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읍성(고현성) 읍성(邑城)



거제읍성(고현성)은 조선시대 전기떄 사용한 거제읍성입니다. 사등성지편에서 사등성이야기 하면서 하였던 것처럼 사등성이 좁고 식수가 부족하여 거제읍성(고현성)으로 거제읍성을 옮기게 되는데 이때가 단종1년(1453년)입니다. 거제읍성(고현성)에서 차후 거제면으로 거제관아가 옮기게 되는데 거제관아가 있었던 곳은 읍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거제시에서는 거제읍성(고현성)을 읍성으로 알리는 형편입니다.

사등성에서 거제읍성(고현성)으로 읍성을 옮기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수월리성에서 사등성으로 옮긴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거제읍성(고현성)으로 옮긴다는 것은 백성들에게도 부담이 되고 조정에도 부담이 됩니다.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바다와 가까이 있다는 것이 읍성을 옮기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이는 왜구의 침략을 두려워했으며 왜구들이 지구전을 펼 경우 식수의 고갈로 힘들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중신들이 찬반으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문종의 지시로 거제읍성이 옮겨지게 되는데 그곳의 장소가 바로 고정리입니다. 고정리는 현재 거제읍성(고현성)이 있는 곳입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의 위치를 보면 뒤로는 계룡산이 있고 북으로는 바다와 동으로는 옥포진성이 있습니다. 남서쪽으로는 거제읍성(고현성)의 관아가 옮겨간 거제관아인 거제면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현성이라고 하지 않고 거제읍성을 강조하는 것은 고현성이란 예전 현성을 의미하는데 예전 현성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고 고현성이라 부르고 있기때문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동읍성도 고현성이라 불리우고 전남 장흥에도 고현성이 있고 포항에도 고현성이 있기때문입니다. 또한 남해군 고현면에도 고현성이 있기때문에 이러한 혼란을 막기위해서 고현성대신에 거제읍성이라고 적습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은 평지성이라고 적혀있으나 평지성은 아니고 평산성입니다. 성곽의 형태는 병모양으로 동으로 갈수록 성곽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거제읍성(고현성) 안내판에는 배모양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거제읍성(고현성)과 비슷한 구조가 경남 영산읍성인데 영산읍성은 목이 긴구조이나 거제읍성(고현성)은 잛고 굵은 구조로 된 성곽입니다. 성문은 3개로 동문,남문,북문이 위치하며 현재 거제시청 뒤로 북문과 북측성곽일부와 서측성곽과 남측성곽 일부만 복원이 되어있습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은 문종1년(1451년)에 쌓기 시작하여 2년만인 단종1년(1453년)에 완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사등성에 있던 거제관아도 거제읍성(고현성)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후 현종4년(1663년)에 관아를 지금의 거제면으로 옮기게 될때까지 210년간 거제읍성으로 사용을 하게 됩니다. 조선초기까지 사용한 거제읍성이 바로 고현읍성입니다.
▼ 성곽의 돌들은 정방향과 장방향의 돌들로 축성을 한 것을 알 수 있어며 잔돌끼움방식으로 성곽을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면 동문지가 나오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거제읍성(고현성)의 버전도 대략 0.7정도 될 것 같네요. 동문지와 남문지 등을 가봐야 버전 1.0이 되어야겠네요.
▼ 시청옆에서 시작하는 북측성곽은 서측방향으로 성곽이 산을 향해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높이는 3미터 이상되어 보입니다. 이렇게 고현으로 읍성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우물이 3개 못이 2개가 있어 사등성보다는 식수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성곽의 돌들은 네모반듯한 돌도 있지만 대부분의 돌들은 조금은 모가 적으며 둥근둥글한 돌들로 축성이 되어있습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복원을 한 것인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네요. 제 생각에는 최근에 복원을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조금 올라가면 북문이 있는 계룡루가 나옵니다. 계룡루는 원래 있었던 거제읍성(고현성)의 누각의 이름은 아니고 복원을 하면서 시민들의 여론조사로 선정된 이름이 계룡루라고 합니다.
▼ 새롭게 복원을 해서 그런지 계룡루의 모습을 깔끔하게 느껴집니다.
▼ 이 부분도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보통 초석이 작게 만들고 나무로 된 기둥이 있는데 여기는 돌로 기둥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 육축의 모습은 상당히 큰 돌로 만들어 놓아 성곽의 문을 지탱하기 좋게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정작 성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 문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성문이 없어요. 문지에 구멍이 있는돌을 확돌이라고 합니다.
