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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성8(1900년대의 부산진성의 모습)

인터넷에서 구한 1905년대(정확한 년도는 모르겠습니다.)의 부산진의 모습으로 여기에 부산진성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 올립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멀리 서문이 보이고 위로 보면 자그마한 야산이 보이는데 현재 자성대공원으로 있는 곳입니다. 산 정상에 임진왜란때 축성한 자성대왜성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현재 남아있는 자성대왜성과 달리 성...

자성대 왜성1

1년전에 사진을 찍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자성대왜성에 관련되어 포스팅을 하게되었다. 사진은 2009년 5월에 올려놓고나서도 선뜻 글을 못적었는데 큰맘먹고 적어려고 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성대라는 명칭은 부산진성을 모성(母性)이라고 하고 그 자식의 성이라는 뜻으로 말하였다는 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여기서 주목을 해야할 것은 부산진성을...

부산진성7(古그림을 통해본 부산진성)

부산진성에 관련된 옛자료를 찾다보니 생각보다 잘나오지 않더군요. 특히 1900년에서 1910년사이의 부산진성의 사진의 경우 인터넷에서 자료 찾기가 힘이 듭니다. 일본이나 미국에 혹 자료가 있을까 싶어서 가보아도 잘 찾아지지가 않네요. 아무튼 천천히 찾아봐야겠네요. 제가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일본왜성의 장점을 이용하고 조선의 진성의 장점을 혼합한 성이...

함경도 경성읍성

이미지출처 한민족 전투 문화 원형 컨텐츠얼마전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성벽기울기를 이야기하였는데 그와 비슷한 성벽의 기울기가 있는지에 관하여 인터넷으로 보다가 성벽기울기가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읍성답사후 올려야 하는 것이 정석이나 북한을 가볼 수가 없는 관계로 읍성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봅니다. 경성군은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으며... 경성읍성은 1107년에 축...

부산진성6(성곽 축성방법에 관하여)

저번에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성벽 축성방식이 왜성과 같은 기울기로 되어 보인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고성의 소을비포성에서 본 기울기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경 부산진성의 모습입니다.▼ 성벽의 기울기가 우리나라의 성곽과 달리 기울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된 고성소을비포진성의 모...

부산진성5(고지도에서 본 부산진성)

▼ 1872년 지방지에 있는 부산진성의 고지도입니다. 왼쪽 가장 아래쪽에 성곽처럼 둘러싼 곳이 있는데 그곳에 왜관입니다. 왜관을 따라 부산진성 방면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진이 있는데 두모진(豆毛鎭)입니다. 두모진을 따라 올라오면 부산진성의 전선을 보관하는 선창이 보입니다. 선창옆에 정공단이 보이고 정공단 옆에 있는 산이 증산이고 그곳에 임진왜란때 일본군들...

부산진성4(조선후기 부산진성 축성에 관하여..)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성곽이 기존 진성의 성곽과 달리 왜성의 방어 전술과 같은 부분을 적용하였다고 하였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부산진성의 경우 왜군이 쌓은 자성대왜성을 본성의 개념으로 사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성대왜성이 본성 부산진성이 외성이라는 개념이죠. ▼ 남해안에 있는 진성들의 성곽 평면도 입니다. 조선후기 부산진성과 비교하...

부산진성3(조선후기 부산진성은 왜성의 장점을 이용한 진성이었다?)

국가지식포털(https://www.knowledge.go.kr/main.jsp)에서 찾은 부산진성의 모습들입니다. 저작권은 모두 독립기념관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성곽은 부산진성으로 남문인지 동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문으로 추측이 됩니다. 아무튼 사진의 성문은 홍예식이고 문루는 1층 누각이며 누각안에는 판문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

부산진성2

▼ 영가대(永嘉臺)는 오늘날의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 서쪽 경부선 철로변에 있었다.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철거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옛터에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관련이 깊은 명소로, 1614년(광해군 6)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이 부산진성(釜山鎭城)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부산진성1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던 부산진성 전투에 관한 사항들은 많이 있지만 정작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찾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임란후 부산왜성을 지으면서 부산진성의 돌들을 가지고 가서 부산왜성을 쌓았고 또 임란후 부산진성은 임란전에 있었던 부산진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부산진성을 논할때 3개의 부산진성에 관하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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