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동지도에서 본 웅천현지도입니다. 해동지도의 경우 1750년대 초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을 중심으로 남측으로는 가덕도와 서측으로는 현재 진해해군기지까지 우측으로는 안골포까지이고 북측으로는 불모산까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동지도작성시 웅천현에는 1성 4진 3보 1역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성은 웅천읍성 4진은 안골포진, 제포진, 가덕진, 천성진이며 3보는 풍덕포보, 청천보, 신문보입니다. 또 1역은 보평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선조실록에 있는데 “경자년에 완평부원군 이원익이 남쪽 변방을 살피고는 변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울산ㆍ동래ㆍ창원 세 곳에 소모진을 설치하고는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신역을 면제해 주고 식량을 지급했습니다.”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있었던 창원에 있었던 소모진이 김해로 넘어가면서 청천진과 신문진으로 나누어져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에 있었던 청천진과 신문진은 효종7년(1656년)에 안골포진이 있던 안골포로 이전을 합니다. 김해에서는 40년정도 있다가 이전을 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서 아직도 김해시 진례면과 장유면에서는 청천리와 신문리로 사용중입니다. 효종때 웅천현으로 넘어가는 장천진과 신문진은 이름을 그대로 넘어가는데 이때 넘어가면서 육군에서 수군으로 편제가 바뀌어 버립니다. 이 두개의 진이 넘어오면서 웅천은 수군기지가 뭉쳐있는 수군도시가 됩니다. 지금의 진해가 해군의 상징인것과 같이 웅천현은 17세기부터 수군을 훈련하고 유사시 병력을 동원하는 동원부대와 함께 4개진의 강력한 수군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다만 현재 해군사관학교 자리로 이동을 한 풍덕포보에 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부분에 관하여 공부를 하고 알면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안골포진에는 안골포굴강이 있었는데 안골포굴강은 전선의 수리와 보수, 군사물자의 하역과 특수목적 선박 등을 정박시키기 위하여 만든 곳으로 다시 정리하면 안골포진은 교육부대, 군수부대, 창정비, 전투부대가 있는 조선시대 수군의 통합부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진의 위치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안골진 옆이라는 것을 유추하여 그려 놓았는데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청천진의 위치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안골포진 서측에는 제포진과 남측에는 가덕진, 천성진이 있어 교욱과 보급,창정비를 하기에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안골포만은 1656년부터 300여년 동안 활동을 하였으며 안골포의 경우 지금은 경남 진해시로 조선수군의 전통이 대한민국해군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陣와 鎭의 경우 바로 소모진과 수군진의 차이를 알리려는 것 같습니다. 陣의 경우 召募陣을 나타낼때 하더군요.
진 칠 진자인데 군사들의 대오(隊伍)를 배치한 것. 또는 그 대오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수군진의 鎭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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