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해전의 장소는 마산이다. 임진왜란



이민웅님의 <임진왜란 해전사> 81쪽을 보면 "합포는 임진장초에서 밝힌바와 같이 웅천(현재이 진해시)에 있는 합포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은상이 <완역 이충무공 전서> 등의 저서에서 1차 출전의 두번째 해전 장소인 합포를 현재의 마산으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상황론 적으로도 거제도 북단에서 오후 4시부터 추격하여 해질녁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외에는 찾을 수 없다. 더구나 현재에도 진해시에는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장초에는 창원땅 마산포(고려시대의 합포)라는 지명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함대는 뭍으로 올라 도망한 일본 수군의 배를 모두 불태우는 전과를 거두었고, 밤중에 건너편 창원땅 남포에 이르러 정박하였다." 라고 기술한다.

여기서 진해합포마을이 합포해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2가지이다.
1. 영등포에서 오후4시에 추격하여 해질녁까지 도착할 수 있는 지역
2. 현 진해 지역에 합포마을이 있다.
하나씩 문제점을 밝혀보도록 하자.
1. 첫번째로 4시에 추격하여 해질녁까지 도착한 지역에 관해서이다.
제가 구글어스에서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있는줄 모르다가 이제야 알아서 거리측정을 해보았습니다. 일단 학개에서 영등포까지는 대략7.6km정도이다. 물론 오차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합포해전이 있었던 용마산과의 거리는 대략 18.3km 정도이다. 임진왜란당시 거북선의 노는 열네 자루다. 이 노로 1시간에 6km속도를 낸다고 한다. 그런데 판옥선은 거북선보다 2개가 많은 노를 가지고 있다. 판옥선의속도는 적어도 6km이상의 속도를 내었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학개까지는 1시간 10분내외 용마산까지는 3시간10분 내외이다.
합포해전이 있었던 날이 1592년 5월 7일(음력) 양력으로 계산하면 6월 16일 이다. 이순신장군이 오후4시경 적을 쫓아 해질녁에 도착했다고 한다. 양력 6월16일이면 해가 떨어지는 시기는 7시에서 8시경 되어야 한다.
한국천문연구원 http://www.kasi.re.kr/Knowledge/sunmoon_map.aspx 홈페이지에 가보면 마산시의 일출과일몰에 관하여 나온다. 다만 1896년 부터 2051년까지만 나오지만 대략 알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보면 1990년 6월16일 일몰시간은 19시 42분이다. 그러니까 저녁 7시42분에 일몰이다. 1896년 6월16일도 일몰시간은 19시 42분이다. 1925년도 일몰시간은 19시 42분이다. 대략 평균 잡아서 19시 40분 전후이다. 영등포에서 용마산까지가 3시간 정도라면 오후4시에 출발하였으니 7시 내외에 도착한다. 해가 지는 시간이 평균잡아 7시 40분 전후이니 7시에 도착한다면 이야기는 성립된다. 학개로 가정한다면 4시에 출발하여 5시10분 내외에 도착한다. 해질녁이 아니다는 이야기 이다.

2. 현 진해에 합포지역이 있다.

아래 사진은 진해에 있는 학개(합포)마을이다.


▲ 포구와 마을을 찍은 모습입니다. 일본 대선기준 보통 100명 승선한다면 4척이면 400명 소선은 30명 도합 430명입니다. 배에 따라서 많이 타고 적게 탈 수 있으니 대략 400명에서 500명 아니면 600명 정도 일 것입니다. 왜군들이 배를 버리고 허겁지겁 육지로 도망갔다라고 합니다. 저 좁은 곳에 착륙하여 도망갈 곳이 있었을까요? 만약 보시는분이 왜군의 지휘가 높은 사람이라면 저곳에 착륙하라고 명령 할까요?


