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읍성1 읍성(邑城)



남해읍성은 아직 방문을 하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모은 자료를 가지고 정리하고자 한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방문하여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해동지도에서 본 남해읍성으로 위가 남측이고 아래가 북측이며 왼쪽이 동측 오른쪽이 서측입니다. 그림을 보면 남해의 진과 보가 위측 즉 남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읍치는 중앙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상에 우측에 평산포진 좌측에 미조진이 있으며 중앙에는 상주포보와 곡포보가 있으며 남해읍성은 남북과 북문 2개가 있으며 여장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승에서 본 지도로 위 해동지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남해읍성은 1459년(세조 5)에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876척, 높이가 13척이라 한다. 성안에 우물 1개, 샘이 5개가 있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 한다. 그러던 것이 남해도로 공사중 동측 성곽이 발견되면서 복원이냐 개발이냐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한다.
▼  그후 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여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동측성곽 발굴조사때의 모습으로 전형적인 조선초기 읍성의 성곽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 및 발굴조사 보고서가 나오면 다시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음.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성곽의 체성부분이 확실히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  남해군청에서 조사한 남해읍성의 성곽 모습으로 이전까지 이런형태의 남해읍성이지 않을까 추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위 그림을 기준으로 다음지도에서 본 남해읍성의 성곽 추정도. 70년 초까지는 남해읍성의 성곽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 고지도인 해동지도와 달리 동측성문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성문은 동,남,북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상과 남해읍성의 성곽을 봐서는 성문이 3개~4개로 보인다. 이는 평지성인 남해성이 다른 평지성인 여러 읍성과 비슷하게 성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고 하는 추측에서 시작된다. 경상도의 경우 경주읍성, 언양읍성, 웅천읍성, 칠원읍성, 진해현읍성 등을 보아도 성문이 3~4개이었고 전라도의 남원읍성, 나주읍성을 보아도 그렇기 때문이다. 일단 일제의 조선읍성파괴 시기인 1910년 부근에 동헌과 객사들을 헐어내고 그자리에 초등학교와 관공서를 지었기때문에 남해읍성 또한 그러함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고 추측하건데 남해초등학교는 남해읍성 객사터였을 것으로 보이고 남해군청자리는 남해읍성 동헌자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해초등학교의 경우 개교가 1905년에 진명학교로 시작되었고 1912년 남해공립 보통학교 개교로 봐서 일제강점기때 남해읍성의 객사터가 없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파란색선이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남해읍성을 추측한 성곽의 모습이고 검정색선은 기존 알려진 남해읍성의 성곽모습이다.
위 두개의 지도을 기준으로 다음지도에서 다시 작성한 남해읍성의 성곽이다. 녹색선은 기존에 알려진 남해읍성의 성곽이고 파란색 선은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추측하고 있는 남해읍성의 성곽이다.
처음 남해군에서 추측한 남해읍성의 경우 평지 장방향 읍성이 되지만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추측한 남해읍성의 경우 평지 정방향 읍성으로 봐야 할 것이다. 평지성의 경우 남문을 중심으로 + 형태의 도로가 발달이 되었거나  T자형의 도로가 발달이 되었는데 도로의 발달이 성문에 영향을 주게되는데 + 의 경우 4대문 T자형의 경우 3대문이  나게된다. 처음 남해군청에서 추측한 장방향의 성곽일 경우와 우리문화재 연구원에서 추측한 정방향의 읍성이라면 차이가 날 확률이 많다. 이는 성문의 갯수때문이다. 장방향의 경우라면 객사위에 많은 읍성내부가 있고 정방향이라면 객사가 가장 위가 된다. T자형의 도로라면 현재의 남해군청이 있는 자리에 동헌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T자형의 도로의 경우 가장 북측에 동헌과 객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남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객사가 자리잡고 우측에 동헌이 자리잡는데(물론 이것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동헌의 자리였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 남해군청자리가 객사터로 추정이되는 남해초등학교 아래측에 자리잡고 있다. 남해군에서 추측한 장방향의 성곽이라면 남해읍성은 4대문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고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추측한 정방향의 성곽이라면 3대문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평지성의 경우 3대문보다 4대문이 많고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본다면 +형의 도로로 인해 4대문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장방향의 남해읍성일 경우) 만약 3대문일 경우라면 시장의 경우가 조금은 특이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면 해동지도와 지승에 나타난 고지도와 비교하여 2개의 성문이 추가가 된 것인데 그림지도가 그려지고 나서 성문이 추가되었거나 아니면 그리는 화공이 생략했거나 하는 생각이 들고 더 자세한 것은 문화재연구원에서 성곽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서 보아도 남해시장의 경우 북문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보통의 읍성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통읍성의 경우 남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서고 있는 것에 비해 남해읍성의 경우 북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들어섰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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