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세종을 통해본 대마도의 날 조선시대



대왕세종에서 대마도정벌을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조선수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세종1년(1419년) 6월 19일 마산포를 출발하게 됩니다. 이날을 기념하여 마산시의회에서는 제109회 임시회 2차 본회에서 "대마도의 날"을 제정하게 됩니다.
마산시 의회에서는 대마도의 날 제정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종무장군을 삼군도제찰사로, 우박ㆍ이숙묘ㆍ황의를 중군절제사, 유습을 좌군도절제사, 박초ㆍ박실을 좌군절제사, 이지실을 우군도절제사, 김을지ㆍ이순몽을 우군절제사, 도합 9절제사에게 삼남의 병선 227척, 병사 1만7000을 주고 마산포를 출발하게 하여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대마도 정벌을 통해 적선 129척을 빼앗고, 적의 소굴 2,000군데를 불태우고, 적의 우두머리 200여명을 목베고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이에 대마도 도주 소 사다모리가 이듬해 윤1월 조선의 번병을 자처하며 속주가 될 것을 요청했다. 이에 조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확실하게 예속시키고 도주에게 인신을 하사했다.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 왕래함이 막혀 백성들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실록에 실려 있으며 성조 17년(1486) 왕명으로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도 대마도가 우리의 고토였다면서 동래부의 부속 도서로 취급했다.
동국여지승람의 이 내용은 조선시대 대마도 인식의 기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후 지리지 및 외교 자료집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 조선시대에 간행된 대부분의 지도에 대마도가 우리나라의 영토로 그려져 있다. 독도가 누락된 지도는 종종 있어도 대마도는 거의 표기되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그러한 보기 가운데 하나다.

영조 36년(1765년)에 제작된 여지도서와 순조 22년(1822년)편찬된 경상도읍지등에는 대마도가 동래부 도서조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마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우리의 땅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조정에서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킨 이후 우리나라는 이 땅을 일본에 넘겨준 사실이 없다.
따라서 대마도를 회복하기 위한 대마도 고토회복운동은 당연한 우리의 권리이다."

▼ 이순몽장군은 나중에 경상좌도 병마절제사가 되었으나 여러가지 불미스런운 일로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다음해 복직을 하기도 합니다.

▼ 삼군도체찰사인 이종무장군은 대마도 정벌의 핵으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대마도점령의 공을 인정받아서 찬성사가 되나 김훈등을 정벌군에 편입됐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삭직합니다. 이듬해 복직되어 부원군이 되었습니다. 이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잠수함에 이종무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종무함은 209급 5번함으로 SS 066 이종무함으로 해양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 유정현 장군은 대마도정벌때 삼군도통사로 활약하였으며 고려시대부터 벼슬을 거쳐서 조선태조때 상주목사로 태종때 형조판서등을 거치면서 요직이란 요직을 다 거쳐갑니다. 나중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릅니다. 영의정이되고 나서 대마도를 정벌하러 나섰는데 대마도 정벌이 있고나서 7년후 병으로 죽게됩니다.

▼ 대왕세종때 등장하는 이천장군과 고려시대때 활약한 이천장군이 있는데 한문은 모르겠으나 동명이인입니다. 한국해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천함은 고려시대때 활약한 이천장군을 기념하여 SS 072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왕세종때 등장하는 인물인 이천장군은 나중 최윤덕장군과 함께 여진족을 물리치고 4군을 설치하게 되며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계미자를 개량하는 경자자를 만드는 등 인쇄술발달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활을 하게 됩니다.

▼ 대왕세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최윤덕 장군이 나오는데 이분은 창원사람으로 조선초기 읍성을 쌓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차후 여진족을 물리치고 그 공로로 우의정까지 올라갑니다. 최윤덕장군의 묘지 둘러보기 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루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대왕세종과 궁합이 잘맞았던 인물이 최윤덕장군인데.... 왜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최윤덕장군의 함정이 없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에 진수할 배에는 사용할 지도 궁금하네요.

▼ 대왕세종에서는 6월 19일 견내량이고 했는데 마산포에서 출발하여 견내량에 숨어있다가 출발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럼 부산에서 출발하면 더 가까운데 왜 부산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을까요? 드라마에서는 부산왜관에서 첩자들이 활약을 해서 거짓정보를 흘리기 위해서라고 나오지만 실은 2만여명의 군사를 모으기 위해서는 군영이 있는 곳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수군도 가지만 육군도 가기때문에 경상우도병영이 있는 마산에서 모이기가 좋았을것 같습니다. 또한 세종재임시에는 마산에 수군진인 마산진성(수군절제사)이 있기때문에 육군과 수군이 있는 이유도 큰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 2만여명의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 식량들을 모을 수 있는 곳도 중요한 이유이겠죠. 마산진성 밑에 조창 즉 식량을 모아서 나라에 받치는 곳이 있는 이유도 마산에서 출발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리하면 병사들을 모을 수 있는 병영이 있을 것(수군,육군 모두포함해서), 식량을 모을 수 있는 조창이 있는 곳 이 두곳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인 마산에서 출발을 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포왜란 당시 제포진성웅천읍성이 점령당하자 조선 조정에서는 삼포왜란을 일으킨 왜적을 물리치고 대마도를 점령하면서 경상도땅으로 영구히 귀속시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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