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기성관과 질청 그리고 관아지 읍치



거제읍성(고현성)이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기성관들이 불타 없어지면서 옮기게 되는데 거제읍성은 210년간의 읍성시대를 마감하고 현종4년(1663년)에 관아를 지금의 거제면으로 옮기게 됩니다. 1663년 기준으로 보면 320년간을 거제의 행정중심으로 활약을 하게 됩니다. 현재 거제면은 거제시의 한개의 면으로 전락을 하였지만 조선 중,후기의 행정의 중심이였고 거제 국방의 중심지로 거제 7진을 관리하던 곳입니다. 거제 7진은 영등포,장문포,조라포,옥포,율포,지세포,오아포(가배량진성)로 왜구의 침략을 막기위한 수군기지입니다. 아래 사진은 조선시대 거제부 관아지(동헌)였는데 동헌은 없어지고 현재는 거제면사무소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 1872년 지방지에 나온 거제부의 모습으로 객사와 동헌의 모습이 보이고 객사앞 질청의 모습과 옥사, 향교가 보입니다. 객사 앞에 외삼문이 보이고 객사와 마찬가지로 동헌 앞에도 외삼문이 보입니다. 거제향교는 외삼문형식의 누각이 보입니다.
▼ 1489년에는 거제현이 거제부로 승격 개편되면서 문무를 통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거제현의 지리적 요충지인 거제읍성(고현성)에 거제 7진의 통할영으로 기성관을 건립했습니다. 건립 당시 기성관은 거제부의 행정과 군사를 통괄하는 국가기관의 중심 건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거제면사무소에서 기성관담장을 바라본 모습으로(거제면사무소에서 기성관을 보았을때 좌측방향입니다.) 거제면사무소는 조선시대 거제 관아 건물(동헌)이었습니다. 동헌을 중심으로 T자형의 도로가 발달이 되었는데 읍성은 없었지만 거제부 관아지도 마찬가지로 T자형의 도로를 중심으로 각종 관아건물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 거제면사무소에서 정면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좌측으로는 기성관이 우측으로는 거제현 질청관아 건물입니다.
▼ 거제면 사무소 주차장에는 오래된 고목들이 많이 있는데 이 고목들은 조선시대때 부터 있었던 고목들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봐야겠죠.
▼ 거제면사무소앞에 있는 나무로 수령이 350년이상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거제부가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있었던 나무로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라고 봐야겠네요.
▼ 거제면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는 거제 동헌은 내아가 있었을 것이다. 마주 보이는 거제면사무소 부속건물이 동헌으로 보입니다. 이는 객사와 함께 남측을 바라보는 방식일 것으로 생각이 들며 부속건물 뒤가 내아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현재의 거제면사무소는 예전 거제현의 부속건물로 생각이 들고 세월이 흘러 부속건물이 중심건물로 되고 중심건물이 부속건물로 되어 버렸네요. 거제현 관아는 배산구조와 안산, 관아 배치와 진입로 구조가 시각적으로 뚜렷한 축을 형성하여 한양의 광화문-경복궁-관악산의 축과 매우 흡사한 시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는 전체적으로 풍수지리 사상을 안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거제 기성관은 1911년 이후 거제보통학교 교실로 사용하다가 1973년 폭우로 동쪽 지붕이 붕괴되었던 것을 1974년에 복원하였고, 1976년에 전면 해체·복원하였다고 합니다.
▼ 거제 기성관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삼문을 만나게 되는데 중앙이 높고 좌우에 익공을 달아 놓았다. 보통 가운데 문은 잘 사용을 하지 않고 좌,우의 문을 사용하는데 좌측의 문을 개방하여 놓았더군요.
▼ 기성관 안내판
▼ 외삼문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우에 있는 나무들과 함께 고풍스런 느낌을 주고있습니다. 외삼문은 주관인 기성관을 앞면으로 하여 조성되어져 있다. 기성관에서 나와 외삼문을 나오면 바로 남측으로 직선으로 된 길이 나옵니다. 이는 동헌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상징하며 거제현의 중심건물임을 상징합니다.
▼ 가운데가 높기때문에 솟을대문이라고도 하는데 가운데 문은 수령이나 높은사람들이 출입을 하는곳이라 그런지 장식이 다른곳과 틀립니다.
