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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량진성_04 남측체성

가장 잘 남아있는 동측체성을 지나고 남측체성이 있을 곳으로 이동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민가 뒷편으로 체성이 지나갈 것 같은데 주인이 계시지 않아서 양해를 구하지 못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서측에서 내려오는 개울로 저번에 해자로 진행된 것은 아닌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위 하천보다 더 높이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으로 위에는 ...

가장 잘 남아있는 적량진성 동측체성_적량진성03

서측체성과 북측체성에 이어 동측체성으로 이동합니다. 아래 지도에도 나오지만 동,서측이 남,북측보다 체성의 길이가 작습니다. 하지만 동측체성이 4개의 체성중 가장 잘 남아있습니다. 전편에 이어 동측체성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민가로 하단부의 경우 아주 잘 남아있습니다. 물론 사진과 같이 군데 군데 시멘트로 보수를 한 흔적이 보입니다. ...

흔적은 남아있는 적량진성_02

이부분이 서측 옹성인지 아니면 치성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만 서측 옹성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번편 마지막에 나왔던 사진위로 보시는 것과 같이 하단부의 경우 체성이 제대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상단부의 경우 흔적을 찾기가 힘이들지만 말이죠.  가까이 찍은 사진으로 체성이 무너지고 나서 작은돌을 가져와서 담장으로 만들어 놓았...

고사리 냄새 풍기는 남해군 적량진성_01

적량진성이 있는 곳의 경우 현재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소속입니다만 조선시대에는 진주목의 소속이었습니다. 창선면에서도 조금 멀리떨어져 있는 곳이 적량진성이 있는 진동리입니다. 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선정비와 적량진성에 관한 비석입니다. 조선수군의 주둔지임을 나타내는 비석으로 지도의 경우 1872년 지방지에 등장하는 ...

적량진의 적량은 어디일까?

적량진성의 기록을 보면 성종 21년(1490년) 윤 9월에 적량진성의 축조가 끝나자 적량진을 구도성에서 옮기게 됐다고 합니다. 적량진성의 둘레는 1천182척이었다. 숙종 14년(1688년)에는 진의 중요성이 인정돼 만호진에서 첨사진으로 승격되었다가 고종 32년(1895년) 칙령 142호로 폐지됐다고 합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성종실록16년에 행한 성...

바다를 제압하려고했던 적량진성 답사기

적량진성을 답사하려고 계획에도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적량진성을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연휴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삼천포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차안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남해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닷가에 있다가 갑자기 적량진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량진을 가게 되었습니다.적량진의 경우 동측으로는 고성의 소을비포진과 사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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