▼ 성돌과 성돌사이에는 틈이 비교적 작은 것 같네요. 물론 예전의 읍성의 경우 이부분 보다는 틈이 작았죠.
▼ 옹성의 모습으로 성곽의 돌은 4~5단으로 축성하여 상당히 낮은 느낌을 줍니다.
▼ 옹성안에서 본 계룡루의 모습입니다. 계룡루는 개거식 구조로 누각을 지었습니다.
▼ 옹성에서 밖을 나가는 곳으로 공원과 함께 텃밭이 조성이 되어 있더군요.
▼ 거제읍성(고현성)에서 해자는 복원을 하지 않았는데 원래 거제읍성(고현성)의 해자는 북측과 남측은 자연적인 해자 즉 하천을 기준으로 사용하였으며 동측만 인공적인 해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 계룡루안의 모습입니다. 단청도 그려 놓아 제법 누각의 틀이 잡혀 보입니다.
▼ 정유재란 당시 거제현령이었던 안위는 명랑해전까지 참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칠천량해전에서 대패는 거제읍성(고현성)을 위태롭게 하여 거제현령이 남아있기도 곤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정유재란때 거제는 왜군들의 기지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생각이 들고 왜군들은 거제읍성(고현성)을 점령하고 거제도 곳곳에 왜성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의 둘레는 3,038척(920.6m) 높이 13척(3.9m)이었다고 합니다. 동,남,북문 근처에는 여장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부분은 제일 마지막 답사에서 크기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 회각로를 시멘트로 포장을 하여 아쉬움을 줍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관리하기가 힘들겠지만 이런 부분은 아쉬움을 주네요.
▼ 옹성안의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고현읍성의 성곽은 높이가 낮게 복원을 하여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여장을 설치하지 않고 체성만 있다보니 성곽의 모습이 재현되지 않는 것도 아쉬움을 주네요.
▼ 계룡루의 모습으로 계룡루의 현판은 장목 출신의 원로 서예가 김현봉 선생의 서체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 이제 북측성곽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성문이 마주치는 곳에는 보통 여장을 설치하여야 방어가 수월한 편인데 복원을 하려면 이곳에 여장을 설치를 하여야 하는데 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 처음 만나는 치성입니다. 서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치성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되어 보입니다.
▼ 계룡루가 있는 북문을 향해 아래로 내려다 보았습니다.
▼ 서측성곽을 바라 보았습니다. 내탁에는 흙으로 메꾸고 잔디로 마감처리 하였습니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고현읍성 동문지를 발굴조사 할때에는 고현읍성의 경우 내탁과 외탁모두 석성으로 된 협축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공원처럼 만들려고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뒤에 내탁을 이렇게 한 이유를 적어 놓았습니다.
▼ 치성1로 북측성곽과 서측성곽이 만나는 곳입니다. 이런곳에는 기본적으로 치성이 있는 곳이죠.
▼ 거제읍성(고현성)이 거제면으로 관아를 옮기게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임진왜란당시 거제읍성(고현성)이 일본군에게 점령당했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중 현령 김준민(金俊民)이 진주성으로 원정을 떠나 있던 1592년 5월 2일에 거제읍성(고현성)이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함락된 거제읍성(고현성)에는 기성관(객사)이 있었는데 불이타 없어지고 거제면으로 옮기면서 기성관을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 채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성곽이 이어집니다.
▼ 서측성곽은 여장은 보이지 않고 체성으로만 성곽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 치성2의 모습이 보입니다. 거제읍성(고현성)은 조선전기 읍성의 전형적인 구조로 되어있으며 현종때 폐성이 되고나서도 상당기간 유지 보존이 잘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6.25 전쟁때 포로수용소로 사용되면서 성곽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하고 지금은 800여미터만 남아있습니다. 문헌에 거제읍성(고현성)의 둘레가 대략 920미터라고 하는데 남아있는것이 800미터라면 상당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지도에도 보다시피 현재 북,남측성곽 대부분과 동측성곽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제읍성(고현성)의 둘레는 얼마일까요?
▼ 치성2의 모습으로 높이는 대략 1미터 50에서 2미터정도 됩니다.
▼ 치성의 돌들은 상당히 큰 돌로 구성을 하였는데 장방향의 돌들로 축성을 하였습니다.
▼ 회각로의 모습으로 회각로는 틈새를 잔돌끼움방식으로 해 놓았는데 걷기는 상당히 불편하였습니다.
▼ 치성3이 보이는데 이곳의 치성의 높이는 3미터에서 3.5미터 정도 되어보입니다.
