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 영성(營城)



▼ 1872년 지방지에 실린 동래부지도입니다. 위에 있는 동래부지도에는 여장과 치성 옹성들이 잘나타나있고 오른쪽 아래에 경상좌수영성이 보입니다.
▼ 1872년 지방지에 나타난 경상좌수영성 지도입니다. 3대문과 옹성, 여장들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수영강에 전선들도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의 부산지도에서 경상좌수영성을 찾기 위해서는 해운대근처에서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당시보다 바다가 멀리있는데 이는 그동안 매립을 하였어 그럴 것 같습니다.
▼ 경상좌수영성은 현재 남아있는 곳이 많이 없기때문에 좌수영성의 규모를 잘 알기가 힘이 듭니다. 빨간색은 성곽을 의미하며 하늘색은 해자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진상 우측에 있는 협성르네상스 아파트가 조선시대때 전선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 경상 좌수영성지는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231번지 일대로 규모는 남북직경이 279.6m, 동서가 534m로 성벽의 총 길이는 1,480m, 내부면적은 109,729㎡로 추산되고 있다. 동서장축의 장타원형에 가까운 평면을 띠고 있으며, 성벽은 서남쪽의 경우 해발 27.4m의 구릉사면에 축조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평지에 축조되어 있다.
▼ 경상좌수영성의 남문에 관한 안내판으로 좌수영성보다는 수영사적공원을 찾아가는 것이 편합니다.
▼ 현재 남문이 남아있는데 남문은 예전에 있었던 곳에서 현재의 남문이 있는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1993년에 재건립하였다고 합니다.
▼ 임진왜란당시 수군절도사인 박홍은 왜군의 군세를 보고 전선을 침몰시키고 자신은 도망을 갔다고 하더군요.
▼ 남문은 홍예석이 남아있는데 예전에는 홍예문위에 누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남문인 주작문(朱雀 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읍성의 성문과 달리 진성의 성문은 크기나 높이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양쪽 옆에 개 조각상인 ‘박견(拍犬)’을 만들어 놓아 왜구를 감시하던 성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견은 조선의 토종개로 의협심이 강하고 용기가 있어 우리민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런 박견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방어하고자하는 의지로 봐야겠습니다.
▼ 박견옆에는 수령이하개하마비가 세워져있는데요. 수령보다 짬밥이 안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서 성문으로 들어오라는 일종의 경고판이라고 봐야겠죠.
▼ 박견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이는 출입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일종의 위병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홍예석의 규모를 알 수 있는데요. 정방향의 돌들 틈에 옮기면서 시멘트를 발라놓아서 그런지 보기가 좋지 못합니다.
▼ 홍예석은 2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높이와 넓이를 대략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 안용복을 기념하기위해 만든 사당인데요 좌수영진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 생략하고 넘어가고 다음에 이부분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경상좌수영성 안에는 수령들의 공적비가 많이 있었습니다. 보통 임진왜란 이후 거쳐간 수군절도사들의 공적비입니다.
▼ 성곽의 흔적들은 발견하기가 어려웠는데요. 남측 성곽들만 일부 복원하여 놓았더군요. 그것도 2단정도로 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 좌수영성의 남측성벽들이 복원되어있는 곳은 대략 40미터정도 복원되어있습니다.
▼ 경상좌수영성에 관한 안내판
▼ 남측성곽과 좌수영성기념물 표시석
▼ 숙종 18년(1692) 좌수사 문희성이 보수하면서 둘레 약 2,785m, 높이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 및 성 바깥에 옹성과 치성, 보루를 설치하고 7개의 진이 소속되어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를 보유했다고 합니다. 좌수영지에는 네 곳에 성문을 두었는데 동문(영일문), 서문(호소문), 남문(주작문), 북문(공진문)으로 이 중에서 남문은 6칸 규모로 가장 큰 문으로 북을 매달아 시각을 알리며, 북소리에 따라 일제히 성문을 여닫았었다 합니다.
▼ 임진왜란당시 경상좌수사 박홍은 미리 겁을 먹고 성을 버린 채 도주하자 수병과 성민 25인이 성문 밖에서 피로서 결의하고 바다와 육지에서 적을 상대로 7년간 대항하면서 좌수영성 수복을 위해 싸운 25용사를 모신 의용사로 주차장 바로앞에 있어서 찾아가기가 편합니다만 좌수영성에 관해서 이야기해서 이것도 패스하겠습니다.
▼ 또 일부인 동측성곽들이 주차장앞에 있었습니다.
좌수영에는 무관 정3품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고 그 관하에는 원래 1개의 검사영(거진), 즉 부산포진과 10개의 만호영이 있었다. 다대포(동래)·해운포(동래)·서평포(동래)·두모포(울산)·개운포(울산)·서생포(울산)·염포(울산)·포이포(영해)·감포(경주)·마포(영포)·축산포(영해)·칠포(흥해)가 만호영이었다.
▼ 좌수영성 북문지가 있었던 곳은 수영교회 앞에 있는 길로 추측이 되는데 다음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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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조선후기 각 수군의 영성(진성) 2009-08-15 01:5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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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yeong – glatt übersehen 좌수영성지 Teil2 « Madang 2011-03-08 12: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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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0/07/04 14:07 #

    서측에 있는 문은 뭐죠?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읽혀지지 않는군요.

    서문입니까, 암문입니까?
  • 팬저 2010/07/04 15:46 #

    경상좌수영 모형에는 서문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보통 진성(좌수영의 경우 상관의 계급이 높지만 기능은 같은 것이니까) 의 경우 출입문이 읍성의 출입문보다 작습니다. 읍성의 경우 개거식이나 평거식등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진성의 경우 통행량이 많지않고 방어를 하기위해 성문이 작으면 좋으니까 작은 성문을 뛴 홍예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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