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제포성지 진성(鎭城)



▼ 웅천읍성옆에 있는 제포성지는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진해시 제덕동이다. 아래쪽에 있는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제포성지 좌측으로는 사화랑산 봉수대가 있고 웅천읍성과는 도보로 10~15분거리에 있다. 또 가덕도의 연대봉수대를 사이에 둔 성이다. 현재는 성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성벽정도만 남아있다.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경우 가덕도 연대봉수대에서 봉화가 올라오면 사화랑산봉수대에서도 볼 수 가 있고 사화랑산봉수대를 제포성지에서 볼 수 있으니 적의 침입에 대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제포성지 주위로 구글어스를 확대해 본 보습이다. 사화랑산봉수대와 웅천읍성 그리고 웅포해전이 있었던 곳의 중앙에 위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아래에 노란색으로 표시한 곳은 제포성지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 것이다. 추정해본 이유는 빨강색으로 된 원이 있는곳에서 성벽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옛 지도 동여도에도 웅천과 함께 제포성지의 모습이 보인다. 제포옆에 성 모양의 그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웅천에서 제포성지로 가는길에서 만난 성벽으로 추정되는 흔적들
▼ 제덕동 산에있는 경상남도 지정문화재를 알리는 알림판
▼ 진해 제포성지의 유래를 알려주는 알림판. 읽어 보시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 산 정상에서 제포성지가 있었던 곳은 현재 이런 모습이다.
제포는 웅천은 물론 창원의 방어와 마산포의 조운을 담당하여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던 곳이다. 고려 공양왕 2년에 양광도와 전라도 및 경상도 등의 연해처에 모두 만호를 두었는데 이때 이미 별장이 주둔해 있던 내이포에도 수군 만호진이 설치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조선 성종때에 이르러 선군의 선상수어가 무너지고 제포에 성자가 없어서 만호가 먼저 사로잡힐 것이라 하여 축성이 무산되었다. 그후 성종 15년(1484년) 사헌부 집의 조숙기의 계청으로 성종 16년(1485년) 우의정 홍웅을 순찰사로 남아 경상우도와 전라좌도 지역의 축성 예정지를 간심하여 삼포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 22개처의 수군영진에 축성키로 하였는데 그해 3월에는 이미 제포에 축성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성종 17년(1486)에 완성되었다. 제포진성은 제덕동 안지개 마을의 낮은 야산 서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정상부로부터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일기까지 축조하였는데 자연 대석으로 이중기단을 조성하고 동.서.북의 정방에 옹성형문지를 성벽의 요소 요소에는 곡성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깊이 5m내외, 폭 5~9m내외의 해자를 둘렀는데 총연장 1,377m, 폭 4.5m, 높이 2m 내외의 평산성이다.

백과사전에 제포성지에 관하여 적혀있는데 살펴보면 "제포성지는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군만호진을 처음 설치하였고, 조선 전기 성종 때는 경상도 우수군이 머물수 있는 군영을 설치했던 곳이다. 수군은 배 위에서만 방어한다는 원칙이 성종 때에 무너지면서 경상도와 전라도 등 22곳에 수군진영을 만들었는데, 이 성은 성종 16년(1485)에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성터는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도록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자연석으로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문 밖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작은 성이 있으며, 성벽 주변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못을 파서 돌렸다."
▼ 산 정상(산이라고 해봐야 해발 100m정도 될련지 모르겠지만)에서 마을을 바라본 모습.
▼ 마을 끝에서 본 제포성지의 모습이다. 마주보이는 산이 위에 있는 장소이다.
▼ 제포성지를 찾아간다고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으나 어디라고 정확히는 알려주시지 않으시고 마을 전체가 제포성지라고만 이야기 하시더군요.
위에 바라보이는 곳에서 보면 사화랑산 봉수대가 보입니다. 사화랑봉수는 "경상남도 방면에서 서울의 목멱산에 이르는 제2거의 간봉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연해와 변경의 매봉화대에는 봉화대 근처의 거주인으로 군사 10인과 오장 2인을 임명하여 배치하였다. 『웅천읍지』와 『동국여지지』에 따르면 사화랑산봉수의 봉수군보는 100명이었다. 명동 뒷산인 사화랑산의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동쪽의 가덕도 천성연대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서쪽 창원 여음포 봉수와 장복산 봉수로 알렸다. 고종 31년(1894년) 8로의 봉수가 폐지될 때 함께 혁파되었다." 라고 진해시 홈페이지에 적혀 있습니다. 제포성지는 웅천은 물론 창원의 방어와 마산포를 방어하는 조선시대에 중요한 전초기지였던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제포성지가 완공된 것이 성종 17년(1486)이다. 그럼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근100년전에 완공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웅천읍성과 더불어 중요한 역활을 해야할 성이었지만 임진왜란때 전투에 관해서는 아직 내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조사하면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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