▼ 다시 치성2 방향으로 되돌아 본 모습입니다. 치성1이 가장 높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서측성곽이 끝나고 남측성곽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둥글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 성곽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겠네요. 여기에 사용한 돌들은 장방향보다는 정방향의 돌들을 이용하여 축성하여 놓았습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의 축조수법은 외벽의 경우 구릉사면을 생토층에서 "ㄴ"자형 절개하고 그 생토층에 자갈을 깔아 다진 다음 장대석을 일배열하여 기단석으로 삼고 그 위에 성돌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내벽의 경우는 당시의 지표면을 50~60㎝깊이로 파고 그 위에 사람머리만한 할석으로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하면 지금 내축한 방식의 성곽은 맞다고 봐야겠네요. 위에서 이야기한 협축방식은 아무래도 동문지 해자만 그러한 방식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 위 거제읍성(고현성) 지도의 치성 4번으로 여기까지의 치성을 끝으로 성곽의 여정은 끝났습니다.
▼ 거제읍성(고현성)의 축성 당시에 경상남도 육읍의 백성 2만여명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2년동안 2만명이니 1년에 1만명으로 봐야겠네요. 그래도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여 만든 읍성입니다. 고단한 백성들의 삶이 묻어난 읍성입니다.
▼ 아래 방향으로 가면 남문지가 나오는데 아직 남문지에 관하여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멀리 계룡산이 보이고 늦가을의 잔디는 황금빛으로 더해주어 기분좋게 만듭니다.
▼ 거제시청과 함께 있는 거제읍성(고현성)입니다. 거제읍성(고현성)은 현재 남아있는 성곽(일부 복원한 성곽)과 복원하지 않는 성곽까지 합쳐서 대략 1,600여미터라고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500여미터 남은 부분을 제외하면 1,100여미터가 현재 복원이 되지 않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자료에는 거제읍성(고현성)의 둘레는 2,000미터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복원된 곳은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네요.
▼ 신현읍에서 만난 서문로 이정표로 사실 서문과 거리는 어느정도 되지만 이렇게 서문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2004년 5월 거제읍성(고현성) 동문지를 발굴 조사하면서 나왔던 옹성,해자,체성,문지부분의 모습으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모성과 옹성의 연결부위의 모습으로 하단의 면석들은 생각보다 작은 성돌로 연결부위를 만들어 놓았네요.
▼ 문지의 모습으로 문지는 현재 도로상에 있다보니 발굴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 하늘에서 본 옹성의 모습과 해자의 모습으로 해자는 체성에서는 직선으로 이어지다가 옹성을 만나면서 곡선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웅천읍성의 해자도 이와 같은 방식이더군요. 동문지에서 해자를 건널 수 있는 육교가 발견이 되었는데 육교는 나무로 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육교는 적의 공격시는 옹성안으로 들어올려버리어 사용하고 평시에는 사람들의 왕래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 옹성과 해자의 모습으로 옹성에서 해자까지의 거리는 동성벽과는 약 5.1m 떨어져 설치되었고, 옹성과는 기단석을 기준으로 불과 2.8m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옹성은 반원상으로 둘레는 약 47m, 성벽의 폭은 7.2m, 잔존높이는 약 1.3m이며, 내외벽면을 모두 석축한 협축방식입니다.
▼ 지반 보강석의 모습입니다. 동문지에서는 기와와 나무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 북문에 사용한 누각과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 성벽석은 기단석으로부터 25㎝정도 뒤로 물려서 쌓았으며 수평을 맞추기 위하여 성벽석 사이에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 하늘에서 본 해자와 옹성의 모습으로 해자는 외부너비 6.4m, 내부너비 4.5m, 최대 깊이 2.9m이였다고 하니 요즘 복원하는 해자들과는 차이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해자의 석축과 목익이 발견되었는데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웅천읍성을 발굴조사하면서 나왔던 것과 비슷하게 해자의 양축이 모두 석축으로 쌓았고 목익이 발견된 점이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목익은 적이 해자를 건너려고 할때 뾰족한 나무로 만들어 해자 안에 놓아 발이나 신체부위를 공격하는 방어수단입니다. 목익의 크기는 70㎝이며 직경2×4㎝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 해자의 석축부분의 모습으로 웅천읍성의 해자의 석축과 달리 조금 작은 돌들로 석축을 쌓았네요.
이상 거제읍성(고현성)을 알아보았는데요. 거제읍성으로 현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읍치를 현재의 거제면으로 옮기면서 그곳에는 부사가 오게되지만요.



