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수군의 통합부대 안골포진과 청천진 그리고 신문진 진성(鎭城)



▼ 해동지도에서 본 웅천현지도입니다. 해동지도의 경우 1750년대 초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을 중심으로 남측으로는 가덕도와 서측으로는 현재 진해해군기지까지 우측으로는 안골포까지이고 북측으로는 불모산까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동지도작성시 웅천현에는 1성 4진 3보 1역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성은 웅천읍성 4진은 안골포진, 제포진, 가덕진, 천성진이며 3보는 풍덕포보, 청천보, 신문보입니다. 또 1역은 보평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해동지도를 확대해본 것으로 지금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곳에 풍덕포보가 있으며 해군기지가 있는곳에 서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웅천읍성의 동측으로는 안골진과 함께 안골진 지척에 청천보와 신문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웅천계의 모습으로 해동지도와 비슷하나 우측에 있는 청천진과 신문진이 나오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청천보와 신문보로 나왔는데 지승지도에서는 청천진과 신문진으로 나온다. 다만 진자가 한문으로 陣으로 진칠진이다. 안골진의 진자인 鎭(진압할 진)자와 다른데 이는 밑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승지도의 제작시기는 17세기 중엽이라고만 해서 이 웅천현지도의 제작시기를 알 수가 없네요. 지승지도의 기준으로 본다면 청천진의 경우 지금의 마천주물단지 앞에 있다가 현재의 청천마을로 옮긴것 같습니다만 위 해동지도에는 청천진이 현재의 청천마을에 그대로 있습니다.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네요.
▼ 1872년 지방지에 나오는 안골포진의 지도입니다. 안골포의 관아건물과 함께 신문진과 청천진이 보입니다.
▼ 1872년 지방지도를 확대해본 것으로 안골포진옆에 신문진이 있으며 안골포진앞에 청천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신문진과 안골포진은 진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합니다.
▼ 그러면 청천진과 신문진은 어떤 곳일까요? 청천진과 신문진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창원도호부에 있었던 청천진과 신문진이 광해군8년(1616년) 김해로 이동을 하는데 청천진은 지금의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로 옮기고 신문진은 지금의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로 옮기게 됩니다. 당시 두개의 진은 육군진영으로 소모진()으로 육군을 훈련시키는 훈련소의 기능과 함께 유사시 병력을 모아서 전투를 하는 곳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예비군 동원부대 정도 였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기록은 선조실록에 있는데 “경자년에 완평부원군 이원익이 남쪽 변방을 살피고는 변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울산ㆍ동래ㆍ창원 세 곳에 소모진을 설치하고는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신역을 면제해 주고 식량을 지급했습니다.”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있었던 창원에 있었던 소모진이 김해로 넘어가면서 청천진과 신문진으로 나누어져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에 있었던 청천진과 신문진은 효종7년(1656년)에 안골포진이 있던 안골포로 이전을 합니다. 김해에서는 40년정도 있다가 이전을 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서 아직도 김해시 진례면과 장유면에서는 청천리와 신문리로 사용중입니다. 효종때 웅천현으로 넘어가는 장천진과 신문진은 이름을 그대로 넘어가는데 이때 넘어가면서 육군에서 수군으로 편제가 바뀌어 버립니다. 이 두개의 진이 넘어오면서 웅천은 수군기지가 뭉쳐있는 수군도시가 됩니다. 지금의 진해가 해군의 상징인것과 같이 웅천현은 17세기부터 수군을 훈련하고 유사시 병력을 동원하는 동원부대와 함께 4개진의 강력한 수군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다만 현재 해군사관학교 자리로 이동을 한 풍덕포보에 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부분에 관하여 공부를 하고 알면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의 안골지역에서 신문진에 관한 흔적은 알 수가 없지만 청천진에 대한 흔적은 청천진이 있었던 마을에 남아있는데 청천마을로 지명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안골포진성이 있었던 안골진은 청천진,신문진의 예비부대와 교육부대 그리고 전투부대가 있었던 곳이 됩니다.

또한 안골포진에는 안골포굴강이 있었는데 안골포굴강은 전선의 수리와 보수, 군사물자의 하역과 특수목적 선박 등을 정박시키기 위하여 만든 곳으로 다시 정리하면 안골포진은 교육부대, 군수부대, 창정비, 전투부대가 있는 조선시대 수군의 통합부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진의 위치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안골진 옆이라는 것을 유추하여 그려 놓았는데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청천진의 위치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안골포진 서측에는 제포진과 남측에는 가덕진, 천성진이 있어 교욱과 보급,창정비를 하기에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안골포만은 1656년부터 300여년 동안 활동을 하였으며 안골포의 경우 지금은 경남 진해시로 조선수군의 전통이 대한민국해군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 여기서 잠깐! 1656년 지금의 김해 진례면에서 안골로 오기전까지의 창천진의 위치를 고지도에서 살펴보면 창원계와 김해계의 경계지점으로 지도에 동그라미로 표시를 해보았습니다. 청천진뒤에 보이는 곳이 노현이라고 적혀있는데 예전 조선시대 길이며 김해에서 창원을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으로 임진왜란당시 함안군수 유승인이 노현고개에서 김해에서 넘어오는 왜군과 전투를 벌여서나 패하고 진주로 이동을 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도로의 발달로 인해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陣와 鎭의 경우 바로 소모진과 수군진의 차이를 알리려는 것 같습니다. 陣의 경우 召募陣을 나타낼때 하더군요.

진 칠 진자인데 군사들의 대오(隊伍)를 배치한 것. 또는 그 대오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수군진의 鎭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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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제주도 해군기지_02_01(진해 해군기지) 2011-09-06 12:02:55 #

    ... 였던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진해해군기지가 출범을 하지만 그 이전에 조선수군기지로서 모든 것이 갖춘 곳이 바로 웅천 즉 진해였던 것입니다.신문진과 청천진의 발제글 보기 진해라는 명칭은 일제가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진해라는 명칭을 가져와서 현재의 진해기지로 사용하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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