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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읍성 예전 사진들 찾아요

읍성이 현재까지도 잘 남아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읍성 철거령이 내려지면서 전국에 있는 읍성들이 철거가 되었습니다. 읍성의 철거가 되다보니 소중한 자료들은 현재 잘 남아있지 않습니다. 창원읍성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산이 개항을 하면서 창원의 행정부 기능 전부가 마산으로 이전을 하게 되다보니 예전 건물들...

두 장의 사진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창원읍성 동헌 평근당

일제강점기 일본은 1910년 읍성철거령을 내리게 되었고 읍성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나마 객사나 동헌 건물은 학교나 관광서 건물로 남아 생명을 연장하였습니다만 다른 건물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창원읍성의 건물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창원읍성의 동헌 건물인 평근당은 창원초등학교 전신인 창원장흥학교 교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창원장흥학교는 1907년 ...

진해현 동헌 사주문 내삼문으로 바꾸어야....

한눈에 보아도 위압감이 드는 문입니다. 이 문은 동래부 동헌 앞에 서 있는 삼문입니다. 삼문중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는데 이 삼문은 내삼문입니다. 내삼문에는 나졸들이 서 있으면서 출입을 통제하지요. 보시는 것과 같이 높이도 상당해서 중앙의 솟을 대문은 높이만 해도 기와까지 5미터가 될 정도입니다. 이 독진대아문이 원래의 자리로 옮겨갔다고 부산시에서 대대적...

장사의 신 객주 동헌 고증에 관하여

아래에 나올 이미지는 얼마 전에 끝난 KBS 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에서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의주부윤이 천가객주들이 아편밀매 한 것에 관하여 재판을 여는 모습의 신으로 이부분이 고증이 맞는 것일까요? 요즘 아이들은 사극을 통해서 역사를 배우는데 이게 맞는 것일까요? 한번 보시고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보시고 고증적인 부분에 문제점을 찾아 보셨는지요...

동헌에 계자난간이 맞나요?

난간에 대하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높은 마루나 툇마루·다리·계단 등의 외곽 끝에 설치하여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시설물"이라고 말이죠. 난간중에 계자난간,헌난간,석교난간,호석난간이 있는데이 있는데 누각·정자와 사랑의 대청 등에 사용하는 것은 계자난간(鷄子欄干)이라고 합니다. 계자가 닮 다리 모양과 비슷...

성주군 성산관은 동헌일까 객사일까?

성주군에 있는 성산관은 성주목의 객사의 익헌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 관한 발제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성주읍성 성산관의 명칭 통일에 관하여 링크이렇게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성산관(星山館) 때문입니다. 고을에 있는 객사의 당호는 예전 지명을 가져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성주의 옛이름이 성산이라 성산관을 사용하였으면 객사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 ...

성주읍성 성산관의 명칭 통일에 관하여

계속해서 뒷북치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촌놈의 일터라는 블로거가 "경북 성주의 경우 성주읍성과 함께 객사와 동헌이 있었는데 객사의 명칭이 백화헌이라고 사용되고 있다. 보통 객사의 경우 OO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하는 질문과 함께 성주초등학교 앞 표석에는 성산관으로 적혀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 하는 내용을 성주군청에 문의를 하였다고 합니...

함화루는 함양읍성의 남문이 아니다

저번편에 함화루는 함양읍성의 남문이 아닐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 정황적으로 보았을때 함양읍성의 남문이 아닐 것으로 보았습니다. 필자의 생각이 틀리거나 맞다는 것을 알려면 예전(일제 강점기 남문이었던) 사진이 있으면 더욱 더 정확할 것인데 아직은 나온 자료가 없네요.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던 것처럼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의 경우 일정한 형태와...

흥양읍성_01 존심당과 고흥아문

광여도에서 본 흥양읍성의 모습입니다. 성문은 두개로 되어져 있으며 서문과 남문만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문옆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문을 지나 위로 올라오면 보이는 것이 객사이며 향교의 경우 서문을 지나서 가야 있습니다. 또 서문앞에 고읍면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봐서 예전에 고읍면에 읍치가 있다가 다시 옮겨 갔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거창읍치 살펴보기 01

해동지도에서 본 거창부의 모습으로 거창부의 경우 현재 거창군중 거창 서부지역인 위천면 등을 제외한 현재의 거창군일대입니다. 거창부의 경우 읍성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내륙 깊숙히 있다보니 읍성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읍치 옆에 거열산성이 있어서 유사시 거열산성으로 옮겨가서 농성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거열산성의 경우 삼국시대때 만든 산성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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