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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가본 낙안읍성_01

낙안읍성을 갔을때가 5월(6월 같기고 하네요)인것 같은데 이제사 포스팅합니다. ㅠㅠ 낙안읍성 매표소로 초가집이 정겨움을 주네요. 관광안내도인데 조금 특이하죠.동문입구에 놓여져 있는 장승의 모습낙안읍성의 동문으로 들어가기전에 만나는 것이 바로 석구입니다. 석구의 경우 풍수지리적인 성격이 강한데 낙안읍성 주위의 멸악산,제석산,거선봉의 사나운 기운을...

평지성의 대표적인 낙안읍성 모형

낙안읍성을 몇번이나 가도 낙안읍성 민속관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잊어버려서 안드어간 것이 더욱 더 많죠. 그런데 그 민속관에 낙안읍성 모형이 있다고 하여 다시 찾아가보았습니다. ㅠㅠ (첫번째 갔으면 이런일을 다시 안해도 되는데 말이죠) 낙안읍성의 경우 성문이 3개가 있고 남문이 행정적인 중심이고 생활적 중심은 동문이죠....

낙안읍성 옹성이 왜 이렇게 작지?

우리나라 읍성중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을 이야기하면 아마도 순천낙안읍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창읍성과 해미읍성도 있지만 읍성내부에 민가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많은 분들이 낙안읍성을 방문하여 관광을 즐기곤 합니다. 필자도 몇번 낙안읍성을 방문하였고 2012년 들어서도 다시 한번 가보았습니다. 예전에도 낙안읍성을 가보고 나서 낙안읍...

2% 아쉬운 시간이 멈춘읍성 낙안읍성 답사기

이번에 낙안읍성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몇번에 걸쳐서 낙안읍성을 방문했는데 갈때 마다 다른 것이 읍성이 주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갔을때에는 "이런 곳이 있었네"하는 매력에 빠져들다가 다시 갔을때에는 전통의 맛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에는 읍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저 관광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것이었습니다. 그후 읍성을 배워가면서...

무장읍성 복원, 낙안읍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추진

1894년 동학농민군이 창의포고문을 선포하고 봉기했던 무장읍성을 복원한다고 합니다. 제가 무장읍성을 찾아갔을 때(2008년)에는 의 경우 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발굴조사가 끝났는지 복원을 추진한다고 하는군요. 2014년까지 무장읍성과 관아, 성곽, 건물을 복원한다고 합니다. 무장읍성의 경우 동헌과 객사들이 현재 남아있거나 복원을 하였는데 그...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6

▼ 낙안읍성 낙민루로 낙안읍성안에 있는 4개의 누각 중 하나이다. 동문과 남문에 있는 누각 각 1개씩과 객사의 외삼문인 빙허루가 있었지만 현재 객사의 빙허루는 없기때문에 3개의 누각중 하나이다. 낙민루는 동헌의 외삼문역활을 하였지만 지금은 외삼문역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헌종때에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고 1924년에 중수한 건물을 광복 이후까지 군민들...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5

낙안읍성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임경업장군입니다.▼ 임경업장군의 비각으로 인조6년(1628년) 4월 1일 건립한 임경업장군 선정비는 인조4년(1626년)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직하면서 군수로서의 역활도 훌륭하였지만 정묘호란 당시 큰공을 세운것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민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4

이제 남문을 출발하여 동문지로 발길을 돌립니다.▼ 남문의 내탁에 있는 민석으로 조선시대때 축성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보입니다.▼ 쌍청루와 함께 남문의 옹성의 모습▼ 낙안읍성안에 있는 배수로의 모습으로▼ 낙안읍성 외부의 배수로의 모습▼ 낙안읍성 수구의 모습으로 낮은포복으로 들어온다면 한명씩 들어올 수 있는 구조입니다. 체성의 내탁의 경우 하단부는 50센치 ...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3

▼ 이제 낙안읍성의 성벽이 조선시대부터 온전히 잘 보존되고 있는 서문에서 남문방향으로 갑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남문인 쌍청루가 보이네요.▼ 걸어오다가 서문방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조금은 내리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보니 조랑말이 방목을 해놓았는지 3마리가 자연스럽게 놀고(?)있더군요.▼ 미석의 모습이 보여서 찍은 사진으로 남문측의 성곽의 높...

낙안읍성 그 비밀을 찾아서_02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습니다.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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