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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중인 기장읍성 남문

딱 1년전인 2018년 2월에 다녀온 기장읍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년전 기장읍성을 찾아가니 발굴중이었습니다. 처음 찾아간 2010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더군요. 마을로 형성되어져 있던 곳은 철거를 하였으며 본격적인 복원을 하기 위해 먼저 발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복원할 기장읍성 조감도입니다. 사진상 오른쪽이 동문이며 아래가 남문...

64년만의 창원읍성 변화

▼ 2018년 다음지도를 캡처한 것입니다. 창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의창동의 모습으로 여느 도시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시면 중앙정도를 기준으로 동측은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도시계획이 보이고 서측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로 단독주택이 많은 곳인데 이곳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남해읍성_05 성문지를 찾아서

남해읍성 5편째로 성문지를 찾아서 가는 것으로 아래에 나올 사진은 2018년 8월과 12월에 찍었던 사진이며 8월은 비가 너무 많이와서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남해읍성은 4개의 성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번에 갈 것은 서문, 남문, 동문지입니다. 성문지라 현재 형태가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아직 성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겸재 정선이 현감으로 있었던 청하읍성

도시가 아닌 면 단위에 있는 읍성은 조사가 잘 되어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산이 없다보니 지표조사나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군,면 단위에 있는 읍성의 자료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찾기가 힘이듭니다. 경북에 있는 읍성에 관한 자료도 찾기가 힘이드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경북 동해안에 있는 읍성인 흥해,청하,영덕,영해,평해읍성에 관한 자료는 찾기가 힘...

경남 읍성지 답사를 시작합니다

작년 10월에 “경남지역 왜성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자고 하였던 강창덕 민언련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서 왜성에 관한 이야기를 권순강 우리문화재연구원 과장님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 왜성에 관한 책들은 적게 나와 있지만 그래도 몇 개가 나와 있습니다. 그에 비해 경남지역 읍성에 관한 것은 없...

밀양읍성 일제강점기 사진

일제강점기 밀양읍성의 모습들입니다. ▼ 일제강점기 밀양강을 건너는 배다리 모습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1931년 삼문인 만덕문이 보이고 뒤편에 천진궁의 모습이 보입니다. 담장은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천진궁이 밀양 객사 밀주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

64억 예산 들여서 만든다고하는 행복의창 만들기 사업 주민설명회 듣고 보니

2017년 8월 24일 오후 2시 의창동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행복의창 만들기 마스트플랜 수립 및 실시설계“주민설명회가 있었습니다. 창원시 도시재생과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행사는 박완수 국회의원실 차형보 비서관, 장동화 도의원, 김장하 시의원, 김우돌 시의원을 비롯하여 창원시 도시재생과,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 및 주관업체 두손도시조경 관계자들이...

김해읍성의 체성도 그렇게 사라지군요

2017년 5월 김해읍성 북측체성을 지나가다 보니 원룸을 신축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밤이라 확실하지 않았지만 신축공사를 하고 있었고 체성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시간을 내어서 김해읍성 북측체성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역시 신축중인 원룸 건물은 공사가 완료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담장을 보니 예전 2011년 3월에 본 김해읍성 북측체성과는 달랐습니...

창원읍성 동문지 시굴조사

2017년 4월 17일부터 1주일간 창원읍성 동문지에서 창원읍성 시굴조사가 있었습니다. 시굴조사는 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으며 앞으로 7월과 8월 사이에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번 시굴조사에서 그동안 지적도에서 나온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을 하였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동측 체성과 동문 옹성에 관하여 일부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동문 ...

웅천읍성 1960년대 사진

1910년 조선 전체에 읍성 철거령이 내렸졌습니다. 그동안 웅천이 웅천의 중심지였는데 일본인들이 군항을 만들면서 모든 관공서들이 진해로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웅천은 소외되었습니다. 이 소외된 것이 안타까워겠지만 그래도 웅천읍성은 잘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복원을 하기전에도 웅천읍성은 그래도 제법 잘 남아있었고 현재도 서측체성은 잘 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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