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당항포해전 임진왜란



▼ 일단 당항포해전이 일어났던 곳을 지도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항포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로 동쪽으로는 마산시가 서쪽으로는 사천시 남으로는 통영 북으로는 함안군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래사진은 남쪽에서 북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 당항포해전이 있었던 곳으로 가기위해서는 마산에서 통영을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까지 가는편이 편하고 좋으나 격전지만 보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당목을 알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마산에서 출발하여 진동면을 지나고 진동 해병대전적비를 지나면 조금 후 암하삼거리가 나옵니다. 고성군 동해면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하여 가면 창포가 나올 것입니다. 창포에서 조그마한 고개를 건너면 동진교가 보일 것입니다.
▼ 보이는 곳이 동진교입니다. 고성군 동해면과 마산시 진전면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동해면의 동자와 진전면의 진자를 따서 동진교입니다. 이 다리는 최근 2001년 12월 31일 날 완공이 되었습니다. 총연장 390m지만 바닷길은 300m내외라고 보면 되겠네요.
▼ 아래 그림지도는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당항포로 가기위해서는 궁도라는 섬을 지나서 당목이라는 곳을 지나야 됩니다. 당목이라는 곳은 닭의 목이라는 뜻이며 당항포에서 바다를 바라보아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S자형태의 지류도 지류지만 마산시 진전면의 조그마한 야산이 평풍처럼 둘러져 있어서 더 더욱 그러합니다.
▼ 마산시 진전면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자그마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죠.
▼ 이순신장군이 당항포 어귀 궁도와 양도에 두척식 4척을 숨겨 놓았다는 곳입니다. 좌측 섬은 지도상에는 반도라고 나오고요 우측섬은 이름이 나오지를 않는군요. 그런데 그뒤에 작은섬이 소국도라고 나온는걸로 봐서는 우측섬이 궁도인것 같습니다.
▼ 동진교에서 고성군 동해면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 아래 그림지도는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멀리 거제도가 보이는 군요. 당항포해전이 있었던 곳은 파도가 적고 고요하여 옛부터 소소강(召所江)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지도 가보면 마치 강과 같이 고요합니다.
▼ 동진교 아래에서 바다를 본 모습입니다. 파도가 없고 잔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 사진이 동진교에서 바라본 소소강(召所江)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소소강이라고 하진 않죠. 바다이지만 강처럼 느껴집니다.
▼ 아래 그림지도는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입구는 좁고 안의 폭은 배가 많이 정박할 수 있는 곳이 있지요. 어찌보니까 한반도 지도같기도 하고 아래쪽에 또 한반도 지도가 보이시죠.
▼ 동여도에 나타난 당항포 지도입니다.
▼고성군 동해면에서 마산시 진전면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입구가 좁다고 느껴 지지 않는 지 모르겠네요.
▼ 조그마한 낚시배들이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배가 지나갔는지 물결이 일지만 크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 당항포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뒤에 있는 산을 지나면 당항포가 보입니다.
▼ 동진교를 바라본 모습인데요. 자그마한 산으로 인해 바다로 나가는 곳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 보이는 곳은 마산시 진전면 시락리라는 곳입니다. 보이는 산을 넘으면 당항포전적지가 나옵니다.
▼ 바다가 투명해 보이는군요. 우측 조그마한 산을 넘으면 당항포입니다.
▼ 이제 당항포의 모습이 보입니다.
▼ 당항포 기념탑도 보이고 당항포해전 전적기념관과 이순신장군 영정을 모신 숭충사가 보이네요.
▼ 그리고 고성공룡엑스포 주제관도 보이네요. 자 그럼 당항포해전을 이제 보도록 할까요.
▼ 1592년(선조 25)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일어난 1차 해전과 1594년 3월 4일하루 동안 일어난2차 해전이 있습니다.
▼ 먼저 1차 해전은 당포에서 쫒긴 왜선이 거제를 지나 고성땅 당항포에 있다는 첩보를 듣고 당항포로 와서 당항포 입구 궁섬과 양도에 4척을 숨겨두고 전선을 보내어 적을 동태를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 전선이 되돌아오면서 신기전을 쏘면서 왜적이 있음을 알리어 이억기 장군과 이순신장군은 전선51척을 거느리고 당항포로 직격왜선26척 중 대선9척 중선4척 소선13척이 정박해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에 이순신장군은 공격명령을 내렸고,
▼ 사방을 포위하면서 협공을 했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돌격하면서 천자,지자총포를 쏘아 왜선의 대선을 무너뜨리고 이어 여러전선이 번갈아 가면서 대포와 화살을 쏘자
▼ 왜선4척은 돛을 달고 달아나므로 이순신장군과 이억기장군이 거느린 장수들이 패를 갈라 모조리 포위해버리니 적선의 왜적들은 물에 빠지기 바빴다고 합니다. 혹은 언덕으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또는 산으로 올라 도망다니고 하는데
▼ 군사들은 창과 칼과 활을 가지고 저마다 힘을 다해 쫓아가 잡아서 머리 43개를 베고 왜선 모두를 불살라 없애다고 합니다.
▼ 배 1척을 남겨 두어 돌아갈 길을 열어두고 날이 어두움을 틈타서 바다 어귀로 되돌아 나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 6일 새벽 방답첨사 이순신이 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적들이 필시 남겨둔 배를 타고 새벽녙에 몰래 나올 것이라 하여 그가 통솔하는 병선을 거느리고 바다 어귀로 나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 6일 새벽녘에 당항포 바깥 어귀에 도착한 후 한 왜선이 어귀로 나오므로 방답첨사 이순신이 불시에 습격하였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놈들은 거의 백여 병이나 되었으며
▼ 우리편 병사들이 지자총통,현자 총통을 쏘며 철환, 질려포,대발화 등을 연속해 쏘고 던지자 왜적들은 어쩔 줄 모르고 도망가려 하였으며
▼ 갈고리를 써서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니 반이나 물에 빠져 죽는데 그 가운데 왜장은 나이가 대략 24,5세쯤 되어 보이고 풍채가 건장하며 의복이 화려했는데 칼을 잡고 홀로 서서 8명의 남은 부하를 지휘하고 항전하면서 끝까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방답첨사 이순신이 힘껏 활을 쏘아 맞추니 칼을 잡고 있던 왜장이 화살을 10여대나 맞고서야 소리를 지르며 물로 떨어지기에 곧 목을 베게 하고 다른 왜인 8명은 군관 김성옥등이 힘을 합하여 활을 쏘고 또 목을 베었습니다.
▼ 6일 아침 9시쯤 적선을 불태울때 경상우수사 원균과 남해현령 기효근 등이 뒤쫒아 와서 물에 빠져 죽은 왜적들을 두루 찾아 건져내어 목을 벤 것이 50여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당항포해전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이순신역사연구회/비봉출판사>의 내용을 참조로 하였습니다. 스크롤이 너무 많아서 다음편으로 연결합니다. 위의 사진은 고성당항포해전 기념관에 있는 디오드라마들을 사진으로 찍은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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