덧글

  • 유진우 2008/11/20 08:19 # 삭제

    포로 수용소 건설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성벽을 헐어버리는 등 적지 않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북문을 복원하고, 일부 성곽을 복원했으니 이 정도면 양호! 라고 하기는 뭐해도 조금은 나은 것 같습니다.
    저도 DSLR을 구입한 김에 겨울방학 시즌에 충남이나 전남의 읍성을 좀 찾아다녀야할 것 같네요
    춘천 봉의산성 이후 지방으로 나가보기는 처음이라 ^^
  • 팬저 2008/11/20 10:53 #

    예,, 없는 것 보다야 낮죠. 문제는 동측성곽과 남과 북의 성곽인데 복원을 하는 것은 힘들어 보이고 서울의 도성과 같이 도로에 성곽이 있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방법도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사진 찍고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유진우 2008/11/20 08:28 # 삭제

    그런데 갈수록 최근의 읍성복원을 보면 한숨만 절로 나오죠
    고증맞춘답시고 6~70년대 복원처럼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것( 물론 이것의 단점은 돌을 너무 잘 깎아 마치 벽돌쌓듯 쌓아올린다는 단점이 있다지만 )도 아니고, 성벽을 보면 아동들이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 지 거의 애들 장난 수준으로 쌓아놓네요
    저렇게 성벽 쌓는 곳은 오직 한 곳!! 산성에서나 가능합니다.
    주변이 험한 절벽이거나, 아니면 해발이 너무 높아서 적병들이 등산( ? )하다 다 퍼진 상태라면 충분히 1m 정도로 쌓아놓아도 문제는 없는데 평지 읍성이라면.....

    얘기를 말아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제시청에 항의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요. 정말 강진의 전라 병영성 복원이나 나주의 나주성 복원과 너무 대비됩니다. 그래도 북문과 옹성을 복원한 것에 위안을 둬야겠죠
  • 팬저 2008/11/20 10:56 #

    전라병영성의 경우는 도심지가 아니라서(택지 지불비용이 값이 싸니까)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지 마산에 있는 경상우병영성의 경우 전라병영성 처럼 크기도 크지만 워낙 도심지내에 있다보니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나주의 경우 그래도 아직 다 복원을 하지 못했죠. 거제시의 경우 거제읍성(고현성)의 경우는 거제시청이 들어서면서 시부지 였기에 그만큼 복원이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만약에 사유지 였다면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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