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읍성4 읍성(邑城)

▼ 해동지도에서 본 곤양읍성입니다. 타원형의 읍성으로 평산성의 구조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성문은 3개로 동,서,남문이 있고 읍성주위로 곤양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스러운 해자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곤양읍성의 경우 일부 성곽이 남아있는데 현재 노란색으로 되어진 부분입니다. 빨강색으로 되어진 부분이 곤양읍성 성곽 추정도입니다. 다만 위성지도상에 나오는 동헌의 경우는 아닌것 같고요. 현재 곤양면사무소가 있는 곳은 향청이라고 듣었는데 곤양면사무소 옆이라 면사무소는 향청이고 동헌은 옆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지표조사나 발굴조사가 있어야겠죠. 지적원도의 자료는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최원석교수의 "지적원도를 활용한 읍성공간의 역사지리적 복원 - 경상도 읍성을 사례로" 라는 논문에서 곤양읍성의 지적원도를 가져왔으며 지적원도만 있어서 현재의 지형과 알 수가 없어서 제가 다음지도를 가지고 지적원도를 다음지도에 대비하여 만든 것입니다.
▼ 남측성곽에서 본 곤양읍성의 성곽으로 잘 남아있으며 조선초기때 축성한 방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저번 곤양읍성을 찾아서를 하면서 남문이 있었던 곳을 추정한 곳이었는데(내리막길 도로부분)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보니까 아니네요.  
▼ 면사무소 옆에 있는 공용주차장으로 지적원도 기준을 본다면 이곳이 동헌이 있었던 곳으로 봐야 겠네요. 이렇게 되면 남문을 중심으로 좌객사 우동헌인데 객사와 동헌까지의 거리가 제법 됩니다.
"곤양읍성은 해안입지 및 평산입지에 해당한다. 문헌에 의하면, 읍성은 1430년에 石城으로 축조되었고 규모는 둘레 3,765 尺, 높이 12尺이었다. 지적원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읍성의 평면형태는 동서로 길쭉한 부정형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읍성의 구성요소로서 동 ․ 남 ․ 북의성문 셋이 있었다. 主門인 남문에서 북문을 잇는 남북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객사(현 곤양초등학교 자리)와 동헌(迎陽閣 영양각, 현 성내동 193번지 면사무소 자리)이 공간적으로 대응 하여 左客舍 ․ 右東軒의 일반 형태로 배치되었다. 동헌은 읍성의 동편에서 오는 來脈과 접속한 풍수적 입지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南門으로의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각각의 중심 공간으로 이르는 접근로 역시 동헌은 남문에서 바로 이어진 반면에 객사의 접근로는 남북간 선로에서 동편으로 접속된 ‘┣’ 형태로 나타난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최원석교수의 "지적원도를 활용한 읍성공간의 역사지리적 복원 - 경상도 읍성을 사례로 논문중 발췌

