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2 진성(鎭城)



▼ 영가대(永嘉臺)는 오늘날의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 서쪽 경부선 철로변에 있었다.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철거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옛터에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관련이 깊은 명소로, 1614년(광해군 6)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이 부산진성(釜山鎭城)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바다에서 퍼 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亭子)를 만들었다.  

▼ 새로지은 영가대의 초석
▼ 1617년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던 오윤겸(吳允謙)이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행은 줄곧 이곳에서 해신제를 올리고 일본으로 갔다. 1624년(인조 2)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지었다. 통신사행은 조선후기 한일관계를 밝혀주는 대표적인 선린사절로,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된 것은 1636년부터 1811년까지 총 9차례로 일본국왕의 요청으로, 막부(幕府)가 있는 에도(현 東京)에 파견된 사절이었다. 통신사행은 8개월간의 긴 여정으로 거친 대한해협을 건너가기란 무척 힘든 일정이었다. 통신사행은 출발 전에 영가대에서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海神祭)를 올렸다.
▼ 영가대는 경치가 빼어나 시인 묵객(墨客)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통신사행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高臺蕭瑟出雲端 높은 대가 소슬하게 구름 끝에 솟았는데
陂水千尋石色磻 언덕 밑 천길 물에는 돌그림자 서려 있네.
艦穩如藏大壑 배들이 평온히 큰 구렁에 숨겨져 있는 듯
海中終日自波瀾 바다 가운데에는 온종일 물결이 치는구나. (1643년 신유 「영가대」)

▼ 영가대는 1905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양분되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상인 오이카와(及川民次郞)의 별장인 능풍장으로 옮겨졌다가 그후 도시화 과정에서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부산광역시의 역사유적지 표석 설치계획에 따라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부근의 도로공원에 “부산포왜관·영가대터” 표석을 세웠고, 2003년 동구청에서 자성대 인근에 영가대 정자를 복원하여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내용 출처 부산동구청 홈페이지)
▼ 복원된 영가대옆에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가대를 설명하는데 좋을 것 같으나 부산진성이라는 의미는 많이 사라질 것 같다.
▼ 복원된 동문의 뒷모습이다. 영가대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있다.
▼ 서문과 마찬가지로 뒷모습은 평거식으로 앞은 홍예식으로 되어있다.
▼ 달출문은 조선후기 부산진성때에는 진동문(鎭東門)이었으나 1974년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달춘문(達春文)이라고 성문의 이름이 바뀌었다. 화강암으로 높고 길게 축조한 돌기단 육축위에 문루를 세운형태이다.
▼ 부산진 지성안내판으로 부산진 지성으로 사용하지 않고 부산진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일본이 지은 부산왜성이 모성이고 자성대애성이 자성이다고한다. 그런데 푯말에는 다르게 적혀있다. 다음에 자성대왜성을 이야기 할때 이야기 하려고 한다.
▼ 동문앞의 골목으로 지금은 동문성곽이 지나가는 곳이지만 조선후기때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 홍예석으로 된 동문
▼ 서문과 같이 여장은 근총안만 설치가 되어있다.
▼ 복원된 성곽은 30여미터 정도되고 나머지는 복원이 되지 않았다. 이런식의 복원이라면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고증을 거치지 않고 복원을 하면 후세에 이런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기 때문이다.
▼ 동문앞의 주차장으로 자동차와 도로 사이가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성곽이 지나가는 곳으로 추정이 된다.
▼ 현재 부산시에서는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만들려고 하는데 장소가 복원된 영가대와 복원된 동문사이로 사진상 우측이 된다.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보면 그 장소도 부산진성의 성곽이 지나갔던 곳으로 보인다.
▼ 동문도 서문과 같이 성문에 철엽을 달아 놓았다.
▼ 복원된 북문으로 동문에서 부산은행본점으로 30미터 정도 가면 나오는데 동문과 서문과 달리 성문으로 복원을 하지 않아서 찾기가 힘이 든다. 나중에 자성대왜성을 이야기 할때 이야기 하겠지만 이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자성대왜성의 성문이 나오게 된다.
▼ 아래 안내판이 없으면 찾기가 힘이드는 부산진성의 북문
▼ 부산진성의 북문앞의 소방도로로 조선후기 부산진성에서는 어느 골목길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 부산진시장 방면을 바라본 모습이다.
▼ 자성대에서 바라본 부산진시장과 함께 뒤에 보이는 곳이 조선전기 부산진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된다.
▼ 부산진역에서 보 「남요인후」「서문쇄약」의 석주로 부산진성을 안내하기 위하여 잘 알려진 부산진역에 표시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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