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통영상륙작전(귀신잡는 해병) 6.25전쟁




▲ 지도상에 있는 통영읍(당시) 인민군의 배치로 표현한 것이 등대모양이다. 기만전술로 P.C-703호등 수척의 배는 통영읍에 포격을 가하고 장평리에 기습적인 상륙전을 하게 된다. 핵심은 원문고개를 장악하는 것이다. 원문고개는 길목이 좁은 곳으로 원문고개가 만약바다이면 통영은 섬이나 다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인민군들도 반격을 한다면 원문고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원문고개를 장악하는것이 제일 중요했다고 볼 수 있음. 흰색으로 표현한 이동방향은 한국군의 함정 이동방향이다.

때는 킨 부대의 반격작전이 방어작전으로 전환된 지 3일 후인 1950년 8월 16일이었다. 그 동안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던 통영읍에 약 1개 대대의 적 병력이 침입하자 해군본부에서는 바로 그 무렵 킨 부대 작전에 참가한 후 진해에 집결해있던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장에게 거제도에 상륙하여 통영에서 거제도를 노릴 것으로 판단되는 적을 격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통영을 침공했던 그 적은 킨 부대의 반격작전 때 미 해병5연대에 의해 점령당하고있던 고성 지구로부터 내도한 북한군 7사단의 일부 병력이었다. 그런데 명령에 따라 2척의 LST에 병력을 분승시켜 그날 밤 10시경 진해 군항을 출항했던 김성은 부대장은 그 이튼날 새벽 통영반도 동북방에 있는 지도동쪽 기슭에 이르자, 그 동안 자신이 새워놓은 복안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먼저 2개조의 정찰대를 운용하여 통영시가지쪽과 거제도 서해안쪽의 적정을 살펴본 그는 해군본부에 타전하여 작전명령의 변경을 요청했다. 그가 작명의 변경을 요청했던 까닭은 불과 기백명의 적은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서해안을 수비하는 소극적이고 불안한 대책보다는 차라리 당시 통영 해상을 초계중에 있던 P.C-703호 (함장 이성호중령)를 비롯한 수 척의 우리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통영읍 동북단의 장평리에 기습적인 상륙전을 감행하려는 것이었다. 김성은 부대는 그 이튼날 새벽 통영 시가지를 감제하는 시가지도쪽의 망일봉(망일봉-148)을 선제점령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통영읍의 진입 길목인 원문고개로 진출시켜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는 가운데 총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통영의 적을 독안에 든 쥐처럼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작전계획을 끈질기게 요청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작명의 변경을 승인받게 된 김성은 부대장은 P.C-703호와 소해정 504,901,320,307호 등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적으로 하여금 시가지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그 일대에 포화를 집중시키는 가운데 기습적인 상륙전을 감행, 계획대로 그 이튼날 새벽 1개 중대를 원문고개로 진출시키는 한편 망일봉을 선제 점령하여 한발 뒤늣게 그 봉우리로 올라오는 100여명의 적을 요격하여 승기를 잡게 되었고, 그날 오후 해군통제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증원병력을 지원받고, 그 다음날 (19일) 미명을 기해 총공격을 감행한 끝에 그날 오전 10시경 드디어 적 수중에 들어가 있던 그 통영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었다. "당신들은 정말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해내었소" 이 말은 전광석화와도 같은 그 작전의 묘수에 경탄을 금치 못한 외신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외신기자들은 이 작전의 성공을 보도하는 기사에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찬사를 썼다.
In commending of the brilliant victory in the operation, foreign reporters gave us a praise, saying "The might capture even the Devil"
무적해병대의 이름을 온세계에 널리 전파한 "통영상륙작전"
"TONG-YENG" Area Landing Operation, widely know to the world as a symbol of invincible Marine Crops.(Aug. 17. 1950)
한편 통영시가지를 탈환한 김성은 부대는 9월 10일경까지 적 후속 부대와 원문고개 공방전을 치르는 동안 일부 병력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떠나고 본대는 해군방위부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9월 22일 김성은 부대장의 지휘하에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으로 출항했다.
고종석 (高種碩)
계 급 / 군 번 해병삼조 / 8112267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1929-04-10 / 1950-08-25
출 신 지 서울 용산구
출 신 학 교 개성 온정초등학교
공 적 내 용
적의 마산, 진해 해상 봉쇄 작전을 차단하기 위하여 통영지구 전투(50. 8.17∼9. 14)에 참가하여 응전분투하였으며, 원문고개 전투에서는 9명의 적 병력을 척살하고 해병의 투혼을 발휘 하다가 끝내는 자기 자신도 부상, 이때 적의 방망이 수류탄이 개인호에 떨어지자 "수류탄이다! 엎드려!" 라고 고함치면서 자신은 수류탄 위에 몸을 덮쳐 전우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
고종석 삼등병조에게는 대통령 특명으로 2계급 특진의 영예가 주어졌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은 전군의 귀감이 됨
내용출처: 육군대학
1965년 10월 베트남전 파병을 위해 맹호부대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부하들 사이에 떨어지자 이를 몸으로 덮었던 강재구 소령은 지금 육관사관학교 연병장에 동상으로 서 있다. 해군사관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면 보게 되는 고 이인호 소령은 1966년 8월 베트콩의 지하 땅굴을 수색하던 중 적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부하들의 목숨을 건지고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했던 베트남전의 영웅이다. 이들 보다도 먼저 손수 자신의 목숨을 전우의 생명을 구한 사람에 관해서는 재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월남전이 있는 사회상 때운이었을까? 아니면 장교라서 조명받는 것일까?
6.25때문이라서 많은분들이 희생되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종석상등병조에 관해서도 재조명되었으면 한다.
통영상륙작전은 임진왜란때 있었던 한산도앞바다에서 해병대가 전과를 올립니다. 임진왜란때에는 일본왜군을 견내량에서 유인하여 한산도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통영상륙작전은 견내량에 있는 장평리에 상륙한다는 점이 틀리고, 임진왜란때에는 한산도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통영상륙작전은 한산도 근처에서 주공보다는 조공의 역할로 활약했다는 것이 틀리다. 또 원문고개 방어를 위해 1개중대 병력이 1,000명의 병력을 막아냈다. 3일간의 인민군 공격을 막아냄으로서 해상작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다음에 시간내어서 통영상륙작전에 관하여 직접 취재하여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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