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소을비포(소비포)진성_04 진성(鎭城)



고성 소을비포 진성을 1년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서문의 옹성부분이 복원을 하였던 것이 다른 것 같고요. 또 그사이에 구글위성에서 지원이 되지 않았던 고성부분이 다음 항공지도에 잘 나타나고 있어서 다시 정리하려고도 하고요. 또 진성의 위치라는 점을 다시 보게되는 점이 고성 소을비포진성에 관하여 글을 다시 적게 됩니다.

고성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소을비포성지라고 불렸는데 이번에 서문까지 모두 복원을 하였기에 소을비포성이라고 불러야하나 수군기지라서 소을비포진성이라고 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남으로는 사량진이 있고 서측으로는 적량진이있고 남동측으로는 현재 통영의 당포진 그리고 동측으로는 통제영지가 있고 동북측으로는 고성현이 있으며 북측으로는 좌이산 봉수대가 있었던 곳입니다.
▼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고성군 중에서 사천시(예전 삼천포시)와 가까운 곳에 있는 곳으로 행정구역으로는 경남 고성군 하일면에 속합니다. 아래 항공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리아스식해안의 조그마한 만에 속하는 지역으로 포구 앞에는 자그마한 섬인 만장섬이 있고 서측으로는 또 다른 만으로 된 포구가 있으며 북으로는 높은 산인 좌이산이 있습니다. 또 동으로는 자그마한 산이 동측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로서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폭풍이나 태풍등 자연적 재해가 온다고 해도 다른지역과 달리 선박들을 안전하게 보호 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큰 지도가 나옵니다.)
▼  소을비포진성이 있는 곳을 보면 남측과 북측에 포구가 있어서 선박을 정박시키기에 편리하고 두개의 포구 덕분인지는 몰라도 자연적요소를 가진 수군기지로서의 적합성이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물론 조선시대때에는 북측에 전선을 정박시켜 놓았지만 유사시에는 다른 전선들이 포구에 정박을 한다고 해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정박시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함대의 1차 출전때 소을비포진성 포구에서 1박을 할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림지도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1872년에 나온 지방지도를 보면 성곽들이 다 허물어져 있고 서문의 경우 확실하지 않았는데 동아세아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하다보니 서문옹성 부분이 나왔지만 교란이 많이 되어서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건물지의 경우 9개의 흔적을 찾았는데 아직 복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철제공방지가 있었다고 하며 북문 근처에 포구가 있는곳에 예전 조선시대부터 전선을 정박했던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단 적이 나타나면 좌이산에 있는 봉수대에서 봉수가 올라오며 출동했던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그림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남문에서 포구를 바라본 모습으로 바다가 잔잔하며 포구에 배가 정박하고 있는데 유사시 아군의 전선도 북문 근처의 포구에 정박을 다했다고 하면 이곳에서도 정박이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  포구에 들어 오기 위해서는 조그라한 만을 지나와야 하는데 지금의 PCC정도나 들어 올 정도로 좁은 곳이지만 조선시대 전선인 판옥선의 경우 입출입을 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서문 옹성이 복원을 하였는데 서문의 경우는 복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산보다는 발굴조사에서 나온 자료를 기준으로 서문옹성만 복원을 하고 서문의 경우 복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을 합니다. 문지의 경우 발굴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지 않나 싶습니다.
▼ 서문 옹성의 축성의 경우 기존의 남측의 성벽과 같은 높이인 2~3미터 정도 복원을 하였는데 예전 기록에 나오는 4~5미터 보다 높이가 낮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축성 방법은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축성방식과 비슷하게 축성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서문 옹성의 경우 높이가 낮다보니 웅장함이나 현실감면에서 조금 떨어지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  높이가 낮게 조성한 것이 소을비포진성의 복원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협축의 경우 옹성에 사용된 돌과 같은 규모의 크기라(대략 50*60*80) 리얼리티 면에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  조선초기때의 축성방식보다는 성종때 쌓은 축성방식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활석을 기준으로 큰 돌을 하단에 축성하고 상단을 가면서 작아지는 방식이 조선초기때의 축성방식이라면 성종때의 축성방식은 가로,세로 방향이 정방향에 가까운 방식의 돌들이 틈이 아주 작게 쌓는 방식인데 여기에서는 조선초기때의 방식과 비슷하게 큰활석을 하단에 쌓고 상단에 가면서 작은 방식을 쌓는 방식입니다. 다만 크기가 일정한 크기와 부정형의 크기가 서로 맛물려 쌓는 것이 보이며 잔돌끼움 방식이 아닌 형식이고 틈이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옹성 내측의 모습으로 요즘 복원하고 있는 여러 성곽의 방식에서 많이 보는 방식과 같아서 낯설지 않습니다. 전라병영성에서도 이런 방식이었는데 전라병영성의 경우 옹성의 높이가 5미터 이상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웅장한 느낌을 준 방면에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높이가 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느낌이 살지 않네요.
▼ 옹성의 회각로로 협축을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는 잔돌을 채우고 위에 큰돌과 잔돌로 마무리 처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옹성에 여장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보이네요. 실제 여장이 없었는지 아니면 예산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옹성을 사용했다면 여장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  서문 옹성에서 남측 만입구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만입구의 폭은 잛은 곳은 140미터 정도 넓은 곳은 210미터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는 조금 넓은 느낌입니다. 저는 50여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  서문 옹성에서 북문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이제 어느 정도 소을비포진성의 경우 윤곽이 잡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  서문 옹성에서 북문측 포구를 바라본 모습으로 예전 조선시대때 전선의 경우 판옥선의 경우 100여척 정도는 정박할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  서문 옹성에서 좌이산 방향을 바라본 모습인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좌이산의 모습이 다 보이지 않습니다.
▼  서문 옹성에서 남문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옹성의 성벽높이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소을비포진성 서문옹성의 회각로를 확대해본 모습으로 외측으로 큰돌을 축성하고 내부에 작은 돌로 마무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당시 본 성벽의 기울기와 지금 복원된 소을비포진성의 북문 성벽의 기울기는 틀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복원을 하면서 예전 자료를 기준으로 복원을 한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이 아니더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부산진성의 성벽기울기가 특이해서 소을비포진성의 성벽 기울기를 이야기 하였는데... 이왕 복원을 한다면 예전의 방식을 이용한 복원이 맞지 현재의 기준으로 재해석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고성군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객사와 동헌등을 복원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진행될지는 몰라도 관아터가 복원을 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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