▼ 외삼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나오는 기성관을 보면 상당히 큰 건물임을 알 수가 있다. 기성관은 거제 7진의 군영본부로 사용하다가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가 됨으로 기성관은 거제현의 객사로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 그런데 잘 보면 객사의 건물과는 또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를 모시는데 그런 장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가운데에 방을 설치하는데 기성관은 그렇지가 않고 연회를 배풀거나 회의를 하는 장소로 보입니다. 진주의 촉석루,·밀양의 영남루,·통영 세병관과 함께 영남 4대 누각으로 불린다고 하던데 촉석루,영남루,세병관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거제현아 320여년동안 당시의 많은 송덕비가 있었으나 세월의 변천에 따라 많이 없어지고 향교입구와 동상리, 서정리등에 흩어져 있던 비석 14기를 현재의 기성관내에 옮겨 비석군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중 특이한 것은 쇠로 만든 비석 6기는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저도 공적비들을 많이 보았는데 전북 고창 무장읍성에서 보고 이번이 두번째이네요.
▼ 읍성을 쫓아다니면서 공적비들을 많이 보았는데 보통 임진왜란이후에 많이 만들어졌더군요. 물론 그전에 공적비들이 만들어졌지만 없어지는 바람에 눈에 잘보이지는 않는지 모르지만요. 그런데 공적비 아래를 보시면 거북이모양의 석재가 보이지가 않고 시멘트로 마감처리 하였더군요.
▼ 기성관은 조선시대의 우아한 고전미를 간직한 층단식 건물이다. 기둥은 높은 주춧돌 위에 아름드리 원목기둥을 사용하고 이중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식 불화단청이 되어 있어서 화려하고 웅대해 보인다고 합니다. 불화단청은 알겠는데 남아식이 뭔지를 모르겠네요.
▼주춧돌(초석)은 넓은 돌로 해서 기둥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 민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불화단청입니다. 또 다양한 색채로 단청충량 등을 용 모양으로 조각해 장엄함을 고조시켰습니다.
▼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고 하는데 우물마루는 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서 ‘井’ 자 모양으로 짠 마루를 가르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기둥을 고주라고 하는데 중앙에는 1개의 고주가 좌우익공에는 2개의 고주가 있습니다.
▼ 건물 전체에는 민흘림의 원기둥이 사용됐으며 하부에는 갈라짐과 뒤틀림을 막기위해 철퇴를 둘렀고 중간중간에 다른 나무를 덧대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민흘림이란 기둥의 머리부터 뿌리까지가 직선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기둥의 뿌리가 크지 않아 보기에 시원하게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정면 9칸, 측면 3칸의 장대한 규모에 벽체나 창호가 없이 사방이 개방된 마루구조로 되어 있으며, 배흘림 두리기둥에 주심포 형식의 건물이다. 일자형 평면 위에 중앙 3칸의 상부를 맞배지붕으로 높게하고 양단부를 낮추어 팔작지붕으로 처리한 수법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 어간을 포함한 중앙 3간의 경우, 1고주 7량가의 맞배지붕 형식이고 양 측면은 2고주 5량가에 팔작지붕 형식으로 중앙 부분이 강조되었습니다. 여기서 1고주란 외부 기둥 외에 내부에 기둥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말하고 2고주란 외부기둥 외에 내부에 기둥이 두개더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내부기둥이 외부기둥 보다 높다하여 고주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관 중앙은 1고주 7량가라고 이야기 한것은 외부기둥외에 내부기둥이 하나 더 있고 7량가는 가운데에서 처마까지가 7개의 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공포에 용과 봉황이 보이는데 공포에 표현된 문양은 모두 지상에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고 합니다. 팔작지붕에 관해서는 질청에서 설명을 합니다.
