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현성지_02 읍성(邑城)



오래만에 다시 회원현성지를 찾았습니다. 예전에 회원현성지를 갔을 때에는 공사중이었기도 하고 해서 다시 가보았는데 마무리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쯤 가시면 완공이 다되어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아래 회원현성 조감도는 제가 찾아갔을때 안내판과 함께 조감도를 세우려는 공사를 하고있었습니다. 그전에 찍어놓았던 것입니다.
▼ 차량에 회원현성안내판과 조감도가 실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 보시다시피 차량에 안내판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올라가서 찍고 내려왔습니다.
▼ 저도 저번에 회원현성지를 찾아갔으면서 느꼈던 것이 분명히 내가 알고 있기로는 회원현성의 토성은 판축식이라고 듣었는데 그렇지 않는 느낌을 받았어 이번에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판축다짐을 하는 사진을 보니까 판축식인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토성외탁부의 사진에 보아도 돌과 함께 판축식으로 토성을 쌓은 것이 보입니다.
▼ 조감도와 함께 회원현성지 안내판으로 회원현성은 고려때의 회원현의 행정역활을 했던 성(城)입니다. 4대문이 존재했다고 하지만 현재 발굴조사된 것은 북문과 함께 발견된 해자입니다. 회원현성은 몽고군들이 일본을 점령하기전에 마산에 세운 정동행성(아직 가보지 못하고 있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과 합포성(여기서 합포성은 고려때 세운 수군기지로 합포진성이 되겠습니다. 합포진성에 관해서는 여기를 클릭하세요.)으로 옮기기전에 절도사영등 군사시설이 위치하였다고 합니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산박물관 뒤를 돌아가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으로 예전에 찾아갔을때에는 흙만 보였는데 지금은 잔디를 입혀놓았습니다.
▼ 경사가 대략 30도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토성의 경사도를 알 수 있습니다.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이곳은 대략 50여미터 이어져 있습니다.
▼ 성곽의 회자로로 성곽의 경사도와 함께 회자로의 폭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망루가 있는 정상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찍었던 사진으로 등산로를 조성중인 것이 보입니다.
▼ 조감도에 있는 성덕암으로 가기위해서 가는 길로 여기 길로 가면 회원현성을 찾기가 힘듭니다.
▼ 이곳은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토성의 외탁부로 이곳 또한 경사를 많이 주었습니다. 당시의 회원현성도 이정도의 경사가 있어야 적이 공격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석성과 달리 토성이다 보니 수직에 가까운 성곽을 만들기가 힘들겠죠.
▼ 아직 마무리 공사가 되지 않아서 여기 저기 공사용 자재들이 보였습니다만 지금쯤 가시면 모두 완료가 되어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토성의 성곽만 있고 깃발등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곳이 성곽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것이 안타깝네요. 석성이면 그래도 성곽의 높이가 있고 해서 성곽을 알 수있는데 비해 토성은 그런부분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 토성의 경사와 성곽의 폭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측에 나무가 많이 있어서 성곽으로서 기능은 약하지만 고려시대때에는 이정도의 경사이면 적이 올라오려면 많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 마산 산호동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지금은 마산시가 자리잡고 있지만 고려때에는 보이는 시가지 대부분이 바다였습니다.
▼ 돌을 세워놓아 의자 역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힘들면 쉬었다 가라는 배려(?)인 것 같습니다.

▼ 토성은 석성과 달리 여장도 없고 성곽이 튼튼하지 못한 관계로 병사들의 심리적인 면에서 조금은 석성보다 불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망루까지는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면 회원현성을 보는데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망루는 회원현성지 1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토성의 모습이 완만한 상태에서 갑자기 높이가 크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직 잔디가 잘자라지 못하여 이런 모습입니다만 2009년이나 2010년정도 가면 어느정도 성곽의 모습이 보기좋게 되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 산 정상이 가까워지면 회원현성의 토성들이 잘 복원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 회원현성은 고려때 행정중심지의 성곽으로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좌측의 수군기지인 합포진성 그리고 회원현성 바로 아래에 있었던 정동행성과 연계되어 몽고군의 일본침략의 전초기지역활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지만 회원현성에서 바라보면 마산만을 출입하는 모든 선박들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당시에는 높은 건물도 없을 것이고 나무또한 관측을 하기위해 심지 않았거나 심었다고 해도 베어버렸겠죠.
▼ 마산시의 전경과 회원현성의 토성이 보이고 경사가 있는 곳에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 내탁에는 산이란 특성 때문에 군데군데 배수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내탁은 저런 방식으로 놓으니까 마치 여장처럼 보이는 군요. 토성 특성상 이곳이 과연 성곽이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 전체적인 토성의 성곽을 알 수 있는 사진으로 토성의 길이와 함께 산의 경사를 알 수 있습니다.
▼ 아직 동,서,남문은 발굴조사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예산의 문제때문을 일 것으로 보입니다.
▼ 토성의 한 부분을 확대해 본 모습으로 판축식 축조방법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판축시공법이 이런 방법일까요? 저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판축식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박고, 그 사이를 마치 시루떡 쌓듯 판축공법을 도입한 최전성기 토성의 축조수법이다라고 하는데 나무기둥을 박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토성의 폭은 대략 1미터정도 되지 않을것 같고요. 하단부까지 포함한다면 2.5미터 정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회원현성 토성 축성시 판축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알 방법이 없네요.
▼ 회원현성을 확대 조사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가 산에 개인소유의 부지가 많아서 마산시에서 매입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언젠가 동,서,남문에 관련된 조사가 이루어져 회원현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나오겠죠. 회원현성의 복원은 2005년부터 토지보상, 문화재발굴조사 등을 거쳐 18억6000여만원의 사업비를 들였다고 합니다. 정비복원 된 회원현성지는 토성정비복원 315m, 망루설치, 탐방로 길이 350m, 폭 1.8m로 설치했다고 합니다. 회원현성의 복원도 중요하지만 임진왜란때 합포해전을 끝내고 숙영한 남포라던지 하는곳에 이정표라도 세우던지 아니면 안패판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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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합포진성_02 2010-01-16 14:25:27 #

