가 옥포성의 수장인데 종 4품의 무관직입니다. 옥포진성 맞은편에 조라진이 있는데 조라진에는 성곽이 없고 동헌과 객사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옥포진성과 조라진에는 각각 전선 한척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세포진에도 전선이 한척이 있는 것이 보이고 지세포진성은 산을 감싸고 도는 테뫼식진성으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조라진 뒤에 보이는 산에 현재 옥포대첩기념관이 있습니다.
▼ 옥포진성의 성곽으로 1991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를 하면서 밝혀진 것입니다. 아래에 나올 옥포진성 발굴은 경남발전연구원에서 발굴하는 사진으로 옥포성당 앞 건물지입니다. 지금 현재 옥포항 여객선터미널 등 여러 건물들은 바다를 매립하였던 곳입니다. 아래 옥포진성의 성곽을 기준으로 보면 치성이 4개이고 위 고지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성문이 동,서,남,북문 4개인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성안에는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 옥포동 성안 2길에서 본 것으로 옥포진성의 성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유는 성곽에 사용된 크기의 돌들이 일직선상으로 성안로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발굴조사를 하기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찾아갔을때 운좋게 본 것인지 아니면 제가 추측하는 것이 틀린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쓰레기더미와 함께 있는데 면석의 크기는 대략 50~70cm 이상 되어 보였으며 잘못보면 요즘 만들어 놓는 화단의 돌들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연구원에 의뢰를 하여 발굴조사를 하는 것이 맞겠죠.
▼ 성안2로에서 대우조선해양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왼쪽에 보이는 공터에서 위사진에 나오는 성곽으로 추정되는 곳을 본 것입니다.
▼ 위에서 본 옥포진성의 성곽추정 성돌과 함께 나중에 볼 성곽의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옥포진성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이정표에만 옥포진성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만 있습니다.
▼ 남문길이 있지만 어디가 남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할때에는 성곽의 흔적만 조사한 것이라 4대문의 흔적은 알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예전의 선인들의 기억으로 4대문의 장소를 향해 이렇게 이정표라도 붙어놓았네요.
▼ 또한 바닷가를 향하면 만호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옥포진성 만호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 옥포진성 성곽이 지나간 길 앞에서 본 고목으로 특이하게 도로 한차선을 막고 있었습니다. 예전 옥포진성때 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300년이상 되어 보이는 나무였습니다. 보이는 도로가 성안로입니다.
▼ 위 고목을 지나면 바로 애니카정비소가 나오는데 정비소 담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옥포진성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럼 내가 위에서 본 성곽의 흔적은 뭐지....
▼ 길이는 대략 40여미터 정도 되고 성안의 모습이라 그런지 성곽에 사용된 돌 치고는 상당히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자세히 보면 어느 가정집의 담과 같이 보입니다.
▼ 성곽을 오를 수 있는 길이 나오는데 예전부터 이렇게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옥포진성을 안내하는 안내판으로 이것이 없다면 옥포진성이 맞다라고 단정 짓기가 힘들어 보이는 것이 성곽입니다. 이제까지 보왔던 성곽의 면석들은 규모도 크고 상당했는데 너무 작은 성곽의 돌들을 보니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 성곽의 폭은 대략 3~3.5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예전 바닷가로 연결되어진 성곽은 높이가 대략 4미터 정도 되어 보였는데 사진에 보다시피 가정집이라 들어가서 성곽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 이제 애니카정비소 길을 건너면 나오는 옥포교회로 교회앞에 300년 이상 되어 보이는 나무가 있었는데 위치상으로 봐서 이곳이 예전 옥포진성이 있었던 관아건물터가 아닌가 추측을 해봅니다.
▼ 보시는 것처럼 오래된 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옥포로로 대우조선해양방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주점 건물 앞에 옥포진성의 성곽이 있으며 우측에 보이는 성안길 안내판 앞으로 옥포진성의 성곽이 지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아래 사진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2005년 5월 옥포성당 앞 건물지 식축하기전에 발굴조사 한 것으로 북측성곽입니다. 아래사진에도 나오는 것처럼 성곽의 돌들은 조금 작음을 알 수 있으며 간혹 나오는 큰 면석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 옥포진성의 성곽폭 정도를 알 수 있으며 성곽의 흔적이 많이 없어지고 사러졌지만 그래도 옥포진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사진에 나온 옥포진성의 성곽의 흔적을 발굴조사 하였으면 합니다. 옥포진성의 경우 시가지화가 많이 되어서 성곽을 복원하는 것은 힘들어 보입니다. 최소한 서울의 도성의 흔적을 표기하는 것 처럼 도로에 표시라도 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복원을 하던지 일부분이라도 복원을 하면 좋겠죠. 옥포진성은 옥포해전의 첫단추를 제공했던 것으로 임진왜란사를 공부하는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활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묻혀버리고 있음을 안타가워하며 현재 거제시 옥포해전 기념관에도 옥포진성의 모형도 없는 현실입니다.



덧글

  • 유진우 2008/11/22 15:29 # 삭제

    너무 늦은 발굴조사였죠
    이미 도로가 확장되고 건물들이 다 들어섰으니 말이죠
    저 남은 구간만이라도 잘 보존하기를 바랄 수밖에요.
  • 팬저 2008/11/22 15:42 #

    그 문제는 시에서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보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성곽이나 문화재에 관하여 시나 군의 문화재 담당자들이 몇년마다 바뀌다 보니 그런일이 반복이 되고 있으며 시에서는 옥포진성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발굴조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무슨 문화재의 복원이 이루어 지겠습니까?
  • 차영근 2009/02/09 10:59 # 삭제

    선조들의 얼이 살아 잇는 옥포
    대한조선의 기개가 넘치는 옥포
    지금은 조선소가 들어와서 조금은아십지만 이 또한 나라발전의 원동력
    과거의 흔적이 곧 나의 얼굴임을 우리모두인식하여 후손에 기리남길 문화재 발굴에 혼신을 다합시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분투하시길 빕니다
  • 팬저 2009/08/21 09:48 #

    옥포해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600여년 동안 있었던 옥포진성인데 정확한 조사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 달라스라임 2012/03/29 19:20 # 삭제

    비단 옥포진성의 문제만은 아닐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문화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과 담당자들의 나태함, 그리고 문화재의 소중함 보다는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안이한 생각들이 소중한 문화재를 파괴시키는 원인이 될것입니다. 님의 문화적 지식과 노고에 감사드리며, 옥포주민으로서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아울러 제가 아는 옥포성의 추가적인 보충 설명을 드린다면(검증된것은아님) 젤 위의 성곽사진은 옥포성의 기단부분이 맞을것으로 추정되며, 옥포성의 4개문에 관련된것으로 생각되는 마을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옥포성의 남문밖을 지칭하는것 같은 "남바께" 혹은 "남박"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제가 어릴때 "남바께"에서 살았었습니다(현재 대우조선해양 쌍둥이빌딩이 들어선곳 일대) 동쪽의 고지도에서 보이는 "전선"이 있던곳 일대의 마을 이름이 동문밖을 지칭하는것 같은 "동바께"혹은 "뒷간" 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구한말에 들면서 성곽의 일부를 허물어 옥포선착장(접안시설,지금의 매립지)을 만들때 사용했다고 들었으며, 어릴때 남박마을 골목길에서는 잘 다듬어진 평평한 성석 일부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 팬저 2012/03/29 19:57 #

    이렇게 방문해주시고 좋은 정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옥포해전이 일어났던 곳인데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네요. 옥포에 다시 한번가면 성문지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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