▼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됐는데 구성이 외목도리를 받친 이익공 형식과 비슷하나 쇠서는 다포식 계통으로 중앙 부분은 이출목삼익공으로 양 측면에는 일출목이익공으로 중심 부분이 더 화려합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고 산자널에 치받이 흙을 발라 마감한 연등천정으로 내부 가구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인데도 어려운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공포란 목조건물에서 지붕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이다.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기둥위에 받치는 것이 공포입니다. 외목도리는 서까래를 얹기 위하여 기둥의 중심선 바깥쪽에 걸치는 도리를 외목도리라고 합니다. 연등천정이란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어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구조재료를 감추지 않고 노출시키면서 그것 자체를 장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 기성관옆에는 거제초등학교가 있는데 거제초등학교의 정문으로 1911년 일제의 의해 초등학교가 생기면서 기성관은 거제초등학교 학교건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 기성관에서 바라본 거제초등학교로 거제초등학교 건물 또한 거제현의 각종 관아건물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질청의 안내판
▼ 거제 질청의 건물로 질청이란 작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청은 지방의 육방이나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는 곳입니다. 고창읍성에서 본 작청과 건물의 크기가 차이가 많네요. 거제현의 작청 건물이 더큽니다.
▼ 질청의 출입문으로 문이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나와 있는데 정문은 아니고 협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때에는 ㅁ자 형태로 되어있었으나 도시화가 되면서 무너졌다고 하는데 그때 정문도 없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질청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시야를 가리는 느낌을 줍니다. 거제군지에 의하면 해체 복원 이전의 모습이 '우진각'의 다포계 집이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는 '팔작지붕'에 주두나 포작을 갖추지 않은 민도리 형태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총 27칸으로 이뤄진 ㄷ자 형태로 중앙에 공사용 대청을 두고 양 익사(날개부분)에 주거용 방을 배치한 것이 질청의 특징입니다.
▼ 질청은 대지 347평에 건물이 69평으로 우진각의 형태에 다포집의 구조로 되어 조선 중엽의 우아하고 정중한 건축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진각이란 모임지붕이라고 하는데 처마의 필요성과 합각벽의 처리 등에 유용한 것이 우진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복원을 하면서 팔작지붕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 맞배지붕과 우진각지붕을 합친 것이 팔작지붕인데 처마가 높은 대규모 건물에 이용된다고 합니다. 팔작지붕은 지붕 위에 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 벽이 있는 지붕으로, 처마 끝은 모임지붕처럼 되고 용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을 만든 형태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복원을 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조사하고 복원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또 복원을 하고 예산을 낭비하게 됩니다.
▼ 중앙 대청의 양 익사에 여러개의 방들을 다채롭게 배치하고 방 전후에도 퇴를 설치해 마루를 깔았습니다.
▼ 각 방안에는 부두막이 설치되었습니다.


▼ 막돌 초석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5량가 형식으로 건립된 질청은 기둥의 지름이 50cm 이상이고 주간이 3m에 이르는 대규모 건축물입니다.
▼ 질청 뒤면으로 북측방향입니다. 담을 지나면 기성관이 바로 나옵니다.
▼ 중앙 대청 뒷편에는 판문을 단 개방형 구조로 일조와 통풍이 매우 유리하며 퇴간을 설치해 대청 공간을 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기둥은 못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사용했으며 나무를 거꾸로 세워 쓴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어서 예로부터 금기 사항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자연히 기둥 밑 부분이 굵어지게 되는 것이다. 목수들이 기둥을 세울 때는 그 나무가 자란 방위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를 거스르면 후에 기둥이 틀어지고 변형이 생기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 대청마루 뒷편에 판문이 많이 달려있었는데 위로 들어올리는 방식이 아니고 옆으로 여는 방식으로 되어있었습니다.
▼ 1976년 2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46호로 지정되었다가 국가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 익사에는 방들이 있는데 질청의 익사 방들은 중앙대청 마루에서 3칸을 돌출시켜 방을 배치한 큰 규모의 건물입니다.
▼ 거제질청은 지난 82년 전면해체, 3차에 걸친 복원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전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이 넘는 중앙 대청은 현존하는 전통건축물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으로 당시 거제현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 처음에 넓은 대청을 보고 동헌으로 착각을 하기 슆습니다. 질청의 대들보와 도리가 보입니다.
읍성과 달리 관아 건물만 있다보니 읍성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찾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거제관아지는 조선 중,후기에 거제의 중심지로 320여년을 이어온 곳입니다. 지금은 고현이 발달이 되어있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중심은 거제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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