    ... 관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래전에 폐성이되어 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 병영이라고 보이는 합포성지의 모습은 보이지만 합포진성, 회원현성, 이산성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봉화산 봉수대와 진동면에 있던 가을포봉수대의 모습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만에 합포진성에 ... more

  • 팬저의 국방여행 : 진화하는 안내판을 갖춘 회원현성 2012-01-20 12:47:13 #

    ... 에 가보는 것 같더군요. 이번에 한번 가보니 복원한 회원현성의 경우 토성이라 이제 자리를 잡아 토성의 느낌을 준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회원현성지_01회원현서지_02 회원현성의 경우 고려시대때 현 창원시 마산일대를 관리한 지역의 명칭입니다. 이 회원현성의 경우 자산성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회원현성보다는 자산성으로 불러 ... more

덧글

  • 유진우 2008/11/20 08:44 # 삭제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 산성보다는 사정이 좀 나은 것 같습니다.
    황산벌 전투의 최종 격전지로서 백제군이 전멸한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 이 산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락산 기슭에 계백장군 묘가 있습니다 ) 가보시면 내성 내부는 밭으로 변신했고 외성 성곽은 등산로로 변신했습니다.
    운이 좋은 것은 이 회원현성에 비해 성곽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잘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내성 밖에는 성곽을 배경으로 봉분을 여럿 세워놓아 좀 그렇지만 )
    그러나, 아무리 성벽이 잘 남아있으면 뭐합니까? 관심을 안가지려고 하니.... -_-;;; 외성리 주민들이 그나마 위치를 잘 알고 있어서 성벽 찾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성내가 전부 밭으로 변했다는 것은 좀... -_-;;
  • 팬저 2008/11/20 11:00 #

    실질적으로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공무원도 잘 알지 못합니다. 문화재 담당을 하고 있어도 2~3년있다가 다른 부서로 옮겨가기때문이죠. 새로 인사이동한 공무원은 전에 했던 내용만 답습하고 그러다 보니 문화재 사고가 나면 부랴 부랴 수습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담당부서를 찾아가서 현실과 실정을 알려주어야 그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우는아이 떡 하나 더준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야만이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 단체장의 의지입니다. 자치 단체장의 의지가 있다면 복원은 손쉽게 가는 거죠.
  • 조형선 2009/08/09 14:47 # 삭제

    토성은 석성보다는 튼튼할것 같습니다. 이유는 여장이 없다고 해도 수직이 아니므로 투석기에 맞을경우 그게 굴러가거나(?) 박혀서 적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벽위에 나무나 돌로 여장을 만들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건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는 않잖습니까!<-퍽
    특히 개화기때는 미군이나 일본군 프랑스군등의 군함에는 60파운드 대포가 장착되어있습니다. 이럴때는 역시 토성이 유리합니다. 석성은 성벽 사이에 성문을 만들기 좋은 형태를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올라올때 돌덩이 굴리면 못올라옵니다. 한마디로 적군의 몸뚱이건 발이건 모두 JOT된다는거죠 그런데 저는 석성보다는 토성을 더 좋아합니다.
    경제적이고 비가 올때마다 무너지거나(?) 아니면 더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상 국사만 잘하는 중딩의 허접한 댓글입니다.
  • 팬저 2009/08/10 10:26 #

    지금의 기준으로 성곽을 바라보는 것 보다는 삼국시대(사리 사국시대 가야가 추가해야 하죠. ) 이전 부터 토성이 있었다고 하던데 석성의 경우 삼국시대때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토성의 경우 성곽의 높이를 높게 만들지 못하는 점이 단점이긴 하죠. 그에 비해 석성의 경우 높이를 높게 세울 수 있는 것에 비하여 토성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죠. 삼국시대 이후로는 토성보다는 석성이 많이 생긴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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