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진성 진성(鎭城)



▼ 진해제포성지를 찾아가서 본 안내판에 본 내용을 보면 1437년 합포에 있었던 해군기지<수군첨절제사영, 절세사는 종3품>이라고 적혀있어서 현재 남아있는 합포성지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내가 잘못알고 있었다. 합포성은 임진왜란당시 경상우도병영이었고 수군첨절세사영과는 상관이 없었다. 수군과 육군이 같이 사용하는 성(城)이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과연 합포에 있었다는 수군첨절세사영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런 문제를 알고 고민을 했었는데 인터넷에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러다가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논문을 보고 합포진에 관하여 알았습니다. 합포진은 고려시대때 합포진변만호부라고 불리며 사용되었다. 고려말 왜구들의 계속된 공격을 막기위하여 수군의 진성을 건설하게 된다. 여몽군의 일본 2차원정이 실패하고 나서 일본의 공격을 염려하여 합포에 진수군을 설치하게 된다. 그후 몽고식 군제인 합포만호부를 설치하여 남해지역의 총괄방어를 담당하게 된다.
아래 그림지도를 보면 우측 상단에 조선시대 대도호부인 창원읍성과 임진왜란당시 사용한 경상우도병영과 정유재란때 축성한 합포왜성, 삼한시대때 조성한 이산성지, 고려시대때 사용한 회원현성이 있다. 그사이에 합포진성이 있는데 합포진성은 현재 마산시 창동과 남성동일대 였다고 한다. 이는 1912년 지적원도에 윤곽선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경상우병영은 아래 구글지도에서 본 것 같이 팔용산이 막혀있어서 창원읍성에서 진주방면으로 가지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곳이라서 설치했던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은 팔용동앞에는 공단이 들어서 있지만 예전에는 막혀있었다. 그래서 팔용산을 넘거나 우측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측에는 경상우병영성이 있는 것이죠.
▼ 1912년 지적원도에 남아있는 것을 기준으로 합포진성을 그린 것입니다. 성호리, 성산리,동산리,서성리가 있다. 이후 남성동, 동성동, 중성동이 되었습니다. 이는 합포진성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기때문에 동성리, 서쪽에 있기 때문에 서성리, 중앙에 있기 때문에 중성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고 성호리는 성곽주위에 있었던 해자가 있었기 때문에 성호리라고 한다.

▼ 위의 지적원도를 가지고 구글어스 인공위성지도를 대비시켜 보았다. 지적원도에 큰 도로는 현재 중앙로인데 예전 1980년대 이전에는 철로였다. 그래서 지적원도에도 표시가 된 것 같다. 합포진성의 성문은 3개로 위 지적도에 나와 있는 도로를 기준으로 동문, 서문, 남문이 있었고 건물로는 동헌과 객사, 창고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 위의 지도에서 지적도를 빼고 구글위성지도에 합포진성을 표시하였다. 아래 지도에 보면 성호초교 밑에 있는 곳과 예전 철길이 지나갔던 위가 성호 즉 반원모양의 호수가 있어서 성호리라고 사용했던 것 같다고 한다.
▼ 아래 그림지도는 지적원도에서 성곽을 추정하여 표시 한곳으로 동문과 서문, 남문을 추정하는 곳이다.서문을 보면 1912년 당시 옹성이 있었던 곳이 표시가 된다. 그리고 관아시설인 객사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창동 학문당앞에 있는 구. 시민극장자리가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객사터의 위치도 그렇지만 그만한 크기를 낼 수 있는 필지가 없기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합포진에는 200여명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상우도병영성에는 군사의 수가 3,000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 고려시대때 수군의 전초기지로서 활동한 합포진성은 조선초기에도 수군의 진성으로 사용하였다가 삼포(제포,부산포,염포)가 개항하면서 수군첨절제사영이 제포로 넘어가면서 사용을 하지 않아서 방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재 마산의 중심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읍성의 몰락과 함께 보통 시,군의 중심지로 사용하는 것 처럼 합포진성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조선초 1437년 이전에는 현재의 마산과 창원에는 종2품이 근무하는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고 종3품이 근무하는 수군첨절제사영인 합포진성과 부사가 근무하는 창원읍성이 있어 수군과 육군의 강력한 군사기지였던것이다. 영과 진이 함께하는 곳이 마산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창원공단에서 생산되는 많은 무기류들과 정통성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래 지도는 위 지적도를 구글위성사진으로 옮긴 것입니다.
위 구글위성사진을 제외한 모든 그림에 관련된 저작권은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보고 한 것임으로 박희윤씨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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