▼ 곤양읍성 3편에 이어서 다시 북문으로 와보왔습니다.서측 성곽이 아닌가 생각해서 찍어 놓았는데요. 위 지적원도 기준으로 보니까 대략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북측성곽인지 서문앞 옹성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북문앞 옹성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식당인데 진미가든입니다. 식당건물이 북측성곽이 지나가는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면 북문지일수도 있고요. 보이는 도로가 북문지일 수도 있습니다.
▼ 식당앞에서 본 곤양천의 모습으로 S자형태로 흐리는 곤양천은 북측성곽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적의 입장에서 곤양천을 통과하는 것은 힘들어 보이고 설사 통과하였다고 하여도 성벽까지 가기위해서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을 넘어와야 해서 북측을 통한 공격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진미식당 뒤에서 본 북측성곽의 일부로 보이며 식당주변이 북측성곽이 지나갔음을 증명합니다.
▼ 상당한 크기의 성돌이 있으나 주위는 무너져 내린 것인지 아니면 곤양읍성 축성당시 축성한 돌인지는 몰라도 옆의 성돌과는 크기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크기는 길이는 80~90센치 높이는 대략 60센치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이 정도 성돌로 조성한 곳을 본 것은 함안읍성의 남측성곽에서 보았습니다.
▼ 세월이 많이 흐르고 문화재지정이 되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성곽이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식당 앞 도로 옆에 있는 돌들로 성곽이 지나간 곳이 아닌가 싶어서 사진을 찍어본 것인데 일부는 맞을 것 같지만 섣부르게 단정짓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 북문지 바로 옆에서 본 것으로 공적비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곤양면에 공적비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을 모아서 지금의 곤양면사무소에 모아 놓았는데 이곳은 가져가지 않았더군요.
▼ 하단부에 거북이가 보이며 공적비를 보호하기위해 기둥이 4개로 지지하고 있었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공사장에서 사용한 폐건축물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공적비 옆을 돌로 축성을 하였던데 성곽의 일부인지는 확인이 불가능 합니다.
▼ 공적비 옆에 골목이 있었는데 하수구가 보여 혹 해자가 아닌가 싶어서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 골목을 따라 올라가니 조그마한 텃밭에 옥수수도 심어놓았는데요. 텃밭을 보호하기 위해 돌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성곽에 사용한 돌이 아닐까 싶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 보통 주민들이 성곽에 사용한 돌들을 가져와 텃밭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네요.
▼ 골목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대밭고을이 나오고하는데 길이 없어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산을 올라가서 성곽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숲이 많이 우거지고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니 성곽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해서 다시 곤양면사무소로 왔습니다.
▼ 곤양면사무소에서 북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걸어 갔던 곳으로 북문지 바로 뒤에 곤양교회가 있는데 곤양교회 길건너에서 본 가정집의 담으로 사용중인 돌입니다.
▼ 제법 돌이 크더군요.
▼ 보이는 돌담뒤로 산이 보이는데 높은 산은 아니고 나즈막한 산입니다. 곤양읍성의 북측 성곽이 산으로 연결이 되었는데 지금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일부는 남아있다고는 하는데 저는 발견을 하지 못했습니다.
▼ 곤양읍성의 경우 많은 성곽이 없어져버려 곤양읍성을 알기는 어려운데 길안내판에서 이곳이 읍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문헌을 보니까 곤양읍성뿐만 아니라 곤양왜성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직 고고학에서는 왜성에 관하여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곤양왜성의 경우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궁금점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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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경남 백의종군로 사업1 2009-08-08 10:58:41 #

    ...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로 인해 읍성의 가장 큰 건물인 객사에 접근하기 위한 응취루 부분이 허전하게 보입니다.곤양읍성 바로가기 1곤양읍성 바로가기 2곤양읍성 바로가기 3곤양읍성 바로가기 4곤양읍성내에 있는 응취루뿐만 아니라 백의종군로 정비를 하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선진리성입니다. 선진리성에 임진왜란 수난사를 만든다고 하는데 선진리성안에 만들 ... more

덧글

  • 대밭고을 2010/02/06 11:13 # 삭제

    곤에서 대밭고을을 운영하고 있는 강태욱 입니다. 몇가지 오류부분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곤양은 동서남북의 4개의 문이 있었으며 북문은 저기 위의 사진의 적벽의 적자 왼편에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의 이름이 북문교이구요 곤양쪽에 북문이 있었던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다리를 놓기위해 80년대 초반 기초공사를 하던중 약 2미터 크기의 돌거북이 나와서 곤양고등학교에 보관하였으나 도난당하였습니다. 진미가든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은 대밭고을이라는 건물이며 그 건물이 서문위치이며 해자가 아닐까 해 놓은 골목은 성벽은 아닙니다. 그곳은 물밑재 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는 성밖이구요 대밭고을 건물 건너편에 보면 성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다음에 곤양에 오실 기회가 있음 꼭 연락 주세요 제가 아는 한도에서 곤양을 알려 드리겟습니다 감사 합니다
  • 팬저 2010/02/06 12:36 #

    성문이 4개가 있었다는 부분은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는 성문이 3개인데 반해 그후 나온 1872년 지방지에는 성문이 4개가 있으니 성문이 4개인것은 사실입니다. 19세기 초까지 성문이 3개였다가 그후 4개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872년 이후 1910년 일제강점기때 조사한 지적도에 보면 성문의 흔적이 3개입니다. 서문의 경우 어디인지 잘모르겠네요. 말씀하신 대밭고을이 서문이라면 말씀하신 적벽이 있는 다리가 북문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1910년경에 조사한 지적도에 북문이라고 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데 저도 처음에 북문다리가 있는 곳이 북문지라고 생각했고 북문이 있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http://panzercho.egloos.com/2760684 이곳에 북문이라고 적어놓았죠. 그후 지적원도를 가지고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최원석교수의 "지적원도를 활용한 읍성공간의 역사지리적 복원 - 경상도 읍성을 사례로" 라는 논문을 보고 북문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저보다 먼저 조사하신 분이고 전문가라 북문이 맞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네요. 다만 해동지도나 광여도의 기준으로 본다면 서문이 북문이 맞을 것 같고요. 1872년 지방지의 기준으로 본다면 서문이 맞을 것 같네요. 아무튼 공부할 것이 생겨서 고맙습니다. 곤양에 가게 된다면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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