▲ 포구 입구의 길이는 190m내외 만의 길이는 대략 300m이다.
▲ 마을이 있는 땅의 넓이는 대략 2,370평정도 된다.
▲ 똑 같은 방법으로 진해덕산초등학교 운동장을 재어보니 대략 2,960이다. 지금 현재 있는 합포마을은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작은 넓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기록에 의하면 대선4척과 소선1척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갔다고 했다. 합포마을에 일본 대선의 정박하고 있는 모습을 CG로 재현 하여 보았다. 안타케부네의 배의 크기를 판옥선과 같은 30m로 잡았고 안타케부네밑에 있는 직선이 길이 10m를 이야기 한다. 비슷하게 측정하였음을 밝힌다. 배4척이 정박하니 합포마을 포구가 꽉 찬다. 조총의 사격범위를 100m정도 계산하여 반원으로 표현하였고 화살의 사격범위를 210m로 계산하여 반원으로 표현하였다. 화살의 사격범위로 계산하면 포구입구까지 화살이 도착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이순신함대는 더 멀리서 일본 왜선을 공격해야 한다.
▲ 그럼 두번째 진해에 합포가 있다는 것에 관하여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진해에 합포마을은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해전이 벌이기에는 너무 좁은 곳이다. 전투가 벌어질 수 없는 환경이다. 물론 왜군은 조선군에 의해 도망가는 상황이라서 위의 그림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다음 궁금한것이 지역 명칭일 것입니다.
▲ 위의 그림지도는 김정호가 그린 동여도라고 합니다.
동여도에 나타난 합포 월영대,마산포,두척산(지금의 무학산)이 보이는 지역이 현재 마산시이고 오른쪽에 있는 봉림산,불모산,안민령있는 곳이 창원시이다. 그리고 창원으로 표현하고 있는 지역이 현재 창원시 소답동지역이다. 소답동에 가면 아직 창원향교가 남아있다. 그리고 산뒤로 자여지역은 현재 창원시 동읍 자여지역이다. 우측하단에 보면 장복산이 보일 것이다. 장복산은 현재 진해와 창원을 경계하는 산이다. 그러니까 풍덕포라는 지역은 현재 진해시를 나타내는 지역이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림지도의 좌측지역이 조선시대(임지왜란)때 진해현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진해와 지금 현재 진해와는 위치가 틀리다는 것이다. 진해현이 있었던 곳은 지금 현재 마산시 진동면사무소가 있다. 그곳을 가보면 진해현자리와 함께 진해현사가 보존 되어있다. 참고로 진동면은 진해현이 있었던곳이라 해서 진자와 진해현 중에 동면,서면,북면 중 동면지역이라 진동이라고 칭하였다.
▲ 현재 마산시 진동면 사무소에 있는 진해현 동헌
▲ 옛날 창원땅에 있는 창원향교
▲ 임진왜란 당시 웅천현에 있었던 웅천읍성중 일부
▲ 고려시대말 1281년 여몽연합군이 2차례의 일본 정벌이 실패한 뒤 1281년 10월에 남해안 방어를 위해 진을 설치할때 주둔한 군사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우물이다. 고려시대 기록을 보면 여몽연합군이 일본정벌을 위해 합포(지금의 마산)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11년전에 합포로 사용된 지명이 임진왜란때 없어졌다?
▲ 웅천동(임진왜란 당시 웅천현) 옆에 있는 진해 제덕동에 있는 제포성지의 성벽이다. 제포성지는 1436년(세종18년)에 제포를 개항한 후 왜인들의 불법이주를 막기위해 1437년에 합포(지금의 마산)에 있던 해군기지(수군령절제사영-절제사는 종3품 관직)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쌓았다고 한다. 이후 1485년(성종16년)에 다시 쌓기 시작하여 1486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1437년에 합포에서 제포성지로 수군령절제사영이 옮겨왔다. 그이전에는 합포에 수군령절제사영가 있었다. 또 1437년에 합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임진왜란이 있기전 150년전에도 합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이야기 이다.
▲ 위 규장각 지도를 보면 지금의 진해땅에 가까운 것은 칠원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 그림지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동람도 경상권에 관련된 고지도입니다. 진해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네요. 창원밑에 병영이라고 표시된 것은 통영일것 같네요. 그리고 병영옆에 있는 것은 칠원인 것 같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에 완성되었다. 1530년이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입니다. 그리고 위의 규장각 지도에도 칠원현이 있습니다. 칠원은 어디냐?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 칠원은 현재 함안군 칠원면입니다. 그리고 칠원면 역사와 칠북면 역사에 보면 칠원면이 칠북면을 관할했다고 하는군요. 그럼 저멀리 있는 칠원에서 구산면을 관리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가까이 있는 진해현에서 관할하지 않고 칠원에서 관리 했을까요? 창원 도후부보다 멀리 있습니다. 그리고 칠원현 관리 구역이 상당히 큽니다.
▲ 위의 사진은 1973년 웅천이 진해시로 편입되기전을 표시한 것입니다. 현재의 마산과 창원은 하나의도시였고 창원군은 마산시 구산면,진동면,진북면,진전면, 창원시 북면,동읍,대산면 진해시 웅동,가덕도,등을 관장하였습니다. 진해시 웅동은 전체적인 창원군의 지역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일부지역만 속해 있지만 행정구역으로 창원군에 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와 같이 합포가 웅천의 관할 구역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에 관하여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합포해전은 마산에서 있었다가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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