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헌과 황정랑은 같은 인물(?) 읍성(邑城)

창원중학교 교가에 "천주산 우뚝 솟아 창공을 뚫고 쉬-잖은 맑은 물 성내에 흐르네 황정랑 장한 정기 굳세게 받아 세기에 빛날 창원중학교" 로 시작하는 교가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에 등장하는 성내는 창원읍성을 가로 지르는 중동천입니다. 현재는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죠. 그다음에 등장하는 가사가 황정랑입니다. 황정랑 장한 정기~로 시작하는 가사를 모르고 따라 불렀는데요. 

황정랑이 무엇인지 당시로서는 몰랐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정랑(正郞)은 조선시대 육조의 정오품(正五品) 관직입니다. 즉 정오품 벼슬을 가진 황씨 성을 가진 분을 이야기합니다.

황씨 성을 가진 분중 창원에서 유명한 인물은 황시헌을 이야기하는데요. 황시헌의 계급이 정랑이라 황정랑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병자호란 발발 후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 황시헌은 창원 부사 백선남(白善男)을 수행해 (당시에는 계급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배리(陪吏)신분으로 큰 계급이 아닙니다) 남한산성으로 달려가다가 경기도 광주의 쌍령전투에 참가하여 사력을 다하였지만 창원부사 백선남도 전사하고 장수들도 도망을 가게 됩니다.

 창원부의 관인이 땅에 떨어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잡으려는 순간 적의 칼에 한 팔이 잘렸다고 합니다. 남은 손으로 관인을 잡으려 할 때 그 팔도 잘리자 입으로 물고 관인을 수습 하려하자 적이 목을 쳤다고 전해집니다.

이 모습을 군노가 보고 전해졌으며, 황시헌의 죽음을 재현하여 보여준 모습을 보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오늘날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문창제놀이>가 되었습니다.

이후 현종이 충절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공조정랑을 추종하고 정려각을 세워 충절을 기렸다고 하며, 현재 창원 남산에 충절각이 있습니다. 물론 현종때 세운 것은 아니고요. 

창원중학교가 서상동에서 도계동으로 옮겨가면서 황정랑의 이야기는 교가에서 빠졌습니다. " 천주산 우뚝 솟아 창공을 뚫고 푸른 솔 높은 기상 교정에 서리네 온 누리 밝혀주는 배움의 전당 ~"으로 진행합니다.

참고로 창원 의창동 중심에 창원초, 창원중, 창원여중, 창원고, 경남여상(현 경남관광고)이 있었는데 도계동, 팔용동, 봉림동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창원초등학교만 남겨져 있습니다. 

당시 의창동에 있었던 학교중 황시헌에 관하여 교가에 나온 학교는 창원중학교가 유일하며, 창원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창원고등학교 교가에는  "하늘 기둥 우람한 천주산 솟고 옛날엔 대도호부 충혼의 고장"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충혼의 고장이라는 부분이 짧게 황시헌을 표현하고 있는데 정확한 이름이 적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황정랑은 황시헌의 사후 계급을 이야기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고향의봄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곳에 황시헌의 무덤과 충절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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